자신감의 문제

1.

면접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고어핀드: 음, 글쎄요, 역시 게임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해야겠죠?

면접관: 아니 그런 거 말구요, 좌우명이나 이상형, 그런 것 있잖아요.

고어핀드: …(잠깐 생각한다.)

2.게임업계 지존 여고생 이야기(이글루스)

한 때 이글루스에서 화제가 된 여고생이 있었다. 88년생 새파란 여고생이 하루아침에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건 그녀가 얼짱이어서도, 몸매가 좋아서도 아니었다. 그녀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올라온 것은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블리자드, 앙상블 스튜디오, 픽사 등등 미국 유수의 기업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야기였다.(자랑스럽게 이력서까지 올려 놨더라 -_-)

사상 최강 슈퍼걸의 등장에 블로거들은 흥분했다. 우와, 이 여고생 누구지? 연봉이 천억은 되겠네? 이력서를 보면 온 동네 히트작은 다 만드는 거 같애?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흥분한 블로거들

…사실이냐고? 물론 뻥이지. 그 미니홈피에 실린 내용들은 죄다 거짓말이었다. (위 링크에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으므로 자세한 걸 보고 싶거들랑 링크 찍어서 들어가 보시길.)

블로거들의 열렬한 관심이 된 지 얼마 안되어 그 여고생은 미니홈피를 폐쇄하고 잠적했다.

이 정도 일이면 그냥 웹에서 벌어진 헤프닝 하나, 스페이스 판타지 하나 제대로 써주네 하고 웃고 넘어가도 될 일일듯 싶다. 그래, 이게 단순히 헤프닝 하나에 불과하다면 말이다.

문제는 이게 전혀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저렇게 크게 터지는 경우가 드물어서 그렇지, 저런 류의 일들은 인터넷에서 간간이 볼 수 있다. 꼭 거창한 사칭이나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잘잘한 거짓말들은 우리 주변에서 상당히 친숙하게 볼 수 있다.

저 여고생은 왜 저런 짓을 했을까?

내 생각엔 현실 세계에서의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그랬을 것 같다. 나도 그렇지만, 누구나 현실의 자기 모습에 조금씩은 불만감을 가지고 있다: 왜 내 배는 튀어나왔지? 왜 난 못생겼지? 왜 내 머리는 나쁘지?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왜 내 code엔 이다지도 버그가 많지?

인터넷은 자유와 익명성의 공간이다. 아이디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현실세계가 가려진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를 숨기거나 왜곡하기가 쉬운 만큼, 자신의 컴플렉스를 메워 주는 또다른 나를 만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 올해 초 우리학교에서 문제가 된 것처럼, 이력을 위조한다던가.

뻥이야~

안 그래도 고등학생 시기면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감, 고민이 심할 때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나 보이는데, 나도 저렇게 되고 싶은데 정작 현실은 따라주지 못할 때, 누구든지 인터넷 공간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곳에서는 온라인 게임 캐릭터 만들듯이 만족스러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대로 행세할 수 있다. 이다지도 멋진 세계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 뿐만이 아니다.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사람을 판정하는 기준을 만들어내고 이를 강요한다. 키, 몸매, 얼굴, 학벌, 육체적인 능력… “컴플렉스 권하는 사회” 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런 수많은 기준들에 주눅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감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모 인터넷 만화가의 한 마디는 의미심장하다: “나하고 대화를 나눠 본 악플러들은 죄다 최소 키 180의 호남형,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이종격투기 선수들이었다.”

3.

뭐 한두 번쯤은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상상 속, 혹은 이상 속의 자기 자신과 현실 속의 자기 자신은 점점 괴리가 커져만 간다. 하루 종일 미소녀 게임과 밀리터리물에 둘러싸여 망상 속에서만 살아가는 히키코모리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딱 그 짝 나는 것이다.

이게 정상인가? 이게 과연 건강한 삶인가? 그렇게 살고 싶은가?

자신한테 뭔가 문제가 있다면, 고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애시당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려고만 들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4.

고어핀드: (잠깐 생각하고 나서)…전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면접관: (끄덕끄덕)

One thought on “자신감의 문제

  1. 개인성 말살 원조의 파시즘때의 독일이나 일본은 저리가라 수준의 평형화, 대중화의 한국.. 으로 보입니다만.

    …솔직히 외국 학교 시스템에서 (대학 전까지는. 지금은 피똥싸며 죽어갑니다..)팅가팅가 놀며 자유를 만끽한 배때지 불러 처먹은 저로서는 약간? 편협된 시선일지도.

    하지만 진짜 자신감 넘치는 학생들-model UN 토론, 오케스트라 수준의 학교 밴드, 봉사활동, 환경파괴 방지 연구-이 많더군요. 남에게 피해만 안주면 고스로리 차림에 astro physics 공부하면서 발랄한 팝 음악 듣고 중국식 음식을 좋아하는, 하키를 잘하는 금발 미소녀같은 개성넘친 멋진 인간들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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