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장난하시나?

시청자들, 재벌가의 높은 병역면제율에 분노

한국에서 재벌을 비판하면 꼭 따라붙는 소리가 있습니다.

“재벌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까짓 것을 물고 늘어지느냐? 군대 가는 서민들보다 세금 훨씬 더 많이 내고 일자리 만들어서 서민들 먹여살리고, 국가이미지 상승시킨다.”

요즘은 경제학적인 설명도 친절하게 덧붙더군요. “재벌가가 군대가면 경제 활동이 위축되서 결과적으로 서민 경제가 어려워진다.”

…평소에는 피식 웃고 한 귀로 흘려 버릴 만한 소리들인데 뉴스 링크에 달린 리플들을 보니 참을 만큼 참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부터 말하죠. 이딴 소리를 하는 친구들, 제발 개념이나 챙겨드시길 바랍니다. 그것도 종류별로 한움큼은 챙겨드셔야 할 것 같습니다. 머리가 없으면 나대지라도 마세요. 언제까지 그딴 맹구같은 소리나 할 겁니까?

1.

이 친구들이 잃어버린 첫번째 개념은 바로 주어의 개념입니다.

일자리 만들고, 세금 내는것은 재벌 그룹에 소속된 주식회사들입니다. 재벌 일가에게 부과되는 재산세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주식회사들이 납부하는 법인세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됩니다. 삼성에 부과된 세금과 이건희 일가가 내는 세금은 엄연히 별개인 겁니다.

요컨대, 재벌가는 이들에 대한 소유권의 상당부분을 가지고 있을 뿐 재벌 일가 그 자체가 재벌그룹은 아니라는 말이죠. 그나마 이것도 5%도 안되는 지분을 이리저리 순환출자해서 보유한 지분 이상의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이고, 재벌 그룹이 성장하기 위해서 국민들이 엄청난 희생을 감수했던 것도 사실이니 “소유권의 상당부분을 가지고 있다.” 라는 것도 엄밀하게 말하면 욿은 말은 아닙니다.

기업을 통해 국가 이미지가 개선되는 효과도 마찬가지죠. 다만 요즘처럼 기업의 국적이 별 의미가 없어지는 세계화 시대에 기업이 잘 나간다고 국가 이미지가 개선되느냐?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죠.

2.

두 번째 개념은 목적의 개념입니다. 아까 그 개소리를 살짝 뒤집으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서민들이 하는 게 얼마나 많냐? 콩깍지만한 월급에서 세금 내서 부실한 재벌 그룹에 공적 자금 쏟아붇고, 박봉에도 그네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다. 그러니 병역 면제시켜 줘도 되지 않냐? 서민들은 열심히 일하느라 바쁘니 나라는 재벌가 자제들이 지켜라.”

…뭔가 이상하죠?

서민들이 재벌 그룹에서 열심히 일하는 건 재벌 일가를 먹여살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애들 먹여살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죠. 그저 남 좋으라고 희생하는 성자나 자원 봉사자가 아니란 말입니다.

이것은 재벌 일가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재벌 일가가 기업활동을 영위하는 건 무슨 자선 사업을 하는 것도, 선행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명백한 영리 추구 행위일 뿐이라구요.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일자리가 생겨나고, 서민들의 먹고살 거리가 생겨나는 것은 거기서 생겨나는 부차적인 효과일 뿐이죠. 애시당초 서민들도 재벌가의 영리 추구에 노동력을 제공했으니, 그 정도 성과를 얻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재벌 일가는 기업 활동으로써 국가에 봉사하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발상은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겁니다. 봉사는 무슨 봉삽니까, 다 돈 벌어먹자고 하는 짓인데.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투자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적립식펀드 가입자들도 병역 면제해줘야 한다는 겁니까?

3.

세 번째는 교환의 개념입니다. “재벌이 납부한 세금으로 군인들이 먹고자고입는 것이니, 재벌 일가는 군대에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뭐 이런 생각들이죠.

물론 이러한 발상이 병영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발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뭐 재벌일가 한두 명이 군대 안감으로 해서 군대에 간 제 또래 병정들의 생활이 확실히 나아진다면, 그것도 해 볼 만한 일이겠죠.

그러면 재벌 일가가 납부한 세금에는 이러한 비용이 들어 있을까요? 결론은 “전혀 아니올시다.” 되겠습니다.

재벌 기업들이 내는 세금은 대한민국에서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대가입니다. 기업이 활동하기 위한 사회간접자본을 구축하는 비용, 치안과 국방을 유지하는 비용 등이죠. 재벌 일가가 내는 재산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패키지 상품입니까? 우유통 두 개 샀다고 작은 우유팩 하나 끼워주는 거냐구요? 그렇게 돈으로 병역을 면제받고 싶으면 “얼마짜리 전투기 한 대 기증할 테니 면제해 주쇼” “내무반 확 바꾸는 데 돈 얼마얼마 낼 테니 면제해 주쇼.” 하고 기준을 정해서 당당하게 말하면 될 일입니다. ( * 물론 그게 국민의 동의를 얻을지의 문제는 별문제고.)

4.

제 블로그에 올라왔던 포스트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물질적 이익 추구에 별다른 죄책감이나 증오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상당히 친기업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아무리 기업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이 “재벌 일가는 뭐든지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 는 의미는 아닙니다. 기업이 중요한 건 중요한 거고, 다른 건 엄연히 다른 겁니다.

재벌가의 병역 기피를 옹호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재벌 일가인지 아니면 멋도 모르고 재벌을 옹호하는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발 언제까지 앞뒤 안맞는 견강부회로 재벌가를 옹호하는 건 그만뒀으면 합니다.

차포 다 떼고 생각하더라도 병역법을 위반한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4 thoughts on “지금 장난하시나?

  1. 이런저런 분야에서의 저의 개념성 미터를 올려주는 글들이 많은 이곳을 발견해서 기쁩니다.

  2. 재벌 일가 뿐 아니라, 금뱃지 달고 있는 분들 및 그 자제들 역시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의무를 이행해야…

  3. …그냥 감주 한잔 하고 조용히 도 닦으며 삽시다. 정부니 뭐니 하는 거 하나하나 보다 보면…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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