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닛이 만들어내는 전략성

삼국지 11에서는 병종에 RTS처럼 가위바위보 관계가 적용되었습니다. 기존의 삼국지에서는 특수 유닛이라고 해봐야 기병과 노병 정도였기 때문에 유닛 간의 상성관계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습니다. 노병따위 버리고 기병만 졸라 뽑아서 적진 러시해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삼국지 11에서는 유닛간의 상성관계도 있고, 또 유닛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병종에 높은 적성을 지닌 장수도 필요합니다.

병종들간의 상성 관계와 특징들

삼국지 11의 전투시스템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전략적인 자리잡기입니다. 삼국지 영걸전이나 파랜드 택틱스 같은 게임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턴제 전략 게임들에서 자리잡기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게임 자체가 맵 위에서 턴 단위로 돌아다니면서 적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자신의 유닛을 어디에 위치시켜야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의 피해를 최대화할지를 고민합니다.

삼국지 11의 유닛들은 단순히 센 공격에 불과한 기술들을 보이는 것에서 벗어나 전략적으로 자리잡기를 시도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습니다. 꼭 가위바위보 싸움으로 이기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리잡기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거죠.

창병의 이단첨: 성공시 적병을 두 칸 밀어냅니다.

예를 들어서, 창병의 경우 적 부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기술과 적 부대를 뒤로 밀어내는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적을 밀어낸 틈새에 아군 유닛이 달려들어가거나, 적 건물에 적 부대를 던져 피해를 입히는 등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극병의 경우 적 유닛을 아군쪽으로 끌어들이는 기술을 가지고 있고, 기병은 적 유닛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 이러한 개념은 코에이의 SRPG 삼국지전기에서 처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 정작 안해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총평 - RTS의 영향이 느껴지는 삼국지

일본은 PC라는 플랫폼 자체가 워낙에 약한 나라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성행하는 RTS 게임은 거의 보기 힘듭니다.(* 콘솔에서는 RTS에 필수적인 마우스가 거의 없죠.) 다른 나라들에서는 RTS가 전략 게임의 대세가 되어갔는데 일본 혼자 동떨어져 있으니 일본에서 만든 전략 게임들은 묘하게 다른 맛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특히 저처럼 RTS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더.)

* 반면 삼국지 7, 8편 처럼 장수들이 중심이 된 <태합입지전> 류의 게임플레이를 원하시는 분들은 재미가 없다고 하시더군요. 삼국지 11에 대한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어로 된 삼국지를 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듯합니다. 삼국지11의 정품 판매량이 6천 장에 불과해 확장팩인 파워업키트 발매가 불투명(이라기보다 사실상 불가)해졌기 때문입니다. 확장팩은 원판보다 덜 팔리는 게 상식이니 겨우 6천 장 팔겠다고 돈 들여 한글화 발매를 할 필요는 없겠죠. 아마 일본 갈 일 있으면 일본판 중고품을 구입해와야 될 것 같습니다.

확장팩에서는 8개의 시나리오와 미션 모드, 장수 수련 기능이 추가된다고 합니다.

물론 일본에서 게임 사오면 비쌉니다. 하지만 삼국지가 국내에 더 이상 발매되지 않는 것은 코에이가 불친절한 탓이 아닙니다. 삼국지라는 게임을 해본 사람은 많지만 정작 정품을 샀다는 사람은 없는 쪽팔리는 상황이 현실입니다.

저 역시 욕 들어먹어야 할 처지기에 불만은 없습니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겠습니까. 당해도 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