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권력의 성립조건

  • 아래 내용은 학문적으로 별다른 근거가 없으며, 글쓴이가 역사책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따금 쓰는 꼼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그냥 가볍게만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역사책 페이지마다 나오는 새로운 정치 권력의 형성과 붕괴의 이야기.

그런데 이것도 잘 보면 일종의 패턴이 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폭력의 독점.

둘째, 생산 수단의 장악.

셋째, 피지배민에 대한 설득.

1.

마오 쩌둥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라는 말을 한 것처럼, 권력의 기본 조건은 바로 폭력의 독점이다.

여기서의 폭력은 그 의미가 다양하다. 기사의 말과 갑옷과 같은 무기 체계일수도 있고1 이것을 의미 있게 하는 사회 체계, 지식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감히 덤빌만한 넘이 없을 정도의 힘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하자마자 농민들의 칼을 압수, 무사 계급에 저항하는 것을 원천 봉쇄했다. 재미있는 건 히데요시가 농민 출신이었다는 점이다.(-_-) 위 그림은 의 일러스트.

영화 으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스파르타는 어린 시민들만을 조련하여 인간 병기로 양성했다. 노예 어린이들에게는 이러한 훈련을 시키지 않았기에, 노예 반란이 일어나면 일당백의 스파르타 전사들은 당장 이들을 밟아버렸다. 철기로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제패한 아시리아 제국의 최대 기밀은 철기를 이용해서 다양한 무기류를 만드는 지식이었다. 이것이 새어나간 후 아시리아는 멸망했다.

그러니 수많은 정치 권력이 전쟁의 도중에 탄생하는 것은 별반 이상한 것도 아니다. 전쟁은 폭력의 기술을 극도로 발달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패배한 자들은 멸망하거나 피지배민이 되고, 승리한 자들은 강력한 폭력을 독점하여 자연히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등장한다.

2.

일단 폭력을 독점했다면,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독점한 폭력을 유지하기 위한 생산 수단의 장악이다.

폭력을 의미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행사할 만큼 충분한 지배 계급이 필요하다. 그리고 칼이나 갑옷 같은 폭력의 수단은 구입하고 유지하는 데 많은 돈이 든다. 따라서 충분한 지배 계급에게 “돈 나오는 항아리” 를 제공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 계급은 자기 땅과 충분한 노예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자기 땅에서 노예를 부려 농작물을 얻는 것이 이들의 “돈 나오는 항아리” 였다. 이렇게 얻은 돈으로 그들은 갑옷이나 무기류를 구입할 수 있었다. 당시의 시민 한 사람을 무장시키는 데 황소 8마리어치의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것은 자기가 가진 땅을 농민들에게 소작 주어 소작료를 받는 중세의 기사들도 비슷했다. 다만 이들은 “깨지는 돈” 의 스케일이 남달랐다. 독일의 군사사학자 델브뤼크에 따르면 중세 초기 기사 한 명을 무장시키는 데 드는 돈은 암소 45마리, 혹은 암말 15마리였다고 한다.(-_-;)

영화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물건이다만, 요새로 치면 거의 최신형 전차나 전폭기쯤 되는 후덜덜덜한 물건인 셈이다.(사진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된 16세기 유럽 갑옷.)

생산 수단을 나누어 주는 것 말고도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특권이 부여되는 경우도 있다. 조선 왕조가 건국 초기 권문 세족들의 토지를 빼앗아 이를 신진 사대부와 무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들 양반에게는 군역을 면제해 준 것도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청나라의 지배 계급인 팔기병에게도 토지와 함께 각종 특권이 제공되었다. 이들은 청나라의 정예 군대였다. 피지배 계급인 한(漢)족이 반란을 일으키면 즉시 팔기병이 출동해서 밟아버린다.

3.

정치 권력의 마지막 조건은 피지배민에 대한 설득이다. 지배 계급이 생산 수단을 가지고 피지배민의 노동력을 이용해 먹는 것을 정당화하고, 피지배민들이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하게 만들어 체제에 반항할 여지를 없애는 것이다.

여기에는 일단 도둑놈을 잡는 것 같은 기초적인 사회질서 유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지배 계급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종교나 이념 체계다. 폭력만으로는 사회 체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지배 계급은 천신의 자손이라느니, 지배 계급이 숭배하는 신은 피지배민들의 신보다 강하고 우월하다느니 하는 류의 선전이 동원되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고구려나 일본 야마토 정권의 건국 신화가 이런 케이스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로 피지배민들을 설득하는 사람이 바로 종교 집단의 사제, 무당들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왜 고대사회에는 종교 집단의 사제나 무당이 큰 권력을 가졌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신의 뜻을 가장 두려워하던 시절, 신의 뜻을 전하는 종교 자체만으로도 피지배민들에게 지배 계급의 정당성을 설파할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의학이나 천문과 같은 전문 지식을 보유한 “마법사” 들이니 누가 이들에게 개기겠는가. 단군 왕검이나, 북미 원주민 추장과 같은 미개 사회의 지도자들이 무당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Wow의 오크 대족장 트랄Thrall의 본업은 무당Far Seer이다.

인간의 지성이 발달하면서 종교와 정치 권력은 점점 분리되지만,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는다. 종교는 여전히 지배 권력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칭기즈 칸이 몽골 고원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데는 강력한 군사 지휘관이었다는 점도 있지만, 이름난 무당이 “테무친(칭기즈 칸의 본명)은 영원한 푸른 하늘이 정한 몽골족의 지도자이다.” 라고 호언 장담하고 다닌 것도 한 몫 했다. 신앙심이 깊었던 몽골족들은 다른 부족장들을 버리고 테무친에게 몰려갔기 때문이다. 당시 테무친은 몇 안되는 부족민들의 우두머리에 불과했다.

아라곤에게 왕관을 씌워 준 사람이 누구였더라?

4.

고대나 중세의 예를 들었지만, 사실 위의 내용들은 현대 사회에도 죄다 적용된다. 좀 세련되어졌을 뿐이다. 사람이란 결국, 털 없는 원숭이일 뿐이다.


  1. 중세 초기 기사 30명이면 시칠리아 섬 하나를 정복할 수도 있었다. 

21 thoughts on “정치 권력의 성립조건

  1. 현대에도 똑같죠. 대신 폭력을 권력과 분리된 듯 보여 사람들의 이목을 돌리는 고등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 조금 다르달까…

    어쨌거나 고대 갑옷 풀셋의 가격을 현대기준으로 적용해 봤더니만 MBT 가격이 나오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뭐 비슷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생각한다면 유통 가격이라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목적대비 비슷한 비율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흐흐~

    • 흐, 위에서는 암소로 가격을 환산했습니다만 당시로선 종자 개량과 대량 사육으로 소가 굉장히 흔해진 현대 사회에 비해 훨씬 소가 수도 적었고 또 더 유용하기도 했으니(농사에 필수적인 동물이니까요) 당시의 소 한마리 가격은 훨씬 비쌌을 겁니다. 정말 다 계산해보면 진짜 MBT 가격이 나오겠네요.

      재미있게도 MBT 역시 기사처럼 보병 대열을 부수는 역할을 한다는 거. 확실히 인간이란 동물은 잘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역사란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겠지요 ^^

    • 좀 핀트가 어긋난 이야기입니다만, MBT는 적 보병대열(방어선)을 부수는 일을 하지는 않죠. MBT의 주된 임무는 남들이 뚫어준 방어선의 통로로 뛰어들어 후방으로 진격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됩니다) 기병대가 그 본질이 기동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들이 보병 대열 파괴용으로 중무장화되는 사도를 걸어간 것과 묘하게 비교된다고나 할까요……

    • 아, 그렇죠. 현대전은 잘 모릅니다만 MBT는 정확히 말하면 포격으로 부서진 적 보병진지를 뚫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세 전쟁에서도 화살비를 쏴서 적 보병 대열에 피해를 입힌 다음 기사들이 공격하긴 하지만 기사들이 직접 전투로 뚫는 편에 가깝죠.

  2. 저런 것을 정리하시는 분들을 보면 언제나 경외스럽네요.
    언제나 (몰래몰래) 잘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스샷도 몇 장 퍼다 쓰고..;;

  3. 현대에는 ‘쩐’이 저 세가지 모두를 만족시키지.
    돈이면 폭력(공권력포함)도 사다쓸수 있고 돈이 돈을 벌고..
    또 돈버는자만이 가치가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착취는 정당화되지.

    세련될 뿐만아니라 거의 완벽한 체계라 할 수 있지..

  4.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_+
    그리고 좋은 것 배웠습니다.(?)(!)

    결국 로직은 똑같고 스키마만 바뀌어 가는 거군요.

    스키마가 화려해지고 복잡해져서 그렇지.. 결국은 -_-;;;

  5. 기사 30명으로 시칠리아를 정복.. 충격적(?)인 새로운 사실을 알고 갑니다. 중세 시절 암소 45마리면 말 다했군요. KOEI의 징기스칸 시리즈라든가.. 그런 전략시뮬 게임을 하다 보면 기사라든가 뭔가 뛰어난 유닛 소수만 가지고도 수많은 보병을 밟기에 너무 좋은 것 아닌가 싶었는데 오히려 실상은 한참 더 좋았던 거로군요(물론 어디까지나 밸런스를 위해 많이 조정된 것이겠지만요);

    • 사실 저 사례는 굉장히 극단적인 경우입니다. 기사들이 서른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만 이들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전쟁과 약탈 등에 경험이 많았던 이들이고, 또 상당한 수의 종자(보병)들을 이끌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들 역시 주인을 따라다닌 자들이니 베테랑임은 두말할 나위 없었겠죠. 하지만 기사라는 전력의 막강함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어 사례로 인용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보병으로 기사들을 제압할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만.

      그러고 보니 코에이의 칭기즈칸4 다시 하고 싶어지네요. 그 불타는 하렘이란(…)

  6. 약간의 테클을 걸자면, 아시리아는 기밀이 세어나가서 망했다기 보다는 피지배계층 동화에 실패해서 망한거죠. 아시리아 제국은 과시욕만 많아서 댑따 점령해놓고선 그걸 통치하지는 못했다 이말씀. 결국 메디아계의 키악사레스가 엄청난 기마군단을 이끌고 제국의 수도 니네베를 무참히 짓밟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명심할건 기술과 폭력보다는 처세술과 정치술이 상위의 수단이란 겁니다.

  7. 근데 그런건 언급이 없군요 -_-

    • “기밀이 새어나간 후에 망했다”는 부분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인데, 아시리아가 개발해 낸 파르티아 궁법이나 철제 병기 등이 아시리아를 멸망시키는 데 한 몫을 담당했다는 의미로 쓴 것입니다. 철제 무기에 대한 기밀이 새어나갔다고 아시리아가 곧장 꼴까닥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것 때문에 “때문에” 라고 쓰지 않고 “후에” 라고 쓴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글에서 폭력의 의미란 폭력을 의미있게 하는 사회 체계 등을 포함한다고 했었는데, 제논님이 말씀하신 정치적인 처세술 역시 여기 집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리아의 피지배민 동화 실패는 3번 항목 – 피지배층에 대한 설득 쪽에 들어가는 게 알맞을 것 같습니다.

  8. 언제나 글을 자주 보고갑니다, 히데요시도 하급무사아들이냐 농민출신이냐 말은 있긴 하지만 여튼, 통일하고나서 무기를 뺏었다는것도 그렇고, 절도사 출신인 송태조도 절도사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문관들을 강하게 만든것도 대충 그런맥락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ㅎㅎ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_^

    [수험생이라 자주 오기가 힘드네요 orz]

    • 예, 뭐 찾아 보면 더 많은 사례가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히데요시의 경우 신분적으로 무사의 아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붓아버지가 군인(아시가루=졸병)이었다고 하더군요.(실제 아버지는 일찍 죽어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히데요시도 천하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당시 일본 사회의 역동성(현대 일본도 따라가기 힘들지 않을까 싶은)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쁜 수험중에도 와 주시니 감사합니다 :D

  9. 나는 메트로폴리탄에 가서 저 기사형님들을 뵙고 왔지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탐험 퀘스트 수행할때 찍은 스샷이 아직도 하드에 고이 남아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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