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획자의 우화

1.

“언제부터 전쟁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어요?”

이따금 받는 질문이다. 블로그에 중세 전쟁사에 대한 허접한 글쪼가리들을 올려놓은 탓에 이런 질문을 받는 빈도수가 요즘 부쩍 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요, 어렸을 때 레고 성시리즈에 열중했던 것이 아닐까요…”

사실일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그건 나도 잘 모른다. 확실히 소싯적에 레고 기사 피규어를 좋아하기는 했다(지금까지도 아바타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전쟁사를 계기가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사실, 게임기나 PC가 아직 많지 않던 그시절 아이들은 레고 사달라고 부모님한테 떼쓴 기억이 웬만하면 있기 마련이다. 그 때 한참 인기를 끌었던 것이 해적 시리즈와 성 시리즈이기도 하니(남자아이라면 무기나 병정 장난감을 좋아하지 않나!!)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기억인 셈이다.

하지만 내가 무의식중에 레고 장난감들을 원인 비슷하게 지목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것이 나라는 인간을 설명해주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도 레고를 좋아하는 것, 전쟁사를 좋아하는 것, 칼이나 갑옷을 좋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설명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레고 장난감을 좋아했기 때문에 전쟁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사를 좋아했기에 레고를 가지고놀던 기억이 특별해지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특별할 것 없는 기억도 현재의 나를 설명할 수 있기에 의미가 부여되고 덩달아 특별한 기억이 된다.

2.

이렇게 현실을 이야기로 바꿔서 기억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개인적 우화” 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어떠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해주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대개 재미있다. 적어도 그 일을 직접 겪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소설 뺨치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할 첫째 조건은 공감인데, 자기 일이니 공감을 안할 수가 없다. 게다가 그 이야기에는 자기 자신의 욕망이 알게모르게 녹아 있기 마련이다. 자연히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3.

게임 기획자 되기 매뉴얼 Part.2 (by 혜미오빠)

게임 기획자 되기 매뉴얼 Part.3 (by 혜미오빠)

게임스쿨 출신 기획자들을 무시하는 이유 (by 혜미오빠)

기획자 공부할때 읽었던 책 (by 혜미오빠)

최근 게임업계 블로고스피어를 달구고 있는 이슈라면 역시 혜미오빠님의 일 것이다. 처음에는 할 줄 아는 건 x도 없는 개념없는 아해들이 게임기획자 하겠다면서 설쳐대는 것을 까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게임업계 전체의 “개념없는 기획자 까기” 로 발전한 느낌이다.

내가 Gamejob 같은데서 본 “개념없는 기획 지망자” 의 대부분은 바로 어디서 판타지 소설 쓰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판타지 소설 많이 읽어서 스토리 하나는 잘 쓸 자신 있어요, 판타지 세계관 멋지게 만들어 볼께요… 뭐 이런 사람들. 그 때는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었는데 이 이슈에 대해서 사람들이 쏟아내는 글들을 읽어보니 그런 사람들이 내 눈에만 보이는 게 아닌가보다.

업계에 발붙인 지 1년도 안되었는데 이런 인간들이 많이 보이면 막장인가효? ;ㅁ;

내가 이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것 하나는, 이 사람들은 결코 게임이 만들고 싶어서 기획자를 지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게임이 정말 만들고 싶었다면 게임을 둘러싼 각종 현실들에 대해서 일반 유저 이상의 지식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감동을 주는 스토리” 타령만 하는 경우가 95%다. 뒤집어 말하면 이 사람들은 게임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개인적 우화 – 자기 혼자만 감동적인 – 를 쏟아내고 싶은데 게임이 만만해보이는 사람일 뿐이다.(정작 당사자는 그걸 몰라서 문제이긴 한데.)

덧붙이자면 이런 현상이 게임판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적 우화와 집단의 우화를 구분하지 못하고 달려드는 인간군상들은 영화판에 더 많다고 한다. 의 작가 심산에 의하면,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란 “영화판에 끼고는 싶고, 할 줄 아는 것은 딱히 없고, 그래서 시나리오를 써서 이 판에 끼어 보겠다는 인간이 99%이상” 이란다. 암울한 현실이지만, 어찌 보면 이것이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8 thoughts on “게임 기획자의 우화

  1. 약간 딴 얘기지만, 게임에서의 “이야기의 구조”와 소설에서의 “이야기의 구조”는 너무 차이가 크지. 근데 그걸 이해 안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특히나 요즘 게임이란건 사용자가 여러명이고 그 상호관계가 표현되야하니까 후(…)

    • 그렇죠. 그런 기본적인 데도 눈을 돌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죠…

  2. 언제부터 뭘 잘하게 되었느냐.. 언제부터 뭘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느냐..

    그리고 왜 그걸 샀느냐..라고 물어보면.. 전 참 할말 없습니다 =_=;

    ‘좋으니 좋은거지’라고 답하자니.. 혹자는 ‘초딩들이 왕따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그냥요..가 아니더냐’라고 하셔서 좀 막막합니다만..

    항상 좋은 이유건 싫은 이유건.. 물어본 다음 답하고 나서에야 떠오른단 말이죠 =_=;

    [근데 사실 전쟁사고 뭐건간에 관심가진건 게임의 영향이 큽니다 하악하악(…)]

    • 하지만 저런 사람들이 게임을 만들면 생노가다 300%가 나온다는 게 문제 :D

    • 저런 친구들이 비주얼노벨 작가 반이라도 따라가는 글솜씨를 가졌는지는 별 문제로 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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