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do Beast 관찰기

1.

전략 게임 를 해보신 분이라면 오크족의 코도 비스트kodo beast를 아실 겁니다. 코도 비스트는 북을 싣고 다니며 오오라를 발산해 오크 전사들의 사기를 북돋는 역할을 하는 유닛입니다. 워크래프트3의 다른 종족들은 영웅 유닛만이 오오라를 발산한다는 점에서 꽤나 특이한 유닛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희한한 기능은 특유의 포식devour이라는 기능이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상대방 유닛을 삼켜버리는 기능이었습니다. 한 번에 한 마리 뿐이었지만, 삼킨 유닛이 소화가 다 되면 또다른 유닛을 삼킬 수 있었습니다.

오크-오크전의 상성관계. 그런트는 강력하지만 그 수가 적기 때문에, 코도 비스트로 삼켜 버리면 쉽게 전투 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 raider와 kodo beast는 모두 같은 건물(beastiary)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오크와 오크가 맞붙게 되면 beastry를 두세개씩 짓곤 했다.

가장 황당한 유닛이기도 합니다만, 묘하게 현실성이 있는 유닛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코도비스트와 같은 역할(적병을 삼키는 것은 아닙니다만)을 하는 유닛이 현실에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낙타죠.

2.

보통 기병 하면 말을 떠올리기 마련이고, 말처럼 빠르지 않은 낙타는 별 가치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낙타는 말이 가지지 못한 여러 장점들을 가지고 있기에, 전근대의 전장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낙타의 좋은 점은 일단 덩치가 크고 지구력이 좋다는 것입니다. 말보다 많은 짐을 싣고도 오랫동안 멀리 걸어갈 수 있기 때문에, 보급품을 싸들고 사막과 같은 곳을 행군하는 데에는 낙타만한 것이 없습니다. 기원전 53년, 침공해 온 로마군을 격파한 파르티아의 장수 수레나스의 승리 비결이 낙타였다는 사실은 상당히 유명합니다. 수레나스는 전쟁터에 화살을 가득 실은 1천 마리의 낙타를 준비해 갔는데, 덕분에 파르티아의 기마궁사들은 화살 걱정 없이 로마군 보병들에게 화살비를 퍼부을 수 있었습니다. 화살이 다 떨어진 기마궁사는 말탄 사람에 불과한 것이 보통이겠지만, 이 경우에는 가까운 보급낙타에서 새 화살통을 챙기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낙타들은 보급뿐만 아니라 실제 전투에도 투입되었습니다. 낙타는 웬만한 상처에는 끄떡하지 않는 데다가 말만큼 잘 놀라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낙타에 갑옷을 입힐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낙타를 본 말은 놀랄 뿐만 아니라 낙타가 더 덩치가 크기 때문에 말탄 기병 입장에서는 은근히 상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랍 문화권에서는 낙타가 전쟁을 위해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에 등장한 베두인 낙타병.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원나라 멸망 이후 유라시아 초원의 패권을 차지한 오이라트 족도 낙타를 사용하였습니다. 화살을 쏘고 빠지는 기마궁사는 오랫동안 유목민족의 장기로 여겨져 왔습니다만, 총이 발명된 이후 그 군사적 가치를 상실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말과 활 대신 낙타와 총을 사용하게 되는데, 낙타를 타고 다니다가 적이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낙타에서 내려 총을 쏘는 식이었습니다. 낙타는 총에 놀라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한두 방 맞아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앉은 낙타는 일종의 엄폐물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능은 말에서는 기대하기 힘들죠.

하지만 낙타의 군사적 이용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몽골군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전근대의 전장에서는 북이나 나팔 등을 이용한 군악이 사기를 높이고 부대를 지휘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다른 문명권의 경우 북을 땅 위에 설치하여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반해, 몽골군 군악대는 naccara라는 북을 아예 낙타 등 뒤에 싸들고 다니면서 사용했습니다. 뭐… 그냥, 코도 비스트죠.

3.

코도 비스트는 워크래프트3의 유닛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알려진 편에 속합니다. 2000년 봄 블리자드 사는 E3 쇼에서 테마곡 와 함께 트레일러를 공개했는데, 여기에 이미 코도kodo 위에서 북을 치는 오크 전사가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코도라는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아 그냥 코뿔소라고만 불렸습니다.)

wow가 나오면서 코도는 칼림도어 대륙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이 되었습니다만, 처음부터 독립된 생물체로써 고안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코도라는 이름 자체가 일본의 북(코도小鼓)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블레이드마스터와 함께 워크래프트 세계에 남은 일본 문화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처음에는 북을 싣고다니는 유닛이라는 의미에서 코도 비스트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나중에야 코뿔소를 닮은 짐승의 이름이 된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wow에서 잊혀진 땅을 돌아다니다 보면 고블린 상인들이 코도에 상품을 바리바리 싣고 돌아다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워크래프트3에서도 타우렌 캐러밴들이 현실의 낙타처럼 코도를 짐을 싣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애시당초 낙타를 본따서 만든 짐승이 낙타의 다른 역할도 하고 있는 걸 보면, 좀 재미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12 thoughts on “Kodo Beast 관찰기

  1. 정말 저런 설정을 보면 워크래프트 시리즈나 WOW를 제대로 즐기고 싶어요.

    • 자주 포스팅하는 대상이 됩니다만, 세계관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블리자드를 따라올 이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나가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제 주제 중 하나죠. :D

  2. 기마부대가 낙타부대한테 약하다는 상성 설정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워크래프트3에서는 울프 레이더가 코도비스트에게 강하다는 설정입니다만.. ㅎㅎ 낙타 냄새를 말이 싫어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고.. -_-;

    • 울프레이더가 코도 비스트에 강하다는 것은 사실상 확장팩 출시 후의 설정으로 기억합니다. 처음에는 코도 비스트나 울프레이더나 일종의 특수 유닛(상대방 유닛을 잡거나 삼켜 버리는)이었는데, 확장팩이 발매되고 밸런스가 조정되면서 그렇게 되었지요.

      말이 낙타 냄새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는 토탈워의 유닛 설명에도 나오는 말입니다만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아랍 전쟁사 책을 뒤져보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습니다만, 그 쪽이 제 주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에 관련 서적을 그리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네요.

  3. 그런데 낙타가 말보다 더 빠르지 않나요? 말은 시속 60 찍는 품종이 경주마 몇 종류 뿐이지만 낙타경주는 예사로 나온다던데요.

  4. 워3에서 코도의 역할은 북치는 오크가 타는 코뿔소…이라는 느낌이었는데, 확실히 WOW로 넘어오면서 낙타라는 느낌이 강화되었더군요. 그나저나 몽골군악대가 낙타에 북을 매고 다녔군요. 역시 블리자드도 거기서 아이디어를 따온거 같네요. 그래도 제 머릿속의 코도 비스트는 그냥 코뿔소 입니다(…….)

    • 개인적으로는 블리자드 내부에 역사에 매우 통달한 사람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잘 알기는 무리거든요. 무엇보다 낙타를 코뿔소로 어레인지 한 것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거친 오크 무리에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동물은 더이상 없겠죠.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5. 들리는 바에 의하면 낙타는 지구력이 좋긴 하지만
    주인을 배신(이렇게 표현하는게 맞을랑가)하는 동물이라더군요.
    말같은 경우는 지치는게 보이지만 낙타는 표현하지 않다가
    사막 가운데서 쓰러진다고 들었습니다.
    아 두종류가 헷갈린건가..????

    • …아마 맞을걸요? 저도 낙타는 마지막에 한 번 엎어지면 그냥 끝이라고 들은 것 같습니다. 확실히 알아보려면 좀 더 자료를 찾아봐야겟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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