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인간관계

http://kr.news.yahoo.com/service/cartoon/shellview2.htm?linkid=series_cartoon&sidx=4768&widx=41&page=1&wdate=20080521

1.

아는 사람을 어쩌다 처음 마주치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웬 쌩뚱맞은 소리냐 싶겠지만, 나는 그런 적이 두 번이나 있다. 한 번은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에서 정시퇴근 님을 마주쳤을 때이고, 또 한번은 한달 전 훈련소 같은 분대에서 홍민희 군을 만난 것이다. 두분 다 온라인상에서 교분을 나누던 사이였는데 생각지도 않게 오프라인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이 느낌에 대해 설명하자면… 정말 묘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이 알고 있으니.

영화

어쩌다 마주친 것만 두 번이고, 아예 약속을 잡아서 본 경우는 상당히 많다.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서 뵌 분들도 있고, 다른 분들 술자리에 소개를 받아 낀 적도 있다. 이렇게 해서 만나뵌 분이 수십 명이 넘는데, 이런 경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어도 뻘쭘함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게 재미있다. 사람은 뭔가를 공유하면 금방 친해지는 법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해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던 사람들이다. 서먹하던 분위기가 금방 사그라진다.

2.

올해 초,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분을 만나뵐 기회가 있었다. 역시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업계 작가분이 다리를 놓아 주셨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그분께 왜 블로그를 접고 잠수를 하셨는지 여쭤봤다. 그 분 말씀이, 자기 블로그 때문에 피해를 본 분이 계시다는 것이었다. 그 분 일을 다른 회사 어떤 분이 몰래 도와 드렸는데, 두 분의 블로그를 꼼꼼이 보던 사람이 그 회사에 있어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덕분에 도와주신 분은 난처하게 되어버렸는데, 그 때문에 일단 블로그를 닫아 버리셨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분 블로그에는 실명 언급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일하는 업계 자체가 워낙 좁은 탓도 있고 해서 결국 사고가 터진 셈이었다.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블로그(혹은 인터넷)라는 것이 굉장히 편리한 툴이지만, 무서운 점도 있다. 무의식중에 내 일거투 일투족이 모두 기록이 되어서 남는다. 나와 일하는 사람들, 가족들, 심지어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따금 내 블로그 구독자들이 나보다 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해도 함께 경험을 공유한 시간을 따져보면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동거를 하지 않는 이상, 엄연히 따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고 할 수도 없고, 모두 기억에 남는 것도 아니다. 반면, 온라인 세계는 영원한 현재다. 블로그 포스트는 물론이요 조그만 덧글까지도 모두 기록이 되어 남는다. 그리고 1년 내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기록을 남긴 이에 대해서 증언한다.

3.

디지털 인간관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익명에 불과한 거, 리셋해 버리면 되지 않겠느냐는 투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인데, 온라인 세계에 익명성은 없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그 익명성도 덧글 한두 번 달 때까지나 가능한 것이지, 온라인 세계에 오랫동안 발을 담그게 되면 익명성 같은 건 사실상 사라진다. 좋은 싫든 현실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뭔가 사고를 친 인간의 신상이 털리는 일은 워낙에 흔해서 뉴스거리도 못 된다.

익명성이 없다면, 인간관계가 생기고 평판이 생긴다. 그리고 그 평판이 따라다닌다.1 평판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밝혀낸다.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거나 나의 일거투 일투족을 남이 알게 되는 경험은 갈수록 흔해진다. 가상과 현실의 구분은 희미해진 지 오래다. 게다가 앞으로 휴대폰 인터넷이 활성화되면 사람들은 거의 항상 로그인해 있게 된다. 오프라인에서 마주치는 것보다 온라인에서 마주치는 일이 더 많아지는 셈이다. 웃어넘길 수준이 아니다.

가상은 현실을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더 심하게 압도할 것이다. 온라인 지인을 현실에서 만나 친해지거나 현실의 일이 온라인을 통해 전파되는 일은 그 전조일 뿐이다.

“난 매트릭스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해.”

4.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편지, 전화 등 각종 도구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단들이 사회적 관계라는 목적에 종속되는 것 같지만은 않다. 오히려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책을 물려주고 물려받는 것은 인간관계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풍습은 이제 더이상 없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이래 인간관계는 항상 있어 왔다. 다만 그 수단은 여러 번 변화를 거쳤고, 그에 따라 인간관계의 형태와 의미도 여러 번 바뀌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인간관계의 의미가 가장 극심하게 변하는 시기를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ps) 인터넷을 이용해서 입에 담지도 못할 끔찍한 악담을 퍼부어대는([1], [2], [3]) 보수 우익들은 이러한 현실을 파악하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하기야, 그 머리가 되면 보수 우익질 따위는 하지 않겠지.


  1.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다. 온라인에서 과격한 이미지로 유명한 만화가가 알고보니 굉장히 점잖고 호감가는 사람일 수도 있다. 

6 thoughts on “디지털 인간관계

  1. 저는 인터넷은 현실의 인간이 활동하고 현실의 사건이 반영되는 곳이라는 측면에서 현실세계의 연장 혹은 확장의 개념으로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혁명적인 공간 개념이기는 해도, 결과적으로 사람이 거기 있다면 최소한의 원리 원칙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최소한의 원리 원칙도 ‘가식’으로 치부되더군요. 그리고 요즘 인터넷-현실 사이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만 하더라도 많이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이 듭니다.(대표적으로 찌질열전에 실리는 사례들만 봐도;;)

    뭐 인터넷이란 공간이 생긴지 대략 10~20년정도 되었으니, 아직은 도덕적인 아노미적인 시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확실히 “인터넷은 현실세계의 연장 혹은 확장” 인 게 맞지요. 다만 본문에서 밝혔듯 인터넷 속은 영원한 현재인 만큼, 현실세계와는 약간 다른 룰이 적용되겠지요. 그런 점에서 온라인 세계의 원리원칙은 현실의 그것보다 훨씬 무서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하나가 평생을 따라다닐 수 있으니까요.

      레비아탄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직 아노미적인 시기라는 데 동의합니다. 개인적으로 원리원칙 없는 사람들에게는 20년 뒤에는 그들의 자식이 그들이 쓴 글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볼 수 있습니다는 사실을 유념해 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그럴 때 얼마나 자신있게 나설 수 있을까요.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온라인 상에서 함부로 찌질대는 것도 함부로 못할 일이지요.

  2. 고등학교 시절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이 같은학교 같은반이었다는 사실….[실제경험;;]

  3. 문단 사이마다 넣으신 사진들이 정말 글을 잘 살리는 거 같네요.
    인터넷 사이에서 새로운 정체성이 부여되는 거 같지만
    그것은 언제나 현실과 접점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죠.
    그 접점으로 인해 현실 속의 자신이 위협받는 경우가 많은 거 같습니다.

    리승환 두목님의 블로그에서 트랙백 타고 왔는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