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풍경

  • 분향소에서 찍어 온 사진 슬라이드를 공유합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재생 – 화면확대 후 [공유]를 클릭해서 퍼가실 수 있습니다. 사진에 설명을 달아서 gorekunpekr[at]gmail.com 으로 보내 주시면 접수받는 대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물론 뻘메일 보내 주시면 전부 블로그에 공개해 드립니다 ㄳ)

#### 안식은 죽은 자의 권리다.

하지만, 기억은 살아가는 자의 의무다.

1.

한껏 늦잠을 자고 일어난 토요일 오전, 함께 살고 있는 경상도 노인에게서 소식을 들었다. 그저 “아,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 뿐, 거짓이겠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노인의 입꼬리는 소식이 거짓이 아님을 증언하고 있었다.

따지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좀 거북한 비유지만, 그 동네 어물전은 생선이 많은 만큼 꼴뚜기도 많고 상한 생선도 많1다. 멀쩡히 채용 결정된 사람을 맘대로 자르는 골빈 놈이 있질 않나, 문상 가서 입으로 대변을 보는 놈(들)이 있질 않나. 그런 불량 생선들에 비하면 입꼬리 조금 올라간 것 정도야 뭐…

어물전에 꼽사리 낀 쥐새끼야 닐러 무삼하리오.

2.

바보 노무현이 아직 대통령이었을 때의 일이다. 주간지에서 어느 청와대 고위 인사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임기가 끝이 보이고 바보의 인기도는 바닥을 기고 있던 차에 기자의 질문: “노대통령의 승부사 기질이면 아직도 지지도를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는 있지 않느냐?” 대답. “아니다. 노대통령의 승부는 버림으로써 얻는 것이다. 그러나 더이상 버릴 것이 없다.” 대략 이런 문답이 오고갔다. 흡사 오래 써서 남김없이 짜내버린 치약 튜브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진짜 바보는 나였다. 그 바보는 다 짜낸 튜브로도 아직 불을 붙일 수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능히 그럴 인간이었다. 고난을 각오하고 김영삼의 밑에서 뛰쳐나왔고, 낙선할 것을 알면서도 지역주의에 도전했던 바보였다. 나는 바보가 간 뒤에야 그걸 알아차렸다. 이런 바보.

3.

그는 자존심이 아주 강했던 것 같다.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한 그가 독학을 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하던 오기의 원천은 거기였다고 나는 믿는다. 전직 대통령에게 명패를 집어 던지고, 은사의 정치적 결정을 “야합” 이라고 비판하고, 언론 권력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었던 용기 또한 거기서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너네가 도대체 나보다 잘난 게 뭔데? 왜 내가 날 싸게 팔아넘겨야 하는 건데?

어느 정도는 이런 심정 아니었을까.

*사진 출처: 축배를 드는긴장감 감도는 대검찰청

정치인으로써 그의 이미지는 청렴 결백이었다. 그것이 그의 명예요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진중권의 말따마나, 그는 한국 정치인의 평균에 한참 미달하는 두께의 안면 가죽을 보유한 사람이었다. 최소한 그는 많은 정치인들이 포기한 부끄러움의 개념은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명예는 입증도 되지 않은 “혐의(혹은 주장)”를 마구 생방송해 대는 언론과 검찰에 의해 위기에 처해 있었다.

가장 소중한 것이 위기에 처했을 때, 부끄러움도 (조금은)알고 자존심도 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죽음으로써 명예를 지키는 것.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4.

노무현의 이미지는, 영화에서 찰리 채플린맡았던 역들과 비슷했다. 학벌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조차 없고, 변변한 정치적 세력도 없는 정치인. 그 주제에 바보처럼 원칙을 따지면서 기득권과 싸우는 역할(엄연히 역할) 말이다. 구두를 뜯어먹으며 연명하는 채플린 영화가 인기를 끌듯, 그가 기성 체제에 의해 구박을 받을수록 지지자들은 모였고, 단결했다. 아니꼬운 챔피언에게 도전하는 무명 복서에 열광하듯 환호를 보냈다.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대통령이 되었던 데는, 분명 그런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이미지는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침식되기 시작했다. 사정이야 어쨌든, 최고 통수권자가 약자 역할을 맡기는 힘들었다. 탄핵 등의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지지자들은 다시 모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그의 인기가 되살아난 것은, 새 권력이 농사 지으면서 사는 그를 들볶으면서다. 그는 이전에 맡던 역을 다시 맡았고, 봉하마을은 그의 공연장이 되었다.

인기를 끌었던 “노간지 라이더” 짤방.

이제 그는 죽었다.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는 대가성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고, 딱히 직접적 증거도 없는 듯하여 기소를 해도 포괄적 뇌물죄로 유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한다. 죽을 때도 핍박받는 약자 역할을 하면서 죽었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하는 수모를 겪고, 온몸의 뼈가 조각조각나서 세 시간만에 죽었다. 늙은 광대의 마지막 연기. 그다운 이미지다. 어떻게 보면, 노무현의 자살은 정치인으로써의 자기 완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5.

어젯밤 회사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잘 기분이 들지 않았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밤을 샜다. 아침 8시, 덕수궁으로 나갔다. 분향소가 있었다. 아침부터 많은 이들이 분향을 하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각하” 따위의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권위적인 낱말이라고 생각해서다. 내가 노무현에게 (이라크 파병이나 경제정책 등에 비난을 퍼부으면서도)애정을 가졌던 이유는, 그가 계급장 떼고 논쟁을 할 정도로 체신머리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결국 그 체신머리없는 사람의 영정 앞에서 “각하, 이제 편히 쉬십시오.” 라고 말하고 물러나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분향을 마치고 되돌아서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지만, 기억을 되살려 보면 자존심 강한 그다운 마침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네티즌들이 제안하는 촛불시위 같은 데 동의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알았던 것. 몰랐던 것. 잘한 것. 못한 것.

이루려했던 일. 이루어진 일. 이루지 못한 일.

6.

안식은 죽은 자의 권리다.
하지만, 기억은 살아가는 자의 의무다.


  1. 분명히 밝혀 두건대, 특정 지역의 대다수 선량한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모욕할 의도가 전혀 없다. 나와 친분을 나누는 많은 분들 – 永革, 정시퇴근, antilove, sikh, Azyu, Elmo… 모두 그 지역 사람들이다. 

16 thoughts on “죽음의 풍경

  1. 다음 세대로 전해질 그분의 명언이 있죠.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아마,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부끄러움과 자존심에 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던 분 아니었나 싶습니다.

    • 한국 정치인이 그 정도면 야차들 사이에서 부처가 난 만큼이나 준수하죠.

  2. 단단한 논리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깊은 인상 받았습니다. 많은 부분에 공감합니다.

  3. 무엇이 전직 대통령에게 자살이라는 자기 파괴를 하도록 몰아 세웠는지 알고싶네요.
    누구의 잘못일까요…
    왜 죽을 수 밖에 없었는지…. 안타까우면서도 화가 욕지기처럼 치밀어 오릅니다.

    왠지.. 지금 MB는 임기가 끝날 때쯤… 야반도주를 하거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 2MB가 야반도주를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안 그래도 깔 게 많은 양반인데 지금같이 애도를 해야 마땅한 기간에 더 깐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구요.

      일단은 애도를 하고, 차분하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논의해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전직 대통령 스스로를 끔찍하게 파괴하도록 만든 이들은 상당히 명백하니까요.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4. 돌아가신 분께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이번 사건은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한꺼번에 깨워버린 각성제 같은 사건인 거 같습니다. 희망적으로 본다면 지금까지의 썩은 정치구조나 바뀌지 않은 많은 부조리한 것들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 보이기도 합니다. 이제 문제는 국민들이 이 문제에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인데…지금 현정부의 대처하는 꼬락서니를 봐서는 걱정이 앞섭니다;

    • 저도 동감합니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답답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지만.. 이걸 계기로 앞으로 국민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 어떤 시각을 가지고 정치계를 바라보느냐가 더욱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본시오 빌라도가 예수를 곤장 때려 귀양 보냈다면 기독교는 세계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앞으로 노무현이 가지게 될 이미지가 어떠할지 짐작해볼 수 있겠지요. 노무현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뭘 남기게 될지는 차차 고민해보았으면 합니다.

  5. 좋은 글 감사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직을 담아내기엔 우리의 정치판이 너무 비좁고 혼탁했지요.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정치판도 수준 이하였지만 그 정치판을 만들어낸 국민들의 수준도 한심하다고 생각합니다. 노전대통령 서거로 인해 국민들 또한 자기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봤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노대통령도 편히 쉴 수 없을 겁니다.

  6. 혹시 작통권 관련 연설… 제가 원하는 자주국방의 모습이 참 잘 나타나있는 연설인데, 혹시라도 안보셨다면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전 그 연설을 보고 참 감동받았거든요.:)

    하지만 자살이란 행위는 납득이 힘듭니다.
    그가 만약 정치적 이유로 택한 수단이라면 개인적/도덕적으로 실망이고
    그가 만약 개인적 이유로 택한 수단이라면 정치적으로 실망입니다.
    살아남아주셨으면 좋은날이 있었을텐데..

    물론 저는 후자에 훨씬 무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전의 그를 보면 알 수 있듯, 그가 정치적으로 몰고 올 여파를 계산하여 몸을 던졌을리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상징성을 버렸다는 점, 전직대통령으로써 뿐만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구심점으로서, 또한 이번 검찰사건을 끝끝내 결백으로 입증했을경우 (물론 그 경우의 여파는 현상황을 핵폭급으로 비유한다면 장사정포 1기에도 못미치겠으나)를 고려한다면, 탄핵때도, 한미FTA때도, 이라크파병때도 지지자였던 사람으로서 좀 더 버텨주시지 라는것이 마음에 남습니다..

    mb로선, 또 한나라당으로선 정말 할말이없을정도로 수세에 몰리겠군요. 우리나라 국민성이 특이하게 감정적인 부분이 많은지라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지지율은 제로극한으로 수렴하게될테니..

    그리고 서울광장을 막은것은 현정권으로선 최선의 방어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중폭발가능성이 높은 사망 직후 몇일간은 잠시 닫아둠으로써 뇌관을 제거한점, 전국 각지에 분향소를 설치함으로써 화약양을 줄인점, 그리고 마지막 영결식당일은 그 문을 개방하여 ‘열기는 열었다’는 것을 모토로 하여 도의적으로 최악의 욕은 모면한점. 똑똑한 대처입니다.. 난 신경질 나지만..

    그가 남길 파장..
    아마 대다수 국민이 쇼크성 자아비판을 하게될것이고, 인터넷 여론이 더욱 득세할것이며,
    수많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자신의 지지이유를 다시 묻게 될것이고,
    소수정당들의 의견이 강세를띨것,
    그에따라 국민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훨씬 다양해질것,
    박근혜는 차기대권에서 당분간 멀어질것,
    이명박대통령은 자신의 소신을 굳건히 지킬것이고(그래주길 바램),
    경제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지만 반드시 수치에 나타나는것만이 경제적 영향이 아니므로 .. 긍정적..
    모두 긍정적인 영향이지만, 마지막 하나 부정적 영향이 있군요.

    언젠간 우리 모두의 기억속에서 흐릿해질것.
    그리고 그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올것이라는것.

    사공명 주중중달.. 맞는 말인지 모르겠는데, 이 고사가 생각나는 밤이로군요. 안타까운것은 결국 역사의 승자는 사마씨였다는것..

    • 저 역시 노대통령에게 애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대부분 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만, 그가 스스로의 상징성을 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셨더라면 이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지는 못했을 겁니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무죄로 판명되었어도 말이죠. 오히려 죽음을 택했기 때문에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어간 예수가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듯.

      마지막으로 저는 박근혜가 차기 대권에서 그리 멀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박근혜라면 특정한 정치적 업적이 없는데도 무조건 지지하는 수많은 경상도민들이 존재하지요.

      좀 더 제 생각을 밝힌다면… 그녀는 엄연히 한국 사회에서 현존하는 박정희 현상의 부산물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그녀가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이 미래의 한국을 위해서는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대에 걸맞지 않는 환상은 깨버릴 필요가 있지요. 그걸 위해서 5년쯤 희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 늦게 리플을 달았습니다만..
      박근혜씨는 현재 살짝 소강상태군요. 뭐 경선까지는 무난히 올라오시리라 생각을 합니다.

      저는 박근혜씨를 지지하지 않습니다만, 그분의 정치사상에 대해 아는것이 일천하므로 님의 지지에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분 역시 그런분이시라면..
      5년은 너무 깁니다
      현명한 투표가 필요한 시점이군요.

    • velvetpreneur // 전 박근혜씨 지지 안합니다. 한국인들아 한 대 맞아봐라… 뭐 이런 기분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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