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바다의 폭풍

렘브란트 반 레인, 갈릴리 바다의 폭풍(Christ in Storm on Lake of Galilee), 1633

허먼 멜빌의 에 나오는 이야기. 포경선 선원들은 피뢰침에 꽂힌 번갯불을 신성시하며 두려워하는 습관이 있다. 작가에 의하면, 이것은 “성 엘모의 불”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포경선 선원들1이 가진 일종의 미신이다.

포경선 뿐만이 아니다. 원양어선이든 잠수함이든, 배에는 특유의 미신 혹은 징크스가 유난히 잘 따라붙는다. 이런 건 아마도 선원들이 가진 직업적 특성에서 오는 것일 게다. 거대한 폭풍우와 같은 자연의 불가항력을 일상적으로 체험하고 나면 누군들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생기지 않을까. 조선과 항해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거대한 배가 난파하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그들이 느꼈던 두려움의 크기는 말할 수 없이 거대한 것이었으리라.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1633년에 그린 것으로, 그의 유일한 바다 풍경화다. 이 이야기는 마태오의 복음서 8장에 나오는 이야기2를 그린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수와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갈 때 거센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히게 되었다. 그 때 예수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제자들이 달려와 그를 깨우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예수가 왜 이리도 믿음이 없냐며 제자들을 나무란 뒤 바다를 꾸짖자 바다는 즉시 잠잠해졌다. 사람들이 모두 놀란 것은 물론이다. “도대체 이 분이 누구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하는가?”

갈릴리 바다의 석양. http://www.flickr.com/photos/emeryjl/508230115/

렘브란트가 살던 시절, 항해는 지금보다도 훨씬 힘든 일이었다. 폭풍우에 난파하는 배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길을 잃거나 바람이 불지 않아서 난파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항해를 무사히 마친다 해도 죽어나가는 선원이 흔했다. 배를 타는 일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당시 지도나 각종 조각에는 바다에 괴물을 새겨 놓은 것도 있다. 당시 네덜란드는 원양 무역의 중심이였으니, 렘브란트가 이런 전후사정을 모르지는 않았을 게다.

폭풍우치는 바다. 일엽편주에 탄 열 세 명의 사람. 겁에 질려 배를 꼭 잡고 있는 제자들. 평온하게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의 아들. 인간의 언어로는 결코 표현 못할 강렬한 대비다. 이런 그림을 보다 보면, 누구든 가슴속에서 절로 신앙심이 우러나오지 않을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구원이 바로 저기 있다. 이렇게.

나는 렘브란트를 아주 좋아한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특유의 양감이 신비로워서다. 그는 많은 종교화를 남겼기 때문에 작품집을 보다 보면 정말 많은 성화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 이상으로 경건해 보이는 그림을 보지 못했다.

참고문헌

이브 코아, , 시공사, 1995

파스칼 보나푸, , 시공사, 2003


  1. 멜빌도 포경선 선원 출신이었다. 

  2. 마르코서 4:35~41, 루가서 8:22~25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4 thoughts on “갈릴리 바다의 폭풍

  1. 렘브란트가 느끼기에 가장 경건한 느낌이 드는 대목이었기 때문인 거 같네요.
    어떤 인간이던 현재 자신의 시대에 맞춰 생각하고 빗대기 마련인데 그런 점에서 볼 때 바다에서 보여진 저 행위가 어떤 의미로 다가갔는지 알겠습니다.

    • 그렇죠. 누구나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 보는 게 사람의 천성 아니겠습니까. 사막에 사는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사막에서 악마에게 유혹을 받는 이야기를 가장 인상깊게 읽었을지도 몰라요.

  2. 제가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저런 그림을 보면 괜시리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낍니다.

    (과연 예수님은 대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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