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인생의 필수조건인가? (2)

‘연애’ 수입사(史)의 인식

우리 솔로부대는… 하나다!!

요즘 계집애들은 걸핏하면 사랑 사랑 하니 모두들 기생이 되겠단 말이냐, 갈보가 되겠단 말이냐? 원그런 해괴한 말법이 어디 있어? 설사 내외간이라도 아내는 남편을 공경하고 받드는 것이요 남편은 처가속을 돌아본다고 하지,사랑이라는 말을 어디에 써?

춘원 이광수의 에 등장하는 한 중년 부인의 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20세기 초 사랑, 혹은 연애란 한국의 기존의 사회 체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풍습이었다.그럴 만도 했던 것이, 전근대 한국 사회의 결혼에서도 부부 간에 애정 같은 것은 설 자리가 없었다. 대가족 체제의 축은 부부가 아니라 부자 관계였으며, 여성은 아내이기 이전에 며느리 그리고 어머니였다. 부부 사이에서 강조되었던 것은 애정이라기보다 공경과 분별이었다. 부자 사이에서도 함부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사회였으니, 부부 사이의 애정 같은 것은 바람직하다고 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대의 기성 세대가 사랑이라는 말에 “그런 해괴한 말법이 어디 있느냐?” 며 반발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부부간의 애정 – 그리고 그 수단으로서의 연애를 용납하지 않던 사회적 분위기는 1920년대에 들어 달라지게 된다. 이 시기는 쉽게 이야기해서, “현대 문명에 뒤떨어진 미개한 한민족을 바꾸어 보자!” 라는 이른바 민족 개조론의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현대적 사회의 기본 단위는 부부 관계를 중심으로 한 핵가족(소위 ‘스위트 홈’)이지, 부자 관계를 중심으로 한 대가족 제도가 아니다. 그러니 사회를 개조하려면 일단 구식의 가족 제도부터 개조해야 한다. 자연히 대가족 제도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연애 열풍이 불었다. 부모가 정해 준 조혼 상대에 결별을 선언하는 남자들이 일반화된 것이나 과 같은 연애 서간류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것은 이러한 시대 분위기의 반영2이다.

물론 연애 열풍보다 미래에 투자하는 태도가 훨씬 건전하고 유익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당대의 언어적 변화 또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생각하다’ 라는 뜻이었고, 20세기를 넘어가며 의미가 바뀐 뒤에도 남녀간의 감정이라기보다 “나라 사랑” “신에 대한 사랑” 과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를 거치면서 이 말은 지금과 같은 의미로 변화한다. 기존의 한국어에는 영어의 Love에 해당하는 말이 없었기에, 그 의미를 표현할 말이 필요했기 때문3이다. 이와 동시에 ‘연애’ ‘연인’ 과 같은 말들이 일본에서 번역되어 들어와, 지금까지 한국어의 일원으로 자리잡았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기진 또한 “연애라는 말은 근년4에 비로소 쓰게 된 말.” 이라 하여, 연애라는 말이 1910년대 등장하여 20년대 들어와서야 일반화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짧게 이야기하자면, 한국에서 연애라는 풍습은 수입된 지 100년도 채 안 되는 풍습이다.

근대의 폭력, 근대의 야만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연애라는 풍속은 만들어진 지 채 200년도 안 되는, 수입된 지는 100년도 안되는 풍속에 불과하다. 따라서 연애를 “그 방법을 배워서라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으로 보는 것, 솔로들을 “노력을 기울여서 탈출해야만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 로 보는 것은 매우 부당할 수밖에 없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최신 유행’이라면, 자기 의지에 따라 안 할 자유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솔로들은 그 자유를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매우 실제적인 질문: 연애하는 데 시간과 돈을 다 쓴다면 덕질은 언제 하고 지를 건 어떻게 지르겠는가?

지난 20세기를 흔히 야만의 세기라고 한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만큼 유난히 학살과 유혈이 멈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 작용한 것은 함부로 우월하다 열등하다 딱지를 붙이고, 열등하다 규정된 존재를 지워 버리려 했던 근대의 사고 방식이었다. 연애를 인생의 필수조건으로 보는 시각은 결국 근대식 야만의 재탕일 뿐이라고, 본인은 감히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우리 솔로들을 뭔가 모자란 존재로 끌어내리려 하는 군상들에게 바치는 말과 함께 이 글을 마치도록 한다:

자칭 솔로들을 위한다고 하는 잔소리쟁이에 지나지 않는 이 커플부대원들과 연애 지상주의자들, 그리고 겁쟁이 싱글 반군1들은 다 가버려라! 역사의 쓰레기통에나 들어갈 쓰레기들아!!

참고문헌

필리프 아리에스ㆍ조르주 뒤비ㆍ미셸 페로 저 / 전수연 역, , 새물결, 2002

장 루이 플랑드렝, , 동문선, 1994

권보드래, , 현실문화연구, 2003

왠지 매우 진지하게 병신력을 발산했다는 기분이 들지만 상관없어


  1. 애인이 없으면서도 솔로부대로 취급받길 거부하고, 커플이 되길 열망하는 일종의 반역도당. 

  2. ‘B 사감과 러브레터’의 B사감 같은 캐릭터는 이 시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3. 실제로 채만식의 작품에는 ‘러브’ 라는 표현을 그대로 쓴 적이 보인다. 영어의 Love에 해당하는 단어가 기존의 한국어에 없었던 것이다. 

  4. 1920년대를 가리킨다. 

15 thoughts on “‘연애’는 인생의 필수조건인가? (2)

  1. 엇, 국어작문(요즘은 대학국어) 권보드래 강사님 저런 책도 쓰셨네요. 어느새 교수님이 되셨군요. 출생년도를 보니 강사 하시던 때 연세가 지금 제 나이네요. 세상에

    • 통계학과나 국문과에서는 박사과정 학생이 바로 1학년 과목 강사로 투입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권 박사님이 형 대학국어 담당이었다니, 세상 참 좁네요! :)

    • 버럭!! 이런 놀라운 학문적 성취에 대해 겨우 이런 반응이라니!!

  2. 시기에 아주 적절한 글입니다. (짝짝짝… (거만한 박수))
    유지 기간도 짧지만, 역사도 짧았군요.

    머, 지나보면 별거 아니라죠… s-_-z

    – 늙은 탈영병 –

  3. 궁정적 사랑이 인문학 쪽에서는 낭만주의 시대에 복고문화의 일종으로써 발명됐다고들 하는데 동물행동학 쪽에서는 진화적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으음….

    • 제가 그 동물행동학쪽 주장을 못 봐서 함부로 말씀드리기는 뭐한데, 인간의 문화가 성립하는 데는 진화적, 심리적 이유 외에도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한다고 봅니다.

  4. 참, love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최근까지 없었다는 건 꽤 충격적입니다.

    @ 근데 “愛”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어땠는지 궁금해지는데요…

    @ 참, 그럼 love라는 단어, 또는 “eros”라는 단어가 가지는 “사랑”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아는 “연애”의 사랑과는 별 연관이 없는 걸까요… 아, 뭔가 막 헷갈리고 있는… -_-;;

    • “그녀” 같은 표현도 20세기까지 없었죠. 심지어 회식의 대명사라는 삼겹살도 60년대 말인가 탄생했다고 하니까, 우리가 상식으로 아는 것 중 상당수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셈입니다.

      + 愛 같은 경우도 옛날에는 지금과는 그 의미가 많이 달랐죠.
      + love는 우리가 아는 사랑 내지 연애가 맞는데, eros는… 음, 성욕 정도로 번역하면 될까요?

    • 천성적으로 사악한 것이거나 커플부대의 공작에 넘어가고 있는 증거로 보입니다. =3=3

  5. 놀라운 고백 하나 해야겠음요. 솔로부대에서 탈영하고자 집에 저녁 초대한 남자가 알고보니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였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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