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 잡던 그 사나이 (2)

오다 노부나가와 회견하는 사카이 타다쓰구. 의 한 장면.

(새우 잡던 그 사나이 (1)에서 계속)

다케다 군단병들을 기존의 가신들에게 분배해 주는 것은, 이렇게 문제를 발생시킬 소지가 많은 것이다. 나오마사는 4대 천왕 중 유일하게 조상 대대로 도쿠가와를 섬긴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대에 이르러 이에야스의 가신이 된 신참이다. 따라서 이들을 나오마사에게 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좋은 점은 많다. 우선 어울리지 않는 큰 상1을 받은 나오마사가 감사하는 마음에 더 열심히 뛸 거라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다. 실제로 나오마사는 이에야스가 천하를 통일하는 계기가 된 세키가하라 전투(1600)에서도 선봉을 섰2다. 여기서도 큰 공을 세웠지만, 적을 추격하다 부상을 입어 오른팔을 못 쓰게 되었고 2년 후 죽었다.

둘째로, 나오마사는 이들을 가장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대장이 능력이 있다고 해서 부하들이 잘 따르는 것이 아니다. 일단 부하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말이 쉽지, 어제까지 적장이던 사람에게 믿음을 품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오마사라면? “나 역시 너희처럼 다른 데 출신이다. 그러니 과거는 잊고, 앞으로는 나를 믿고 따르라.” 부하가 된 다케다 군단병들에게 나오마사가 던진 첫 마디는 아마도 이렇지 않았을까? 흡사 이름을 써 놓은 것처럼 이들을 통솔할 적임자 – 그건 나오마사 뿐이다.

http://www.flickr.com/photos/bit-101/433147587/

마지막으로 가장 좋은 점은, 이것이 일종의 선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군께서는 능력 있는 사람을 인정하신다. 그러니 충성을 다하고 용감하게 싸워라.”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듣는 사람이 그걸 믿는 건 별문제다. 하지만 직접 행동으로 보여 준다면? 고참들에게도 안 주는 병사들을 신참에게 몰아주는 모습을 직접 보여 준다면? 믿고 따르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4.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사카이 타다쓰구에 얽힌 일화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사카이에 대한 일화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있다. 새우잡는 모습을 흉내낸 춤(통칭 새우잡이춤)을 잘 추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케다와의 결전이 벌어지기 전날 밤에도 모여든 장수들 앞에서 이것을 추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묘사된 적이 있으니, 아마 한두 번쯤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군신 다케다 신겐이 죽었다고 하지만, 다케다 군단은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내일이면 이런 자들과 싸워야 한다 – 전투 전날 도쿠가와 진영의 착 가라앉은 무거운 분위기는, 짐작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긴장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이에야스는 사카이에게 부탁을 했다. 새우잡이 춤을 한 번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주군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건 정말 무리한 부탁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카이는 나이도 많다. 새파란 신입들 보는 앞에서 온몸으로 개그를 펼칠 군번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사카이는 했다. 보통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재미있는 광경으로 그려지는 게 보통이지만, 나는 사카이가 마음 속으로 되내었을 굳은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주군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개를 잡든 닭을 잡든 상관 없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신입한테 이런 걸 시키면… 이렇게 된다: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26316&no=72&weekday=sun

사카이에게 붙는 칭호가 있다. “도쿠가와 4대 천왕의 필두” 아마 나이도 제일 많고 신분도 제일 높으니까 그런 별명이 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필두라는 말보다 맏형이라는 말이 더 어울려 보인다. 위로는 주군을 받들고 아래로는 동생 4천왕들과 신참 하나하나의 마음까지 챙기는 사카이.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 모습을 상상한다면, 누구든 내 의견에 동의하리라 믿는다.

얼마 전, 인기 아이돌 그룹 하나가 소속사와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다. 나는 뉴스를 보다가, 한 멤버(H)의 아버지가 일본 Tv에 나와서 하는 말을 보았다. “소속사가 일을 잘 못하는데… 큰언니(P)가 소속사하고 멤버들 사이 조율을 잘 못하더군요.” P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소속사에 계약 파기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사카이 타다쓰구를 떠올렸다. 도쿠가와 4천왕을 현대로 데려와서 저 자리에 두면 어떻게 될까? 누가 인기가 있을지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해 보였다. 거기서도 사카이가 리더일 것이며, 최소한 그룹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소속사가 일을 못 할 때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5.

히코네 류 갑옷의 세부. http://www.flickr.com/photos/bit-101/433147202/

종종 을 플레이한다. 어느 날, 포로로 잡힌 사카이 타다쓰구의 능력치를 들여다봤3다. 통솔 90. 무력 86. 지략 74. 보병 적성 A. 썩 좋은 능력치다. 상대하기도 버거운 적에게서 이런 포로를 잡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죽음을 내린다. 살려두기엔 너무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 세력에 소속되어 있을 때라면, 그는 가장 아껴 쓰는 장수 중 하나다. 능력치가 출중하니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카이에게는, 능력치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멋진 인상이라기보다 고집 세고 우직한 시골 무사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하지만 촌스럽다거나 답답하다거나 하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다만 말없이 견고하면서도 안정적인 뭔가가 느껴졌다.

사카이가 있으면, 아니 사카이만 있으면, 웬지 든든하다. 나는 이 든든한 적장을 풀어 주면서, 또 전장에서 보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읽어 보면 좋은 글들

도쿠가와 4천왕에 대한 발해지랑 님의 글들.

사카이 타다쓰구

혼다 타다카쓰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이이 나오마사


  1. 이이 나오마사는 4대 천왕 중에서도 막내다. 

  2. 여기에 대해서는 이 글 참조. 

  3. 최신작인 “천도” (13편)를 기준 

4 thoughts on “새우 잡던 그 사나이 (2)

  1. 이 시리즈의 처음을 보고 ‘붉은 갑옷과 새우의 관계를 몰라서’ 뭐라고 코멘트를 해야할지 몰랐는데 이런 이야기였군요! 저는 도쿠가와의 가신은 잘 몰랐는데 ‘더 읽어보면 좋은 글들’을 통해 좋은 정보를 얻게 되네요. 인내의 천하인도… 아들이 할복한 것에 관해 뒤끝이 있으셨군요. ^^;;
    동양에서 더 심한 것 같은데, 어느 곳이나 맏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천하를 얻는 사람에겐 이런 훌륭한 부하가 있었군요.

    • 예, 어느 조직이든, 대장도 대장이지만 그 밑에서 반장 노릇 하는 사람의 역할 역시 크다고 생각합니다. 둘이 잘 조화를 이루었을 때 대업을 성취할 수 있는 거겠죠.

      그리고, 이에야스가 노부나가의 강압에 못 이겨 자기 아들을 할복시켰다는 이야기는 전설일 뿐, 역사적인 근거는 그리 없다고 합니다. 당시 정황상 노부나가가 이에야스에게 그럴 상황도 아니었을 뿐더러, 관련 내용을 쓴 역사책 자체가 19세기에나 쓰인 것(그것도 이에야스 찬양하기 바쁜)이라고 하더군요. 관련 내용은 좀 더 검색을 해보시면 나올 겁니다.

  2. 잘 읽었습니다.
    (아울러 위키도 있을 터인데 제 못난 번역글로 링크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 )

    …근데 왠지 노부나가의 야망을 하시면서 쓰신 글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군요.

    • 정확히 보셨군요. 게임 하다가 쓴 글 맞습니다. :) 그리고 못난 글이라뇨? 아주 매끄럽게 번역되어 있어서 주변 지인들에게 자주 추천하는 글입니다. 좋은 글들 번역해 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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