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 악마를 본 적은 없다.

#### 하지만 악마가 지나간 자리를 본 적은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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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생활이 어떤 모양새가 되었건 간에, 한 해를 함께할 급우를 확인하게 되는 학년 첫날은 누구에게나 각별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는 몰랐지만, 내게도 4학년의 첫 날은 묘하게 각별한 날이었다. 급우 한 명이 학교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정이 있다 한들, 학년 첫날은 한 해의 시작이고 따라서 웬만해선 오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 ‘보통’ 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이상한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 애와 지난 학년을 함께 한 아이들이 수근거리는 걸 듣자니, 그 아이(여자애였는데)는 지금 정신 병원에 있다고 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아직도 그 날을 생애 처음 마주친 황당함과 함께 기억한다.

일찍 수업이 끝나고, 형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형은 나보다 두 살이 더 많다. 얘기를 꺼냈다. “있잖아, 우리 반에, 한 명 오늘 못 왔다. 정신병원에 있대.” 반응은 뜻밖이었다. “어? 너네도 있어?” 형네 반에도 한 명이 같은 이유로 학교에 못 왔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 쪽은 남자였다. 학교에 못 와서 얼굴은 못 봤지만,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고 얼핏 들었다고 했다.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오늘 학교에 못 온 그 아이도, 두 살 많은 오빠가 있었던 것이다.

2.

나는 그 아이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름은 세월이 흐르는 새 잊어버렸기 때문이지만, 얼굴은 그 때도 기억을 하지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 아이는 학교에 나오는 날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에 와서도 말이 없고 항상 조용했었다. 대화하는 모습, 어울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그래, 그 애에 대해서는 더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으니, 그 애의 아비란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더 낫겠다. 나는 그의 아비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은 있는데, 우리 형이 교무실에 찾아온 그를 본 것을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간단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더라.”

한 마디 뿐이지만,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하는 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모자라고 개념 없는 사람이라도, 자식이 다니는 학교 찾아올 때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격식을 갖추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맨발에 슬리퍼로 왔댄다. 그 아비란 사람이 자기 자식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더이상 설명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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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태도에도 곡절은 있는 모양이었다. 듣기에, 그는 꽤 잘 나가는 치과의사라고 했다. 하지만 전처와 이혼을 했고, 지금은 후처와 함께 산다고 했다. 그리고 그 불행한 남매는 전처 소생이었다. 그 아이가 왜 정신병원에 보내졌는지, 왜 항상 말이 없고 주눅이 들어 있는지, 부모에게서 어떤 대접을 받고 사는지는 어린 내 눈에도 빤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어느 금요일 밤, 9시 뉴스를 통해 열 살 남짓한 소녀가 아버지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3.

뒤이은 월요일 아침, 시끌벅적해야 할 초등학교 교실은 복도서부터 무서우리만큼 조용했다. 교실에 들어서니, 그 아이가 앉던 자리에 흰 꽃다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아이와 가까웠던 몇몇 소녀는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련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까. 당시 전국이 발칵 뒤집어졌기 때문에 아직도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게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 이런 사태가 필연적이었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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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에 대해, 아니 남매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선생님들이 그 남매에게 점심과 저녁을 챙겨 먹였다는 것이다. 집에서 제대로 먹이질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몰랐던 게 아니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남매는 끔찍한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성장기에 제대로 밥을 먹지도 못했으며 오히려 폭행을 밥 먹듯 당했다. 하지만 아무도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4.

1998년, 영훈이 남매 사건이라는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와 계모가 어린 남매를 학대해 누나를 굶겨 죽인 사건이었다. 죽은 누나는 집 앞마당에 암매장된 채로, 당시 6살이던 동생은 뼈만 앙상한 채 사망 직전에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아동학대 문제를 공론화시킬 정도로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지만, 아직 중학생이었던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냥 예전에 본 영화 Tv에서 다시 틀어주는 느낌이었달까.

뭔가 충격적인 일이 벌어질 때면, 입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나서서 당사자들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저자거리에 악마라도 나타난 것처럼.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문제를 또다시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반에서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을 때 당사자들을 비난하는 반의 반만큼이라도 재발 방지 대책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학대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법적/사회적 개입이 가능하도록 했다면, 영훈이 남매에게 같은 일이 반복될 필요도 없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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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옷 유다의 발을 잡아당기고 있는 악마.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어느 인터넷 신문에서 연재된 아동 학대 관련 연재기사([[1]](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11227020926&section=03), [[2]](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11227223927&Section=03), [[3]](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11229014825&Section=03))를 읽다가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딜 가나 극단적인 “또라이”는 있기 마련이지만, 읽다 보니 이런 류의 또라이는 아직도 꽤 흔한 모양이다. 사고를 친 당사자 입에서 “내가 내 자식 때리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 같은 말이 튀어나오고 있는 걸 보면 자기가 저지른 일이 범죄라는 인식조차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미성년자를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니라 어딘가에 딸린 부속품 취급하는 사고방식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겠다. 미성년자를 독립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으니, 내가 내 물건 마음대로 하듯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기야 “학생에게 무슨 놈의 인권이냐”라는 헛헛한 소리가 백주 대낮에 울려퍼질 수 있는 걸 보면 이런 류의 사고방식은 어딘가 음침한 구석에만 박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1].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악마를 만들어내는 사고 방식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한, 우리는 악마를 비난할 자격이 없으며 오히려 악마의 조력자다.**

[^1]: 물론 아직 체벌 외에 별다른 처벌 기제가 없다는 것, 이에 따라 인권 조례 시행으로 인해 체벌이 불가능해지면서 학생 지도에 어려움이 있을 것임은 인정한다. 그런데 그러면 거기에 대한 대안을 공론화할 일이지, 인권이 없다고 할 상황은 아니다. 있네 없네를 논하는 순간 그건 이미 인권이 아니다.

4 thoughts on “악마

  1. 악행앞에서 침묵하는걸 중립적인 위치라고 핑계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악행을 방관하는 거야말로 진정한 악행이란 말씀이로군요. 불이 났으면 끄려고 해야지 불구경을 해선 안될 일입니다.

    • 일단 총론적으로는 그렇고, 좀 더 디테일하게는 아동학대 같은 건에 사람들이 분노만 하지 않고 끝났으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재발 방지 대책이나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노는 위선 이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2. 잘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아직도 아동~청소년의 양육은 본질적으로 ‘부모가 알아서 잘~’ 책임진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그게 넘쳐서 “내 자식(껄?)을 내가 맘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라는 투의 소유물로 보는 관념이 강한 것 같습니다.

    법원에서 종종 비행을 저지른 부모에 대해서 친권박탈과 같은 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인터넷 상에서 문제가 되는 걸 봅니다만, 법원도 생각이 없어서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부모를 대신해서 양육해줄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미국이나 서유럽이었다면 친권박탈+장기 복역 확정일 텐데도 말입니다)

    그런 고민 하에서는 개별적인 개입노력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만, 사회적인 관념의 변화,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또한 변화된 관념에 의해서 지지되어야 하는) 사회적 양육시스템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 예, 저도 사실 미국 같은 데서 친권을 박탈하고 법원에서 대리 후견인을 지명하는 것, 그리고 당당한 직업을 가지고 소득도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그걸 맡아서 하는 게 참 인상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쉐도우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애시당초 그런 기반이 있으니까 국회에서도, 법원에서도 친권 박탈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겟죠. 서구 선진국에서 그런 제도가 발달해 온 역사를 고찰해 보는 것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확장하자면, 어떠한 사회적 제도를 개선할 때 그 제도 자체에 관심을 쏟는 것도 좋지만, 여기에 필요한 기반 시스템을 확충하는 것 역시 선결과제로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후자에 대해서는 대체로 사람들이 관심을 덜 가지더군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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