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코드

  • 이 글은 내가 좋아하는 사진의 토막글입니다.

1.

1943년 2월, 독일 제국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지난 4년간 독일군은 유럽 전토를 제패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전황은 갈수록 불리해져 가고 있었다. 1943년 7월, 독일군은 전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대군을 동원하여 러시아 남부를 공격했지만, 실패했다.

독일이 러시아와 싸우는 데 정신이 팔린 사이, 영미 연합군이 이탈리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 독일군 사령부는 공수부대를 급파했다. 독일군 공수부대는 이탈리아 중부 산간지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연합군의 진격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1944년 1월부터 5월에 이르는 거의 반년간, 중부 이탈리아의 산악지역에서는 독일군과 연합군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흔히 현실만한 부조리극도 없다고들 하지만, 이 전쟁만한 난장판은 동서고금에 유례가 없었다. 초대한 집주인은 뒤로 빠지고, 놀러 온 손님끼리 파티장에서 멱살을 잡는 꼴이었으니까. 한 독일군 공수부대원이 눈 덮힌 산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위 사진은, 바로 이 엉망이 된 파티장에서 찍힌 것이다.

2.

그런데, 이 사진은 굉장히 알아보기 쉬운 사진에 속한다. 2차대전사를 조금만 읽어본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 누구를 찍은 사진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 공수부대의 군복과 철모는 일반 육군 부대와 크게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몇 장만 본 사람이라 해도 이 사진이 공수부대원을 찍은 것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게다가 독일군 공수부대가 눈 덮힌 산악에서 전투를 벌인 것은 1944년 이탈리아 전선이 거의 유일하다. 이 사진에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940년 영국에서 발행된 엽서. 적군(=독일군)의 다양한 복장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특히 이 엽서는 일반 독일 보병(오른쪽)과 공수부대원(왼쪽)의 복장을 대조시켜서 보여 주고 있다. 공수부대 특유의 철모와 강하복, 그리고 더 간편해 보이는 군화가 잘 묘사되어 있다.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공수부대원을 일반 보병과 가장 크게 구별짓는 것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철모와 위장복. 그런데 공수부대 특유의 동글동글한 철모도 철모지만, 진짜 큰 구별점은 위장복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위장복은 지금과는 달리 아무나 입을 수 없는 것이었던 탓이다.

지금은 모든 군복에 위장색이 칠해져 있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각국의 육군 조직이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화려한 색상의 군복을 포기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100년 남짓한 일이다. 그나마 짙은 회색이나 카키색처럼 하나의 색깔로 된 것들이었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위장복이 탄생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1930년대부터 새 군복 개발에 큰 돈을 쏟아부은 독일 육군이 1938년부터 일선 부대에 지급하기 시작한 복장이 우리가 생각하는 위장복의 시초다. 그나마 모두가 이 좋은 장비의 혜택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신형 장비가 양산되어 전군에 지급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처음 이 장비를 지급받은 것은 나치 당의 사병이었던 무장친위대(SS)였으며, 그나마 야전상의에 위장무늬 천을 사용한 것이었다.1

공수부대의 경우, 41년부터 위장무늬를 채용한 강하복을 지급받기 시작했다. 일반 보병 부대에 위장복이 지급되기 시작한 것이 42년이니 약간 더 빨랐던 셈이다. 하지만 일반 보병 부대에서 위장복을 지급받은 운 좋은 병사들은 극소수였던 데 반해2 이들은 모두에게 지급되는 강하복 자체에 위장무늬가 심어져 있다는 특권을 누렸다. 심지어 똑같은 것을 지급받은 것도 아니었다. 공수부대용 위장복은 일반 보병에게 가뭄에 콩나듯 지급되는 것보다 무늬 결이 좀 더 작았다. 그만큼 위장 효과도 좋았던 것은 물론이다. 아무나 입을 수 없는 최신 전투복을 좀 더 좋은 것으로, 그것도 모두가 착용하고 있다는 것 – 이것만으로도 당시 독일군 공수부대의 위상을 짐작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3.

당연한 것이지만, 공수부대는 20세기 들어 발전한 항공 기술의 산물이다. 대규모 지상 전투부대를 적 후방에 강하시켜 요충지를 장악하고 적의 뒤통수를 치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1차대전 당시 미 육군 항공대의 빌리 미첼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아 실현되지 않았고, 전쟁 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공수부대를 창설한 것은 이탈리아 군(1927)과 소련군(1935)이었다.

독일이 공수부대를 창설한 것은 이보다 조금 더 늦었다. 이들의 시작은 나치 정권의 2인자였던 헤르만 괴링이 경찰에서 차출해 창설한 경호대(1933)였다. 훗날 이 인력들은 징병제가 부활하면서 독일 공군에 정식으로 편입되었고(1935), 이들 중 강하 전투 훈련을 받은 일부가 어엿한 공수부대로 거듭나게 된다(1936).34

이들은 1940년 4월 9일, 덴마크를 침공한 독일군의 선두에 서서 혁혁한 전과를 거둠으로써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이어진 노르웨이, 네덜란드, 프랑스와의 전투에서도 종횡무진으로 대활약했다. 최고의 장비와 능력을 갖추고 언제나 기적에 가까운 활약을 보이는 엘리트 전사들, 이 시절이야말로 독일군 공수부대 최고의 순간이었던 셈이다.

1940년, 벨기에의 에반에말 요새 공략전에서 활약한 독일군 공수부대원들이 훈장을 받은 뒤 히틀러 총통과 함께 찍은 사진. 독일군 공수부대 영광의 순간이다.

4.

하지만 영광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1941년 5월, 영국군을 몰아내고 그리스를 점령한 독일군 사령부는 아직 영국군이 버티고 있는 크레타 섬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작전 계획은 대담했다 – 공수부대를 강하시켜서 비행장을 장악하고, 이를 통해 산악부대를 투입해서 영국군을 박살낸다는 것이었다. 이 작전의 또다른 특징이라면, 작전에 참여하는 공수부대원이 1만 명이 넘는다는 점이었다. 이전까지 강하작전에 투입된 병력은 기껏해야 천여 명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이 작전은 독일군에 있어 고기 가는 기계에 머리를 들이민 격이었다.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한 영국군은 어느 위치에 독일군이 강하할지 손바닥 보듯 꿰고 있었고, 덕분에 공수부대원들은 미처 착지를 하기도 전에 영국군의 총알 세례를 얻어맞았던 것이다.56 결국 크레타 섬을 점령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전투에 투입된 독일군 공수부대는 거의 절반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어느 독일군 공수부대원의 시신. 1941년 5월, 크레타 섬에서 촬영된 것이다. 나무에 걸린 낙하산을 미처 걷어내지도 못한 것으로 보아 땅에 닿자마자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정예부대가 입은 끔찍한 피해에 놀란 히틀러는 그 후 다시 대규모 강하작전을 시도하지 않았다. 원래는 한달 뒤 실행될 러시아 침공에서도 대규모 강하작전을 염두에 둔 것 같지만, 이 귀한 엘리트 전사들을 잃는 것이 크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독일군 공수부대는 더이상 강하를 할 일이 없어졌다. 그 후에도 강하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1944년 이후부터는 그마저도 중단됐다.7 연합군 공군이 제공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비행기 자체를 띄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력 충원에 문제가 생기면서 질도 조금씩 떨어졌다. 날개가 꺾여버린 독수리 – 이것이 이탈리아로 향하던 독일군 공수부대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5.

위 사진과 비슷한 시기에 찍힌 또다른 사진.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자. 이 작은 사진을 가득 메운 모순과 부조리, 운명이 만들어 낸 우스꽝스러움이 보인다. 공수부대의 자랑인 철모는 벗어버렸고 아무나 못 입는 위장복은 눈 덮인 이탈리아의 산과 지독하게도 어울리지가 않아서8 위장효과가 없어 보인다. 아니, 다 필요없고 비행기를 타고 적 후방으로 침투해야 할 공수부대가 산에서 적을 막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조리의 극치다. 아무리 멋지고 좋은 옷이라도 드레스 코드가 안 맞으면 그저 우스울 뿐, 운명은 자존심 강한 엘리트 공수부대원을 산 위의 삐에로로 만들어 버렸다.그 뒤로도 독일군 공수부대는 대활약을 하며 연합군에게 큰 피해를 안겨 주었지만, 이미 힘이 꺾여버린 상태에서 버티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방어선을 조금씩 적에게 내주며 이탈리아 북부로 쫓겨 들어간 그들은 그곳에서 종전을 맞았다. 1945년 5월, 제 9 공수사단이 베를린 공방전에서 전멸하면서 독일군 공수부대의 신화 또한 완전히 끝이 났다.


  1. 2차대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일반 육군 부대도 위장무늬를 사용한 장비를 지급받았지만, 군복에 도입된 것이 아니라 야전 텐트에 사용된 것이었다. 
  2. 덕분에 당시 사진을 보다 보면 위장복을 입고 있지 않은 저격수 사진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저격수처럼 위장복이 절실한 사람에게도 제대로 지급을 못 해주는데 일반 사병들에게 줄 수 있을 리가… 
  3. 현대의 공수부대는 육군 소속인 것이 상식이지만, 2차대전 당시 독일군 공수부대는 공군 소속이었다. 
  4. 그렇기 때문에, 좀 예외적이긴 했지만 공군 소속의 기갑부대는 공수부대와 동일한 철모를 지급받았다. 쉽게 말해서, 독일군 공수부대의 자매품(?) 정도로 보면 될 듯. 
  5.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당시 독일군 공수부대의 전투 방식. 이들은 현재의 공수부대와는 달리 강하를 할 때 권총이나 수류탄 정도만 들고 뛰어내렸다. 총 같은 것은 별도의 카트리지에 넣어서 낙하시킨 뒤 공수부대원들이 이걸 찾아서 싸우는 방식이었던 것인데, 아예 총을 들고 뛰어내리는 현대의 공수부대도 착지하는 순간까지 무방비 상태라는 걸 생각하면 이건 그냥 적군 앞에 표적 던져주는 수준이다. 
  6. 영국군 뿐만 아니라 크레타 섬 주민들도 사냥총이나 쇠스랑, 도끼 같은 걸 들고 다니면서 독일군 공수부대원들을 때려죽이러 다녔다. 차라리 총에 맞으면 한 번에 죽기라도 하지… 
  7. 일전에 언급한, 강하훈련도 안 받은 지휘관을 맞이한 것 또한 대략 이 즈음의 일. 
  8. 사실 위장복의 안쪽이 흰색이기 때문에, 뒤집어 입으면 설상위장복이 된다. 하지만 사진의 주인공은 그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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