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담은 거짓말

  • 이 글은 내가 좋아하는 사진의 토막글입니다.

1.

전설적인 전차 에이스 미하일 비트만(맨 왼쪽)이 같은 차량 전차병들과 찍은 사진. 비트만의 사진 중 가장 잘 알려진 사진이다. 1944년 1월 14일, 뛰어난 전공으로 기사철십자훈장(Knight’s Cross of the Iron Cross)을 수여받은 뒤 찍은 것이다. 뒤에 보이는 전차는 독일군의 티거 I 중전차(E형)다.

이 남자를 보라.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지만, 이 남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사냥꾼 중 한 사람이다. 미하일 비트만(Michael Wittmann, 1914-1944). 2차대전기의 전설적인 독일군1 전차 에이스. 그의 손에 박살난 연합군 탱크만 138대에 달한2다. 뒤집어 말하면, 그는 연합군 – 특히 소련군 전차병들에게는 거의 저승사자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축구팬 사이에서 스타 플레이어가 인기를 얻듯이, 2차대전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일본의 유명 군사 전문 만화가인 고바야시 모토후미 화백이 아예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그린 작품을 낸 적도 있을 정도다. 내가 비트만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 또한 아직 고등학생일 때 우연히 이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였다.3

2.

“우리가 명성을 얻은 것은 1942년, 동부전선에서였다… 1944년 6월, 우리는 연합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프랑스 북부에 배치됐다.” 유명 전략 게임 『Company of Heroes: Tales of Valor』의 “Tiger Ace” 에피소드는 미하일 비트만을 모델로 하고 있다. 단, 등장 인물들의 이름과 부대명은 모두 바뀌었다. (독일 내에 발매되는 게임은 나치 무장친위대를 묘사할 수 없다.)

솔직하게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이 만화는 그리 재미있는 편이 못 된다. 아니, 고바야시 화백의 만화 대부분 – 밀리터리 만화 자체가 만화적인 재미에서는 좀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극적 긴장감도, 화려한 연출 하나 없이 극도로 건조하게 전장의 상황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만화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극적인 재미가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느냐, 군복이나 장비를 얼마나 정확하게 고증하느냐4 등이다. 사실 밀리터리 팬들도 극적인 재미를 찾을 거면 다른 만화를 보는 게 낫다는 식이고 – 덕분에 딱딱하게 말라붙은 뻑뻑한 식빵을 물 한 잔 없이 먹던 기분으로 만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물론 2차대전 팬들은 내가 보는 도검 및 갑옷 관련 서적을 보면서 똑같은 기분을 느끼겠지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아직까지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 있다. 동부전선에서 소련군과 싸우던 비트만이 잠시 휴가를 나왔을 때의 일이다. 연합군의 공습 때문에 생전 모르던 가정집으로 몸을 피한 비트만은 그 집의 주인을 만나게 된다. 공습으로 부모님을 잃고 어린 남동생과 함께 살아가던 어느 아가씨. 전쟁으로 극도로 물자가 부족한 형편에 변변한 수입조차 없으니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녀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던 비트만이 결국 그 아가씨에게 말을 건넨다: “결혼해줄 수 없겠소?” 난생 처음 보는 사람한테 결혼하자는 소리를 들은 상대가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불문가지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트만의 한 마디. 나는 아직도 이 대사를 거의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었소. 전쟁이 끝나면 헤어져도 좋아. 하지만 전선에서는 월급이나 포상을 받아도 쓸 데가 없어요… 게다가 내가 죽으면, 미망인에게 조금이나마 보상도 나옵니다.”

3.

나치 무장친위대의 전설적인 기갑지휘관, 요하임 파이퍼 대령(Joachim Peiper)이 비트만과 그 부하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맨 위 사진과 동일한 날에 찍힌 것으로 보이는데, 파이퍼는 장교였던 반면 비트만은 사병에서부터 하나하나 올라갔기 때문에 실제로는 한 살이 더 많다. 티거 전차의 88mm 주포에 88대의 격파수가 표시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당연하지만, 이렇게 유명인사가 몇 명씩이나 한꺼번에 등장하는 사진은 매우 희귀하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했던 것일까? 언뜻 보면 이 대화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전쟁중이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나름 현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를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저 말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마음에도 없는 청혼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요컨대, 거짓말이 진심의 메신저 노릇을 하고 있는 상황이 바로 저 대화의 정체다.

이 때쯤이면, 이미 전황은 독일측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길 수가 없다 – 이것은 비트만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소련군과 싸워야 했으니까. 그리고 이 예정된 파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 역시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었다. 안 그래도 낮은 확률이 그에게는 더 낮았다. 전차는 강력한 만큼 적의 주요한 타겟이 되기 마련이고, 전차병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몰고 다니던 전차와 함께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전쟁 후의 삶이라는 건, 이미 그에겐 먼 나라 이야기였던 것이다.

틀림없이 저 몇 마디엔 부족한 물자만큼이나 거칠고 투박한 진심이 담겨 있다: “당신이 고생하는 모습은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요.” 하지만 바로 이어서 거짓말이 시작된다: “전쟁이 끝나면, 헤어져도 좋아요.” 그가 이런 거짓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서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급기야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앞날마저 입 밖으로 꺼낸다: “내가 죽으면, 어려운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됩니다.”

고바야시 화백은 작품의 작은 구석도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고증을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어느 어두운 날 두 남녀 사이에 오고 간 대화를 구체적으로 고증할 도리는 없었을 것이다.5 그러니까 아마도 이 부분의 묘사는 작가의 상상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상상력이 묘하게 현실성이 넘친다는 게 두 번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제법 많이 일어났을 거라는 얘기다. 처음 이 장면을 접하고 이 기괴한 부조리함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던 나는, 저런 말을 건네야 하는 남자의 심정을 생각하면서 묘하게 착잡해졌다가, 마지막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런 그로테스크한 대화를 나눠야 했을지에 생각이 미치자 온 등골에 소름이 돋으면서 잠이 번쩍 깼다.

4.

사냥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프랑스 노르망디 빌레보카쥬(Villers-Bocage), 1944년 6월 8일. 이날 마을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던 비트만과 제 101 중전차대대 제 2중대는 마을을 지나가던 영국군 제 7기갑사단을 기습, 큰 피해를 입혔다. 이 전투로 캉(Caen)에 주둔한 독일군 전차교도사단을 측면 공격한다는 영국군의 작전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으며, 제 7기갑사단은 반신불수가 되어 전장을 떠나야 했다.

전황은 갈수록 어두워져 갔다. 동부 전선에서 소련군과 싸우던 비트만과 그의 대원들은 1944년 6월, 프랑스 북부에 배치되었다. 독일군 사령부야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소련군과 싸울 병력을 필요로 했지만, 연합군이 프랑스 북부에 상륙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부대를 뺀 것이었다. 그리고 6월 6일,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 연합군이 독일군의 세 배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프랑스 북부에 상륙한 것이었다.

그후 거의 두 달 동안, 프랑스 북부에 상륙한 연합군과 그 지역을 지키던 독일군은 노르망디 지역에서 밀고 당기며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비트만 역시 잠도 못 자고 뛰어다니면서 연합군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었다. 전세는 점점 더 연합군 쪽으로 기울어졌고, 막대한 병력과 장비를 손실한 독일군은 이제 곧 포위될 위기에 몰렸다. 비트만에게는 생존자들이 빠져나올 시간을 벌기 위해 진격해 오는 연합군을 붙잡아두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비트만의 운명에 대해서 각종 증언들이 엇갈리는 것은 여기서부터다. 근처의 연합군 부대 모두가 자기네가 비트만을 잡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인(死因)이 폭격기에서 발사된 로켓탄인지 아니면 근처에서 싸우던 전차에서 발사된 포탄인지도 불분명하다. 한때 캐나다군의 타이푼 폭격기가 비트만을 잡았다는 설이 정설처럼 나돌기도 했지만, 최근까지도 그의 최후는 논란의 대상이다.6 확실한 사실은, 단지 이것 뿐이다: 바로 그날, 독일에서는 보상금을 받을 전쟁과부가 한 명 늘었다.

5.

사냥꾼의 무덤: 비트만이 마지막으로 탑승했던 티거 I 전차(후기형)의 잔해가 널려 있다. 이 사진은 전투가 벌어진 다음 해 근처를 지나던 한 프랑스인이 찍은 것이다. 격렬한 폭발로 상단의 포탑이 통채로 날아간 것이 보인다.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Wittmann_Tiger_007.jpg)

1944년 8월 8일, 비트만과 그의 중대는 임무를 완수했다. 그들이 목숨과 바꿔 연합군의 진격을 막는 사이, 나머지 독일군은 무사히 연합군의 손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예정된 파국을 조금 뒤로 미뤘을 뿐이지만, 어쨌든 그들은 포위망을 빠져나와 한숨 돌릴 수가 있었다.

산산조각난 비트만의 티거와 시신들은 한동안 내버려져 있었다. 어딘가에 급히 매장되어 위치조차 알 수가 없게 되버린 그의 무덤이 발견된 것은 1983년이었다. 한 군사연구가의 손에 발굴된 그의 유해는 라 캉브에 있는 독일군 묘역으로 이장됐고, 그곳에서 안식을 찾았다. 전설의 사냥꾼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다.

미하일 비트만의 무덤. 프랑스 노르망디 라 캉브(La Cambe) 묘지에 있다. 놓여진 사진과 꽃에서 알 수 있듯, 이 무덤은 노르망디를 여행하는 많은 밀리터리 팬들이 반드시 찾는 성지가 됐다.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matthijs/2113679222/)


  1. 정확히 말하면 나치 무장친위대(SS) 소속이었다. 
  2. 대전차포는 132대. 장갑차나 트럭 등 다른 차량은 세지도 않고 이 정도다. 
  3. 종목은 다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도 다 밀덕(…) 
  4. 전차 구석에 붙은 나사 위치가 조금만 틀려도 큰일난다(!). 
  5. 언젠가 잠시 호기심이 동해서, 미하일 비트만의 결혼에 대한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다. 내가 찾은 건 1944년 3월 휴가를 나와서 결혼을 했다는 짧은 기록 뿐이었다. 비트만은 전쟁이 시작되던 1939년부터 계속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따로 여자를 만나거나 할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6. 최근 결론은 영국군 전차 쪽이라고. 

11 thoughts on “진심을 담은 거짓말

    • 아하, 이런 자세한 내막이 있었군요. 좋은 링크 감사합니다. 2차대전 팬도 아니어서 막연하게 정설의 결론만 알고 있었는데, 이걸 읽어보니 구체적인 상황이 대략 머릿속에 그려지네요. 주석에 링크로 추가했습니다. :)

  1. 그런데 무장친위대를 비롯한 SS부대원출신에게는 전후에 연금지급을 안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는 걸 어디서 대충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니 절대 믿지는 마시구요)

    동독지역에 살던 전쟁미망인이 서독에서 연금지급될거라고 믿고 서독으로 텨텨텨해왔는데 연금지급안됨! 이라고 해서 다툰 사건이었을 겁니다. (그게 SS출신이라서 그랬는지 다른 이유때문인지 기억이 안나네요. -.-a)

    그렇다면 저 만난지 하루도 안되서 (아마도) 결혼까지 한 부인은 전쟁미망인연금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겠습니다….(아니면 아주 잠깐만 받았거나요)

    • 연금 지급이 안될뿐만 아니라 아예 독일군 경력으로 인정도 안 하죠. 본문에서 잠시 언급을 했지만, 게임을 비롯한 대중매체에서 언급하는 것도 금지구요. (완전히 금지인지 아니면 언급하는 순간 성인등급 확정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걸 보면 아마 연금도 거의 못 받지 않을까요. 비트만이 전사한 1년도 되지 않아 독일이 패망했으니까요.

  2. 저 인물에게 죽어간 혹은 부상당한 연합군의 수가 최소한 천 단위는 넘어갈 텐데 그 병사들이 지하에서 보면 씁쓸하겠다. 나치 영웅의 소소한 일화와 그 미망인에게 연금이 지급되었는가 하는 부분에까지 자상하게 궁금해하는 저 멀리 극동의 군상들을 보면. 역시 유명해진다는 건 좋은 거겠지.

    • 그저 ㅉㅉ거리고 있을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 사람이 독일군이 아니라 일본군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그렇게 태연하게 ㅉㅉ거리고 있을 수 있습니까? 군인은 군인일 뿐이고 희생양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분명 일본군에 대해서도 그들 한 명 한 명은 희생자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군국주의의 첨병으로서 침략전쟁에 직접 나선 군인들을 비난한다고 해서 그렇게 한심하다는 듯이 ㅉㅉ거리고 있지는 못할 겁니다. 친일에는 그렇게 눈에 불을 켜면서 친나치에는 참으로 관대하시군요.

    • 야채 // 죄송합니다만 “군인은 군인일 뿐이고 희생양일 뿐” 이라고 한 적 없구요, 아래 댓글에서 보시듯 걱정을 한 적도 옹호를 한 적도 관대한 적도 없습니다. 남의 글을 헐뜯기 전에 주의를 기울여 제대로 읽어 보는 태도가 아쉽습니다.

  3. 이건..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을 스토리같군요.
    미망인에게 한 말은 마지막 반전포인트로 삼아서 말이죠.

    역시 고어핀드님은 역시 로맨티시스트 셨네요.
    성 발렌타인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4. 텍스트큐브에서 작성된 비밀 댓글입니다.

    • 음… 솔직히 나치 무장친위대건, 독일 국방군이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을 듯 합니다. 노골적으로 침략 전쟁에 나선 것이니까요. 그나마 동부 전선에서는 너도나도 전쟁범죄에 열중했고.

      다만, 사병들 입장에서는 그냥 징병제 국가에서 군대에 가야 하니까, 이왕 갈 거면 친위대를 가자 – 이런 식으로 선택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나치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다 보니까 일반 친위대원들에게도 보훈 연금혜택 같은 게 주어지지 않긴 했습니다만… 이런 걸 보다 보면, ‘희생양’ 없이 돌아가지 않는 게 인간 사회인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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