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 책들

제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책 10권을 소개합니다.

  • 영향력 기준으로 B/A/S급. 각 급 안에서는 무순.
  • 두 권 이상의 비슷한 책이 영향을 주었을 경우, 가장 영향력이 컸던 책 한 권만 선정.

B급

유혹의 기술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유혹자들이 어떻게 다른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를 다룬 책입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그리 잘 쓰여진 책은 아닙니다. 구성 자체가 다소 산만한 데다가 근거는 빈약하고, 주제가 자꾸 옆으로 튀는 데다가 중복되는 이야기마저 제법 많아서 뒤로 갈수록 지루해지기까지 하죠.

하지만 생전 ‘매력’ ‘호감’ 이런 쪽으로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매혹시키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름 자기 객관화를 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구요.

로마인 이야기

유명한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의 책입니다. 이 책 역시 그리 잘 쓰여진 책은 아닙니다. 저자가 전문 역사가가 아니라 이런 거대한 주제를 다룰 역량 자체가 모자랄 뿐더러, 이미 오래 전에 폐기된 연구 결과를 제 입맛대로 취사 선택하여 자신의 편협한 생각을 늘어놓는 소재로 삼는 모습은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죠. 문체가 간결한 것은 장점이지만, 단언컨대 그 외의 장점은 전혀 없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시오노 나나미에게서 현실주의를 배웠다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그리 신뢰하지 않습니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시오노 나나미의 현실주의가 그리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12습니다. 둘째로, 눈앞의 사람에게 짜증을 유발하는 궤변을 늘어놓고서는 ‘현실이 그런데 왜 너는 그걸 쿨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니?’ 로 마무리하는 사람들 중에 자신이 쿨한 현실주의자라고 착각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그렇습니다. 공교롭게도 후자가 시오노를 높이 평가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이런 탓에 저는 시오노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여전히 제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저 또한 시오노를 통해서 “마땅히 어때야 하는가” 보다 “현실이 어떠한가” 를 먼저 묻는 버릇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인 이야기』는 그리 잘 쓰여진 책이 아니지만, 어린 시절 읽는 도중 마주친 문장문장들 – 인간은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보고 싶어할 뿐이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쪽이 결정권을 가진다 등 – 은 그 뒤로도 쭈욱 제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선량하던 사람들이 차가운 현실에 좌절하다 못해 끔찍하게 흑화하던 모습을 지켜본 경험에 비춰보면, 이 책은 제게 있어 일종의 예방접종 비슷한 역할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도 이 책은 제게 “악서란 무엇이고, 또 양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굳이 찾아서 읽지는 마세요

배가본드

일본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를 다룬 다케히코 이노우에 화백의 만화입니다. 여러 번 되풀이해 읽으면서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관련글 1] [관련글 2]

유사한 경험을 준 책으로는 아사다 지로의 소설 ‘칼에 지다’가 있습니다. [관련글] 그러고 보니, 이 책도 일본 검객을 소재로 한 소설이로군요.

A급

괴짜 경제학

제게 숫자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책입니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최선의 전략을 고민하는 행위자들이 어떤 식으로 현실 환경을 형성해 나가는지에 대해서도 깨달음을 줬죠. 이 책을 읽은 뒤로는 어떤 사안을 볼 때마다 이해 당사자들은 과연 어떤 판단 아래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까를 고민하는 습관이 붙었습니다. [관련글]

세계는 평평하다

https://www.flickr.com/photos/obriendigital/2268868147

토머스 프리드먼의 책입니다. 세계화라는 현상이 저와 제 주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대학교 신입생들에게 추천할 책을 골라 달라면 단연 1번으로 고르는 책.

Operating System Concepts

학부 운영체제론 수업 교재입니다. 단순히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사회 전체를 ‘자원의 안정적인 조달과 배분’ 이라는 틀로 바라 보게 한 책인 동시에 ‘사물을 살펴보는 방법론’을 가르쳐준 고마운 책. 당연한 것이지만, 아마 여기 나온 책 중 가장 자주 펼쳐보는 책일 겁니다.

S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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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신입생 시절에 읽었던 과학책입니다. 대세와는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모여 전체 시스템의 성격을 바꿔 놓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합니다.

유사한 경험을 준 책으로는, 마크 뷰캐넌의 『사회적 원자』.

스시 이코노미

초밥이라는 지극히 전통적으로 보이는 음식을 소재로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와 기술 문명, 전통 문화와 현대 문화가 어떠한 양태로 동작하고 있는지를 살핀 걸작.

해커와 화가

전설적인 해커이자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폴 그레이엄의 에세이집. 컴퓨터 기술뿐만 아니라 부, 문화 등 인간 삶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그레이엄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책.

총, 균, 쇠

더 설명이 필요한지? 1998년 퓰리처상 수상작.

다 써놓고 보니 A급, S급에 속한 책들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모두 1. 현실 세계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2. 최신 기술과 그 영향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왠지 저답다는 생각입니다.


  1.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 귀족들이 다니는 대학을 나와 이탈리아에서 인생을 즐기면서 겨울에는 알프스로 스키타러 다니며 “로마 시대에는 10% 세금만으로도 사회 간접 자본 유지하기에 충분했는데 지금은 세금이 너무 많다” 같은 소리나 늘어놓는 할머니다. 

  2. 덧붙여 얼마 전에는 이런 망언까지 터트려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