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글쓰기를 가르친 사람들

창조는 어떻게 교육되는가

지금까지 내 글쓰기에 전범(典範)이 되어주신 분들.

마지막 두 사람을 제외하면 무순.

이대영

모형잡지 『취미가』, 『호비스트의 전 편집장. 유명한 모델러이며 또한 밀리터리 오타쿠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에게 2차대전사를 알린 『알기 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가 바로 이 사람의 작품.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이 책은 역사책으로서는 절대 좋은 책이 아니다. 이는 이 책의 출신 성분에서 기인하는데, 모형 잡지에 실리던 탱크나 비행기에 대한 설명 기사가 인기를 끌자 이 중 일부를 확장해서 책으로 엮은 것이기 때문. 처음부터 제대로 쓴 역사책은 아닌 셈이다. 실제로 이 책은 태평양 전선에 대한 내용 자체가 아예 없으며1 2차 대전의 주요 전장이었던 동부 전선에 대한 서술 역시 터무니없이 적2다. 내용에 있어서의 자잘한 오류들은 지금껏 2차대전 매니아들이 이미 수도 없이 지적해 온 바, 저술 당시 참고 가능했던 자료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언급하는 것이 민망한 지경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책이라기보다, “2차대전기 독일군을 주인공으로 한 동인지”에 더 가깝다.

하지만 이 책은 박진감 넘치는 묘사와 일화 중심의 서술, 짧고 간결한 문체 등의 특징으로 인해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정말 술술 읽힌다 – 눈 부릅뜨고 읽어도 잘 읽히지 않는 다른 역사책들과 비교해 볼 때 더욱 두드러지는 장점이다. 이 책은 현재 절판 상태지만, 나는 아직도 2차대전에 대해 처음 입문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입문서로 권한다. ‘전체적인 사건 전개’를 파악하는 데는 이만한 책도 없는 게 사실이기 때문.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저자3. 한 때 주간동아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유시민 글의 최대 미덕은 사실과 주장을 병치시키며 조곤조곤 전개시켜 나가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 나는 글쓰기 스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완급 조절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처음으로 느꼈던 때가 바로 위 책을 읽으면서였다. 그 정도로 유시민의 박자 조절 능력은 실로 역대급이며,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한때 “비공식 논술 교과서”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것 또한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김동조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필자.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의 저자다. 블로그는 여기.

이 목록에 포함된 다른 분들 중에서 내가 가장 나중에 알게 된 분이다. 알게 된 지 기껏해야 2년 남짓할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을 꼽은 이유를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의 정의에 정확하게 가장 부합하는 글을 쓰시는 분 중 한 분이기 때문이다.

글이 기본적으로 ‘매체’ 라는 점을 감안할 때,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란 편안하게 읽히되, 읽는 이에게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어 주는 글이다. 책을 읽기 전이나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그 책은 구태여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흔히 쉽게 잘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들 하는데 이 말은 반만 맞다. 나는 아무리 쉽게 읽히는 글이라고 해도 새로운 지식도, 통찰도, 행동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는 뻔한 글이 좋은 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45

이 책은 문제에 대한 독창적인 시각과 탄탄한 논리 전개를 무기로 독자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식에 눈뜨게 해 준다. 쉬운 단어와 예시의 적절한 사용으로 술술 읽힌다는 점도 장점. 이 책에 대해 평소 가던 블로그 주인장 분이 “이 책의 백미는 ‘전략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로 요약할 수 있는 서문” 라고 하셨는데, 나 또한 그분 의견에 100% 동감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 “설득력을 확보한 편견” 이라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표지에 나온 딱 그대로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덧붙이자면, 이 책은 호오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책이다. 나같은 열광자가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느냐” 하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67. 하지만 나는, 많은 이들이 저자의 냉정 건조한 시선에 거부감을 나타낸다는 사실 자체가 이 책의 가치를 반증한다고 본다. 폴 그레이엄이 언급했듯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공개적으로 끄집어내면 분노를 사는 법이다.

최근에는 한겨레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아래 두 글을 추천.

딴지일보 필진 일동

내가 고등학생 시절 가장 열심히 읽었던 웹진.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를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이 때였다. 2002년 이후로는 거의 가지 않았지만, ‘나도 글을 쓰고 싶다.’ 라는 욕망이 잉태된 건 그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블로그 또한 딴지일보 애독자로서의 경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딴지일보에서 내가 배웠던 것은 바로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법. 이미지가 모니터에 올라온 텍스트 뭉치 특유의 갑갑한 느낌을 크게 완화시켜 줄 수 있다는 것, 이미지와 텍스트가 어우러져서 흡사 영화의 몽타주 효과와 같은 독특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은 순전히 딴지일보 덕분이다. 글의 중간 중간에 각종 멀티미디어 개체를 자유롭게 삽입할 수 있다는 점이 인터넷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내가 배운 것은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는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딴지일보에는 필진이 정말 많았지만, 내가 아직까지 기억하는 분은 모두 다섯 분이다: 뚜벅이, 파토, 짱가, 최내현, 펜더. 짱가님은 그 뒤에도 계속 영화 칼럼을 쓰고 계시다. 최근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글은 바로 이 글. 펜더님은 시나리오 작업중이신 것 같다.

진중권

현 동양대학교 교수. 두 번째로 영향을 많이 미친 사람이다. 참고로 나는 진중권 교수가 쓴 책을 전부 다 가지고 있으며, 그 중 몇 권에는 사인도 받았다.

이런 사람입니다. 더 설명이 必要韓紙? (* 출처: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357)

진중권 교수의 가장 큰 미덕은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는 데 뛰어나다는 점. 그가 일전에 인터뷰에서 인정했듯이, 아마도 이것은 그의 직업적 특성 – 철학자8 – 에서 기인한 것 같다. 토론 프로에 나와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묵사발을 만들어 버리는 건 다 이런 기초가 있기 때문이다.9 내가 논리학 책을 찾아보게 된 것은 순전히 진중권 교수 덕분이고, 결과적으로 어떻게 해야 글의 논리 전개 과정이 한 눈에 들어올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혹자가 말하듯, “우리는 그의 우산 아래서 컸으며 인터넷 글쓰기를 시작한 우리에게 진중권의 글은 전범이요 교과서였다.” 그런데 왜 이런 이상한 쉴드는 쳐가지고…

덧붙이자면, 진중권 교수는 내게 속칭 ‘논객'(혹은 ‘글쟁이’)의 한계에 대해서 알려 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틀림없이 자타가 인정하는 똑똑한 사람이지만, 기술이나 경제에 대한 지식은 일천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모든 분야에 대해 잘 알 수는 없으니 탓할 거리는 못 되지만, 그래도 이런 류의 글은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애플도 엄연히 기술 거인이고 애플이 자랑하는 UI 역시 HCI 기술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온다. 진 교수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대략 알겠지만 그것이 저런 헛헛한 글의 허물을 덮지는 못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같은 업계 종사자로서는 실로 웃음이 터져나오는 수준의 글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진중권 교수는 내게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강준만

출처: http://jtlee.khan.kr/163

현 전북대학교 교수. 사실상 내 글쓰기를 만든 사람이다. 나는 한 때 한겨레 21에 연재되던 강준만 칼럼에 빠져 살았고 지금도 강준만 교수의 책은 웬만해서는 읽으려고 노력한다. 현재 네이버캐스트에 주제가 있는 미국사를 연재중이다.

사물이 지나쳐 온 내력을 추적함으로써 그 정체를 이해하는 방법,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관심은 강준만 교수에게서 영향받은 것이다. 대량의 지식을 밀도 높게 꽉꽉 눌러담았는데도 전혀 무리가 가지 않게 읽힌다는 점 또한 놀라운 점. 내가 자체적인 자료 구축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 것 또한 강 교수의 거대한 자료 창고에 대해 알게 된 이후부터였다.

정말 다작을 하는 분이지만, 아래 두 글은 특히 추천. 특히 윗글은 내가 인터넷에서의 각종 사건 사고들을 설명할 때 반드시 예로 드는 글인데, 무려 10년 전 글이다.


  1.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전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태평양 전역이 별 관계가 없어 별도 전쟁으로 봐도 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2. 독일군 전체 전사자의 80% 가량이 소련군과의 교전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괜히 제 2차 세계대전을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쟁’ 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3. 정확히 말하면 ‘편저’가 맞다고 본다. 이에 관련해서는 이 글을 참고하라. 

  4. 골빈 인간이 글쓰는 재주만 장착할 경우 어떤 글이 나오는지 알고 싶다면, 이 글을 추천한다. 내가 평생 읽은 글 중 수위권 안에 들 정도로 멍청한 글이다. 

  5.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유려한 수식어구로 분칠한 글만 쓸 수만 있으면 자기가 통찰력이 있다고 믿는 얼간이들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통찰력 있는 사람은 대체로 글을 잘 쓰지만 그 반대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6. 저자에 따르면, 20대 여성 독자들 중 읽고 충격받았다는 평을 해온 사람이 많았다고. 실제로 필자의 친한 누나 역시 친구 중 한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분노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7. 흥미롭게도, 저자가 언급한 인구 집단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구 집단과 완전히 동일하다. 

  8. 그 중에서도 미학자. 

  9. 오히려 이런 일이 지겨운지 언젠가 “왜 나한테는 다들 개 잡고 닭 잡는 일만 시키는지 모르겠다.” 라고 한 적도 있지만 솔직히 나는 그 맛에 진 교수 나오는 토론프로 본다. 어떻게 보면 현대판 마당놀이. 

20 thoughts on “내게 글쓰기를 가르친 사람들

  1. 평소 님의 글을 보며, 감탄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김동조씨만 빼면(아직 못 읽어봤네요) 제 생각과 글쓰기에 강한 영향을 끼친 필자 리스트와 겹쳐서 반갑네요. 게다가 이대영씨라니요. 그 사람의 정치적 입장이나 나중에 도드라진 뭐 그런 것들은 좀 그렇지만, 취미가 초창기부터 묘하게 시니컬하고 시크하면서도 곁에서 수다떨듯 풀어내는 기사들은 참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전 여기에 김훈과 김규항을 더하면 될 듯 하네요. 저도 언젠가 한번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 1. 이대영 씨에 대해서는 잡지 운영 과정에서 잡음이 좀 있었다는 것 외엔 잘 모릅니다.
      2. 개인적으로는 김훈과 신귀주 기자 두 사람을 더 꼽을 수 있을 듯 합니다. 김훈 전 편집장님 필력 참 대단하죠. 다만 제 경우 김규항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2. 잘 읽었습니다. 최근에 알게된 분들 중에 글에서 필력이 느껴지는 분이 몇 없었는데 님 글에서 엄청난 필력이 느껴진다는… 이 글을 참고해서 제 글쓰기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겠네요. 좋은 글입니다.

    • 뭐 그래봤자 제 필력은 위에 언급한 분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죠.

  3. 이대영 씨의 알기쉬운 제2차 세계대전사는 사실상 한국일보에서 펴낸 라이프제2차세계대전사의 발췌본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지요.
    이대영 씨의 책과 라이프제2차세계대전을 모두 읽어봤고 현재도 소장 중인 제 평가로는 라이프 제2차세계대전의 일부를 그대로 베겨쓴 책이 맞습니다.

    • 사실 저도 둘 다 봤는데, 일단 메인 소스는 말씀하신 대로 타임라이프 2차대전사가 맞고 그 외에도 다양하게 전방위로 베꼈(…)더군요.

  4. ‘책을 읽기 전이나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그 책은 구태여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문구를 여기서 보게 되는군요. ^^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김훈 작가님 편을 보면 “< 근사록>이라는 책을 보면 ‘공자의 논어를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다.’ 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라는 부분입니다.
    저도 이 말에 동감합니다. 그러나 쉽지 않네요. 개인으로서는…
    강준만 교수님이 나오길래 혹시나 하나 여쭙고 싶은게… 예전에 강준만 교수님이 글을 쓰는 몇 가지 원칙이었나 이런 식으로 누가 포스팅한 글을 봤었거든요. 강자와 약자 중에서 약자 편에 서서 글을 쓰겠다 그러니까 힘이 약한 쪽에 힘을 실어주는 글을 쓰겠다 이런 식이었는데 혹시 아시나해서… 한 10가지 정도 됐었나…

  5. 국민학생 때 창간된 취미가가 보물 1호였고, 아버지가 구독하시던 시사저널을 같이 읽던 저와도 모두 겹치네요. (진중권, 강준만 처음 접한 게 시사저널) 딴지일보랑 유시민씨, 기회되면 여기저기 추천하는 김동조씨까지도 같고요.

    이대영씨 편집후기 몇 개는 지금도 생각납니다. 잔디밭에서 드래곤플라이 날리던 일본인 노인 얘기, 슈나우저 입양하고 즐거워하던 얘기..

    위에 비해서 별로 유명한 분들은 아니라 큰 의미는 없겠으나 저도 덧붙이면,
    1) 그리 오래 보진 못했지만, 그리고 살짝 괴팍하신 것 같긴 했지만, 인생에 대한 진지함이 정말 강렬했던 블로거 바하문트님
    2) 딴지일보 남로당 게시판의 커팅엣지님
    3) 멘사 자유게시판의 이승우님

    전범들은 분명 비슷한 것 같은데, 저는 지금까지 뭘 한 걸까요?ㅎㅎ

  6. 저 같은 경우는 글을 쓰고 편집하는 것을 본래 직업으로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글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전문적인 ‘기술로서의 글쓰기’를 훈련 받은 사람이었죠. 이에 대해서는 저도 블로그에 한번 써봐야겠네요.

    • 신문사 등에 들어가서 기자 일을 하는 사람들한테 듣다 보면 비슷한 답변이 나오곤 하더군요. 아무래도 신문이나 잡지 등에는 “전범이 될 만한 누군가의 글” 이 있다기보다, 그 업계 그리고 매체에서 요구하는 스타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스타일’이 나름의 전범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요.

  7.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읽기 쉬우면서도 또 다른 생각을 이끌어내는 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고요.
    덕분에 많은 것을 돌아보고 갑니다. 아무쪼록 좋은 주말 보내시고요.

  8. 글쓰기, 글읽기의 기준이 쉽고 어려움에 있는 것같습니다.
    보기 쉬운 글이 좋은 글의 절대 기준이 아닙니다. 어디서 쿼트를 했는지, 문헌근거가
    어디인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글 쓰기를 너무 편향되게 생각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평범한 글이나 장구체를 좋지 않은 글로 속단할 우려가 다분하며
    따라서, 지식습득의 편식과 소견의 편중이 매우 우려되는 자세입니다.

    • 보기 쉬운 글이 좋은 글의 절대 기준이라고 한 적 없거든요. 죄송합니다만, 본문을 좀 읽고 주둥아리를 놀려 주시겠습니까?

  9. 강준만, 진중권, 김동조 선생님들은 대중적인 글쓰기를 잘 하고 계신것 같지만,
    저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생각이 그렇게 깊은 것 같지도 않고, 학문적인 토대가
    튼튼한 것 같지도 않아보입니다. 고교생이나 대학 학부생정도의 안목으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글들이라고 봅니다. 그만큼 대중적인 눈높이를 고려하신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가끔은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표현들을 주제화하여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는
    선생님들입니다. 신성시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 “학문적인 토대” “대학 학부생정도의 안목” “신성시”
      “학문적인 토대” “대학 학부생정도의 안목” “신성시”
      “학문적인 토대” “대학 학부생정도의 안목” “신성시”
      “학문적인 토대” “대학 학부생정도의 안목” “신성시”
      “학문적인 토대” “대학 학부생정도의 안목” “신성시”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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