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쓰마와 류큐 왕국의 멸망

* 이 글은 This is Total war 동양사게시판 1013번 글 “유구국의 멸망과 현재 오키나와의 상황을 간략하게나마 알려주십쇼”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일본의 류큐 정벌은 일본 큐슈의 호족 시마즈씨로부터 시작됩니다. 시마즈 씨는 본래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총애하는 가신들 중 하나로서 가마쿠라 바쿠후에서 많은 공을 세운 바 있는 시마즈 다다히사(島津忠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센고쿠 시대에 크게 발전, 시마즈 요시히사 대에는 능력이 출중한 동생들인 요시히로, 도시히사, 이에히사의 덕분에 큐슈 전토를 지배하는 막강한 센코쿠 다이묘로 성장합니다.

시마즈 다다히사

그러나 혼슈를 제패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큐슈 정벌전에서 패하게 되자, 가문 전체가 멸망하느니 차라리 타협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 토요토미 가에게 항복합니다. 히데요시는 항복한 요시히사에게 사쓰마 번을, 아우 요시히로에게는 오오스미·휴가 두 번을 나누어 주고 충성을 맹세받았습니다.

시마즈 다카히사의 갑옷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큐슈는 본래 교역으로 먹고 사는 곳이었습니다.(말이 교역이지 당시로 치면 왜구의 해적질 전초기지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그리 농사를 지을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지요. 자연히 칼 쓰는 무사들이 농민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곳인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공을 결정하자 시마즈 요시히로(사진)가 여기에 참전하게 됩니다. 시마즈 씨의 무사들은 수도 많고 강하기로 이름난 수군이자 칼잡이들이었으므로, 전쟁이 없어진 일본에 그냥 있는 것보다 조선을 약탈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7년을 끈 지리한 전쟁에서 시마즈 씨는 애꿎은 무사들만 잔뜩 잃었지 그리 재미를 보지 못하였습니다.(전북 남원에서 납치해 온 박평의(朴平意)·심당길(沈當吉)을 비롯한 80여 명의 조선 도공들을 제외하면 말이죠.) 게다가 1598년 겨울, 순천에 고립되어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출하기 위해 500척의 군선을 이끌고 출진한 시마즈 요시히로는 노량 앞바다에 포진한 조명 연합함대와 충돌했고, 500척의 전선 중 450척을 잃는 대참패를 하고 맙니다. 시마즈는 크게 약화되었으며 요시히로가 1600년 9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토요토미 파에 가담했다가 대패, 가까스로 1500 무사들이 일제히 도쿠가와 진영의 정면을 돌파하는 용기를 보여 살아남습니다.(도쿠가와도 그 용기를 가상히 여겨 영지를 빼앗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이묘로서 존속은 했지만, 워낙에 잃은 것은 많고, 아직도 먹여야 할 입은 많았던 시마즈 씨는 결국 류큐 왕국을 공략하는 것을 결의합니다. 도쿠가와 바쿠후는 해외 교역 역시 금하였기 때문에 시마즈 씨 특유의 무역을 할 수 없어졌다는 점 또한 여기에 한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요시히로는 이미 1592년 류큐에 조선침공을 위한 군량미를 강제 징납시키는 역할을 했을 정도로 류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류큐는 1300년대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틀을 갖춘 국가가 성립했으며, 삼국(?)이 정립되어 천하통일을 위한 전쟁을 전개하여(?)1429년 쇼하시라는 왕이 이 삼국을 통일하고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대한 무역을 장려하여 크게 발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워낙에 작은 나라였기 때문에 요시히로에 의해 순식간에 점령당합니다.(조선과 일본 본토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러 온 용맹한 무사들에게는 역부족이었겠죠.) 시마즈 씨는 이를 병합하지 않고 괴뢰 정권으로 조종하여 자신들의 무역 기지로 활용합니다. 병합해 버리면 일본 땅이 되니까 자연히 바쿠후의 명령에 따라서 무역 금지령을 지키지 않을 수 없죠. 하지만 류큐에서 무역을 전개하고 사쓰마는 거기서 필요한 것들만 가져오면 법적으로 문제는 없어집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힘을 키운 사쓰마는 에도 바쿠후 말기, 초슈·비젠·토사와 힘을 합하여 메이지 이신을 성공시키고, 조선으로 다시 총부리를 돌립니다. 이 과정에서 오키나와는 1872년 왕국이 해체되고 왕족은 일본 귀족으로 편입되었으며, 7년 후인 1879년 ‘대일본제국’의 서쪽 끝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 10만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오키나와 혈전은 유명하며, 패전 후에는 “일본 본토를 위해 미국에 쥐어진 놀이개”로 전락하여 전국의 대부분의 미군 기지로 뒤덮힌 반식민지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오키나와는 패전 후 일본 본토로 흡수되어 공식적으로 류큐 인에 대한 차별운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실제로 류큐 인은 보호구에 갖힌 인디언과 같이 차별을 당하며, 심지어 90년대 중반 미군 병사가 오키나와 초등학교 2학년 소녀를 집단 강간하고도 일본 언론이 침묵을 지킨 일도 있습니다.(아사히 신문 사회부 기자들이 난리를 쳐서 결국 공표되었죠.)

이번 겨울에 일본을 거쳐 중국 남부를 여행할 생각인데, 그 때 한 번 들러 볼 생각입니다. 류큐 왕국의 역사와 풍속에 대해서는 그 때 사진자료를 좀 더 확보해서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