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격필살!! 사쓰마 지겐류

지겐류(示現流).

사쓰마번(오늘날의 가고시마)의 무사들 고유의 검도유파.

그야말로 일본 최강의 실전검 유파.

두번째 공격 따위는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오로지 일격필살로 상대를 죽인다는 명실상부한 살인검.

시현류 가는 곳에 피바람이 분다 하여 별명이 혈풍시현류.

체스토!!!

지겐류의 창시자 도고 시케타다는 1561년 사쓰마 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쓰마의 다이묘 시마즈 씨의 무사였으니 그 또한 세습 무사였다. 때는 전국시대였느니만큼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무술을 닦는 데 힘써 태사류라는 검술을 익혔다. 비전까지 몽땅 전수받은 것을 보면 그 실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가 시현류를 창시하게 된 배경은 다음 글에 잘 나와 있다.

“…그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영주 시마즈 요시히사를 따라 교토를 방문했을때 만난 한사람의 스님입니다.

교토에서 시케타다는 텐네이치라는 절의 선승인 젠키치를 만납니다. (젠키치는 스님이지만 천진정자현류라는 검술의 달인이었습니다.)

젠키치는 청소용 빗자루를 들고 자현류의 기본 동작중 몇가지를 보여줍니다.

시케타다는 그 동작만 보고 자현류의 매력에 빠져 가르쳐달라고 조르기 시작합니다.

젠키치는 처음에는 겸손히, 다음은 완곡히, 그 후로는 매몰차게 거절하하며 두사람사이의 두달에걸친 실랑이는 시작됩니다.

60일째 되던날, 시케타다는 문 옆에다가 목검을 숨겨두고 젠키치를 만나러 들어갔습니다. 물론, 젠키치는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시케타다는 포기하고 돌아가는 척 하며 나가다가 숨겨둔 목검으로 마중나오는 젠키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물론, 자현류의 달인답게 검기가 섞인 호통을 쳤고, 시케타다는 검기에 눌려 나자빠졌다고 합니다.

60일간의 끈질긴 간청, 그리고, 목검을 들고 달려들정도의 절박한 심정… 이런것들이 젠키치를 감동시킨 것일까요?

젠키치는 목검사건 이후, 시케타다에게 입문을 허락했습니다. 당시, 시케타다는 28살, 젠키치는 22살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케타다는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젠키치에게 스승의 예를 다하며 배웠습니다.

사쓰마 대도

한편, 시케타다는 시마즈의 가신이었기때문에, 영주 시마즈가 교토에 있는 6개월동안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도장에서 자현류를 수련했고, 6개월만에 모든 기술을 전수받고 사쓰마로 되돌아갑니다. 시케타다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집 마당에 있는 나무를 상대로 혼자서 수련과 연구를 거듭합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너무나 수련을 열심히 한 나머지, 마당의 나무들이 모조리 맞아서 말라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서, 그는 젠키치로부터 배운 자현류에 자신의 검술인 태사류, 그리고 3년간의 연구와 수련에서 얻은 교훈을 합쳐 자신만의 검술을 창안합니다. 그것이 일본 근대화의 키를 쥐고 시대를 좌지우지했던 사쓰마의 검술, 시현류입니다.

물론, 창안당시 시현류는 신흥 검술이었고, 당시의 사쓰마 공식 검술은 태사류였기 때문에 대립은 필연이였습니다. 시케타다는 태사류 검객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시현류의 우수성을 과시합니다.

사쓰마 18대 당주인 시마즈 이에히사는 지시를 내려 태사류 검술사범과 시케타다를 대련하게 합니다. 시케타다는 이 대련에서 승리하고, 그의 이름은 사쓰마 전역에서 유명해집니다.

이후, 시케타다는 시마즈 이에히사의 무술사범으로 임명되고, 시현류는 사쓰마의 공식 검술이 됨과 동시에, 사쓰마 내에서 타류 검술의 수련이 금지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지겐류는 그 후 일본의 메이지 이신기에 유명해진다. 사쓰마가 에도 바쿠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일본을 만들기 위한 대열의 선봉에 서면서 바쿠후를 지키려는 무사들(대표적으로 신선조)과 수많은 싸움을 해야 했다. 단지 정면베기 한 기술만으로 일격필살하여 상대를 죽이는 지겐류에 어찌나 혼이 났는지 신선조의 국장 곤도 이사미는 “지겐류의 첫 일격은 일단 피하고 봐라” 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중간에 나오는, 소도로 사람 패기에 주목…>

문제는, 이놈의 첫 일격이란게 피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빠른머리를 매일 천번씩 쳐도 검도 시합하기에 무리가 없다고 하는 사람을 봤는데, 지겐류는 하루에 통나무치기만 만 번을 한다.

이 정도로 휘둘러대니 휘두르는 힘이나 속도가 무시무시해서, 지겐류 달인이 통나무를 치면 나무에서 연기가 올라올 정도라고 한다. 이런 사람이 투쟁본능(연습할 때도 기합으로 “죽어라!(체스토!)”를 외친다-_-)으로 똘똘 뭉쳐 일격필살로 덤벼든다고 생각해보자. 피하기는 고사하고, 막더라도 칼이고 뭐고 죄다 두동강이 난다. 이러한 막강한 전투력은 일개 번에 불과한 사쓰마의 유신 지사들이 일본 전토를 지배하는 에도 바쿠후를 붕괴시키는 과정에서 있었던 수많은 전쟁에서 그 위력을 증명한다.

그 후, 유신지사들이 세운 메이지 신정부가 시조쿠(士族)의 특권을 빼앗고 징병제를 실시하여 무사들의 일자리를 빼앗자 사쓰마의 무사들은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 전쟁(세이난西南 전쟁)에서도 현대적인 병기로 무장한 정부군을 닥치는 대로 전멸시키며 자신들의 칼솜씨를 과시한다. 보다 못한 신정부가 검술발도대를 편성하여 진압에 나설 때까지 지겐류의 무사들은 승승장구한다.

지겐류의 창시자 도고 시게가다는 시현류의 오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공격을 의심하지 않고 삼천지옥(三千地獄)까지 베라.” “첫일격에 모든것을 담아 적을 죽여라.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으로써 적을 죽여라.”

지겐류를 설명하는 데 이 두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레퍼런스**<월명성희>

– 9권, 대원 씨아이, 2006

[[이정희의 검도교실]](http://my.netian.com/%7Ejungmugwan/new_page_32.htm)

15 thoughts on “일격필살!! 사쓰마 지겐류

  1. …검도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동영상이 웃깁니다.. orz.

  2. 내이름은 젠X 젠X 존X트! 로리를 지키는 검이다[????????]
    체스토 하니까 이게 생각나버리는 이유는?=3[도주]

  3. 검도에 대해 알아도…

    중간에 주목됐던 소도로 사람패기의 주인공인 안경 쓰신 분 표정과 목빼는게 너무 웃겨요.ㅋ

  4. 헐…동영상 아무 생각없이 웃으려고 두번째 봤는데..

    대단한 실력가시네요;;

  5. 쓰신 글 모두 재밌게 잘 봤습니다.
    그런데 이 글 제일 윗쪽에 쓰인 만화 짤방 어느 만화인지 알 수 있을까요?

    추신: 그리고 제가 이글루 밸리를 통해 들어오게 되었는데
    여긴 이글루 블로그가 아닌 모양인지 제 이글루에 링크 걸려고 했는데
    링크 걸기(Add Link)가 없네요;;; 혹시 이글루로 링크 가져가는 방법이 있나요?

    • 인용된 만화는 < 월명성희> 라는, 신선조를 다룬 만화입니다. 10권 짜리인데, 용두사미가 되어 가지고 많이 아쉽습니다.

      이글루로 링크를 가져가시려면 글 제목을 클릭하신 뒤 주소를 그대로 복사해 가시면 됩니다.

  6. 한마디 해주자면

    세이난때 오히려 막부군이 칼질을 한게 아니라 대포등의 신식무기로 더 많이 무장했음을 전혀 모르는가 보네

    무슨 그시대에 칼질로만 놀았는줄아나

    • 반말쩌시네요. 님은 따지실거면 글이나 제대로 읽고 따지시죠?

      이 전쟁(세이난西南 전쟁)에서도 현대적인 병기로 무장한 정부군을 닥치는 대로 전멸시키며 자신들의 칼솜씨를 과시한다. 보다 못한 신정부가 검술발도대를 편성하여 진압에 나설 때까지 지겐류의 무사들은 승승장구한다.

      라고 고어핀드님이 적어놓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메이지 정권은 쇼군이 없었기때문에 막부도 아닙니다.님이나 좀 알고 적으시죠?

  7. 그리고 저때 무슨 류는 얼어죽을 그딴게 승패를 좌지우지한게 아니라

    갑옷입은쪽과 안입은쪽으로 해서 승패가 갈렸다

    갑옷입었던 막부가 이길수밖에없었단 말이다

    • 갑옷입은쪽과 안입은쪽으로 승패가 갈렸다는것은 금시초문이군요.애초에 당시 메이지 정권의 군사들은 서구식의 무장을 하고있었고 갑옷을 입은쪽은 오히려 사쓰마 쪽입니다.

    • 이건 뭐 주둥아리 놀린 꼬라지도 가관이지만 지식 수준부터가 어디서부터 반박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군요. 반박을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르쳐주는 것도 뭐가 기초가 되어야 가르쳐주지…

      십하드 // 갑옷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미 기동성이 강조되면서 전국시대식 갑옷은 퇴출되었지만, 머리에 두르는 쇠테나 손목 방어구 정도의 가벼운 방어구는 상당히 쓴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것을 갑옷이라고 봐야 할지는… 음, 글쎄요;

  8. 시현류 이야기를 보다보면 사실 검술이 어쩌고 하는 것 보다… “이 사람들 버서커 만들기에 열중했구만” 이라는 생각이 더 듭니다. :D 그나저나 위에 별 쓰레기들이 달라 붙었네요

    • 늑대님도 잘 아시겠지만, 역사 블로그라 함은 쓰레기들일 불러모으는 힘이 있지 않습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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