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

역도산 [力道山, 1925.11.14~1963.12.15]

한국 태생의 일본 프로레슬러.

본명 김신락

국적 “일본”

활동분야 스포츠

출생지 한국 함남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원죄?]

전기영화라는 장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원죄를 하나 안고 태어난다. 전기영화가 “실제 인물에 대한 이야기” 라는 것이기 때문인데, 전기영화 혹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는 쉽게 말해 “콜레라냐 매독이냐”를 선택하라는 것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 실제 인물을 그대로 그리면 아무 문제 없지 않느냐구? 그러면 영화의 narative가 깨진다. 말 그대로 두 시간 반짜리 TV 드라마(좀 규모가 큰)에 불과하다고 – 반대로, 아예 이야기를 새로 구성해 버리면?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 영화는 “이건 아무개의 전기영화가 아니야!!!” 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게임은 처음부터 진퇴양난인 셈이다. 그런데 이 정도에서만 끝나줘도 그나마 다행일지 모른다. 사상 최고의 천재 감독으로 불리는 오손 웰즈는 자신의 역작 “시민 케인” 을 만들었다가 다시는 대형 영화 메가폰을 잡지 못했다. 그 영화의 모델이 당대의 신문왕 랜돌프 허스트였고 그가 장악한 언론 전체가 그 영화를 “깠다”. 흥행은 대실패했고 언론재벌의 눈밖에 난 그에게 자금과 배우를 대 주는 스튜디오는 없었다. 그는 결국 곳곳을 전전하면서 작은 규모의 실험 영화들만 만드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시민 케인”은 몽타주 기법을 완성시킨 영화로 칭송받으며 지금까지도 가장 위대한 영화 1위를 당당히 랭크하고 있건만.

전기영화는 아니지만 역사적인 사실을 별로 가감하지 않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카게무샤” 역시 그리 재미를 본 영화는 아니다. 스펙터클한 액션 신 하나 없는 조용한 예술영화거든 –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지 감독의 “마지막 황제” 보다는 나았다. 아이신지료 푸이의 “나의 반생 – 황제에서 시민으로” 라는 책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거의 미화도 아닌 신격화 수준으로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분기탱천케 했다. 지금도 나라 팔아먹고 환관하고 동성연애나 하면서 사치에만 골몰했던 푸이의 모습이 현실의 벽에 꺾인 젊은 계몽군주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다 나온다. 뭐 인간의 운명에 대한 감독의 성찰이 있어서 그나마 볼 만 했지.

다 알다시피 “역도산”은 한국 태생의 일본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져있지만, 그는 한 때 “일본, 역도산” 이라고 편지봉투에 쓰면 배달이 된다는 말이 나돌았던 일본의 영웅이다. 그러니 영화를 보기 전에 위에 적은 전기영화의 특징을 숙지하고 들어가자.

[RIKIDOZAN을 아십니까]

<실제 역도산>

역도산(리키도잔). 영화는 그가 스모를 하던 시절부터 레슬링으로 전향, 영광을 안는 과정을 거쳐 종말에 이르기까지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하지만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이 영화는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구라” 에서처럼 등장인물을 일방적으로 미화시키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생판 사실만을 그대로 그린 영화도 아니다.

먼저 역도산이 스모에서 레슬링으로 전향한 것. 물론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큰 이유었던 것은 확실하나 돈문제도 약간 있었던 것도 보인다. 가족을 먹여살릴만큼의 돈을 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폐장 디스토마를 앓으면서 몸무게가 왕창 빠졌고 체력적인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상대의 얼굴을 때리는 기술을 남발한다. 결국 이 기술이 가라데 춉이 되어 덩치 큰 서양 레슬러들을 “조지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특히 역도산의 마지막 사랑으로 그려지는 샤미센 연주자 아야(나카타니 미키 분)는 가상의 인물이다. 역도산의 마누라는 역시 게이샤 출신의 후미코라는 여성이다. 날씬한 나카타니 미키와는 달리 살이 알맞게 찐 미인이었고 세련된 태도의 여성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역도산은 1950년 그녀와 결혼하기 전에도 이미 2남 1녀의 자녀가 있었다.(그것도 북한에) 이혼 이유는, 역도산이 제자들이다 뭐다해서 집에 동숙시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대나.

이렇듯 영화에서의 그의 모습은 그 실제의 모습과 상당히 다르다. 영화 속의 역도산은 극적인 효과와 감독/주연배우(설경구)의 해석에 따라서 많은 변형이 가해진 역도산인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영화]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으나…>

그럼 영화는 역도산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영화는 그냥 역도산을 역도산으로 본다. 아무것도 아닌, 그냥 “역도산”.

그는 “천황 아래 역도산”, 패전 콤플렉스를 치유해 주는 일본 국민의 영웅이고 영화에 으레 등장하는 선량한 영웅 역도산이 아니다. 그는 그냥 지기 싫어하는 평범한 레슬러 역도산일 뿐이다. 뭔가 하려고 하면 “거기까지!!” 라는 소리에 그만두어야 하고, “조선이 나한테 해준 게 뭔데?” 할 정도로 평생을 조선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그런 사람이다. 평생 억눌린 것을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고 지기로 한 게임을 약속을 들이엎고 이겨 버리기도 하고, 자기 기술을 천황 앞에서 자랑하고 싶어서 오버 액션을 하기도 하고, 적십자사에서 주는 훈장 등에 우쭐하기도 하고, 돈이 생기니까 착하고 선량하기만 한 아내를 구박하고 다른 여자를 찾는, 그리고 힘들면 아내 품에 안겨서 어리광을 부리고 “우리 엄마가~” 하면서 엉엉 울어대는 남자다.

이것이 선과 악이 알맞게 뒤섞인 역도산의 모습이다.(실제로도 좀 이랬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아주 훌륭하여(역도산 역을 하겠다고 몸무게를 불리고 레슬링 기술을 배운 설경구나 나카타니 미키의 절제된 연기) 화면에 새겨지는 영상들 또한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깔끔하다.

하지만 “(플롯의 기승전결이) 잘 짜여진 이야기”를 원하는 현대의 관객들이, 이런 영화를 과연 좋아할까? 필자와 같은 설경구 빠돌이나 슈퍼 히어로 리키도잔을 추억하고픈 일본인이 아닌 이상 이 영화를 얼마나 좋아할까. 다시금 생각하는 거지만 전기영화는 정말 만들기가 힘든 영화다.

[2004년 12월 21일 SNUCSE 문화리뷰란에 기고]

<사족>

이 리뷰를 쓰고 나서, 이런 뉴스를 보게 되었다.

http://news.naver.com/hotissue/dailyread.php?sectionid=106&officeid=111&articleid=0000002760&datetime=2004122413280002760

…내 말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