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키히메는 왜 하가렌만큼 대중적이지 못할까

  • 이 글은 2004년 12월 25일 자정 우재 군과의 메신저 대화를 기초로 해서 작성한 것입니다.

내일은 절친한 친구가 서울로 올라오는 날이다. 항상 그랬듯이, 그 친구 오는 날이면 우리는 당연히 용산을 간다. 우리의 쇼핑코스는 PC게임 -> 공시디-> 콘솔게임 -> 피규어 -> 건담 -> 음반 -> 롯데리아 용산점이다. (어떤 친구일지 대충 상상이 가실 듯.)

…내일은 반드시 음반점에서 하가렌 Complete Best를 구문해야 한다. 듣자하니 이 음반은 일본에서의 애니메이션 음반 기록을 가볍게 깨버렸단다. 그전 기록은 기동전사 건담 SEED였다는데, 그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80만장의 기록을 고냥 깨버렸다. 이 정도면 그 인기가 짐작이 간다.(저번에 일본 갔을때도 온통 하가렌 판이었구만) 건담 SEED도 DVD가 130만 장 풀릴 정도로 인기였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제기 하나. “츠키히메는 왜 SEED나 하가렌만큼의 대중적인 인기가 없을까?”

일단 기억을 더듬어 보자. 하가렌의 1,2화는 어땟는가? 에드와 알 일행이 레트 교라는 사이비종교에 푹 빠져서 사는 어떤 도시(이름을 까먹었다)에서 겪는 일들을 보여 주고 있다.

라디오 뽀갠 거? 알았어요 알았어. 고쳐 드리면 될 거 아니에요.

대충 어떤 일이 있었더라? 가게에 먹을 것을 사러 들어간 강철 형제, 거기서 라디오를 박살내게 되는데, 엘릭 형제는 연금술을 써서 라디오를 고쳐 주게 된다. 여기서, 하가렌의 세계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법칙, “등가교환의 법칙”이 설명된다.(덧붙여서 국가 연금술사 제도까지도) 인체연성을 포함한 연금술의 각각의 원리는 이 1,2화의 이곳저곳에서 관객들에게 전부 설명된다. 현자의 돌이 무엇인지, 엘릭 형제는 왜 이런 모습이 되어버렸는지 하나도 에누리없이 다 말해 줘버린다. 마지막엔 엘릭 형제를 방해하는 누군가(러스트, 롸스, 글러트니가 여기서 소개된다.)들을 살짝 소개해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 큐에 보여 준다 이 말이다.

이런 것들을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하가렌의 세계에 처음으로 들어온 시청자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것도 자잘한 설명은 하나도 없이, 대화 속에 섞어서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을 설명하려 하지 말라. 그대로 보여 줘라.” 이건 시나리오 연출의 제1법칙이다.(문제는 이 “당연한” 것을 제대로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겠지만. 의외로 지키기가 힘든 법칙이다.)

“세계”에 대한 정보뿐만이 아니다. 이 친구들 – 에릭 형제가 겪고 있는 갈등은 무엇이며, 앞으로 뭘 하려고 “졸라 설칠 것인지” 를 제시한다. 그래서 하가렌을 1,2화만 본 시청자도 “앞으로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겠군!”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덧붙여서, 이 모든 것들을 “사이비종교 교주와 강철 형제의 대결” 이라는 짧은 에피소드에 넣어서 “무려” 한큐에 처리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관객은 말 그대로 만화적인 하가렌의 세계에 대해서 이질감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엘릭 형제의 과거를 궁금해하고(실제로 다음부터 엘릭 형제가 육체를 잃어버리게 된 경위에 대한 서술이 나온다.), 그들의 목적하는 바를 이해하며, 그들을 방해하는 러스트 일행과의 대결을 감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남은 건 박진감넘치는 스토리의 전개 뿐이다.

포르노 그라비티의 신나는 오프닝 사운드트랙도 한 몫 했다.

이러한 것은 영화 시나리오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주류 영화들을 자세히 보면, 일반적으로 전체 러닝타임의 1/4 지점에까지 위에 설명한 기본적인 것들을 전부 갖추고 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주변 상황은 뭔지, 그리고 주인공은 뭘 위해서 “졸라 설칠” 것인지! 그 시간에 관객의 눈을 붙들어 놓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십중팔구 간판 내릴 준비 해야 한다.(“역도산”이 딱 그 짝이었지만!)

건담 SEED 같은 경우는 하가렌과 같은 짜임새가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경우는 건담이라는 거대한 파괴력의 이름값과 반다이의 무지막지한 마케팅신공(흔히들 “돈지랄”이라고 하지)으로 문제를 해결했고, 지구에 내려오면서부터는 캐릭터 파워로 인해 본격적으로 부스터가 붙기 시작한다.(그리고 그 약발이 다하는 30 후반이 지나면 절벽 밑으로 급전직하 꼬나박히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_-)

설령 문제가 생기더라도, 사이버 포뮬러 스텝진답게 시원시원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씬, 결정적인 데서 자르고 엔딩 테마를 울려 퍼지게 하는 8시 드라마적 절대무공-_-에는 당해 낼 장사가 없다. 이것 때문에 SEED는 하나를 보면 그 다음 회는 반드시 보게 되는, Inductive step^^*이 성립한다.

SEED 전체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34화의 프리덤 탈취.
정말이지 숨이 막히도록 멋지다.

자 그럼 츠키히메는 위에서 설명한 요소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알퀘이드와 시엘에 대해서 좀 알만해지는 것은 겨우 5화다. 주인공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아는 데에도 3화는 걸린다.(게다가 특징이나, 내적인 갈등이 없어 밋밋해 보이기까지 한다.) 앞으로 주인공이 “뭘 하려고 졸라 설칠 것인지” “누구하고 맞장을 뜰 것인지” 초반에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SEED 처럼 막강한 마케팅력을 동원하는 것도 아니요, 잘 나가는 성우들 주렁주렁 붙이고 일류 캐릭터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캐릭터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츠키히메의 캐릭터, 물론 훌륭하지만, 파괴력 면에서.) 인지도가 높아서 사소한 문제(사실 요새 후쿠닭이 이 문제로 내 뚜껑을 살랑살랑 여닫고 있는데)가 패스되는 것도 아니다.

결정적으로, 츠키히메의 초반 – 시키가 알퀘이드를 전신분해하고, 하지만 알퀘이드는 멀쩡하고 등 – 이 워낙에 황당하다.

“아니, 강철도 츠키히메 만큼이나 황당하긴 마찬가지잖아? 왜 츠키히메만 황당하다고 하는 건 뭐야?” 라고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슈퍼맨 – 스파이더맨”효과로 설명이 가능하다.(사실 이 이름은 내가 맘대로 붙인 거다. 신경쓰지 마라 -_-)

슈퍼맨이 날아다니는 것과 스파이더맨이 날아다니는 것은 물론 둘 다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사람은 스파이더맨이 날아다니는 것이 어쩐지 더 사실감을 느낀다. 왜일까?

슈퍼맨이 날아다니는 것은 전혀 뜬금이 없을 뿐더러, 밋밋해서 재미가 없다. 말 그대로 빨간 팬티 입고-– 핑핑 날아가니면 되는 거라고.(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지루함도 상당 부분 이런 이유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가면만 벗으면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고, 그의 거미손에는 화학적 지식의 결과라는 “최소한의 과학적 설명이 이루어진다.” 게다가 스파이더맨이 뉴욕 시내를 날아다니면서 피자를 배달하는--(거 감독 취미도 참) 장면은, 관성의 법칙과 중력의 법칙이 적용되어 사람들에게 긴장감과 재미를 준다. 무대뽀로 날아다니는 것보다 덜 황당하다.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신기한 이야기” 를 좋아하지만, “황당한 이야기”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황당하면 뜬금이 없지는 않아야 하는데, 뜬금이 없는 츠키히메의 이런 점(뜬금없는 백주대낮의 살인이나, 전신분해된 여인네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타나는 것 등)을 참고 보아 주는 사람은 애니메이션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나, 아름다운 음악과 분위기에 끌린 사람이나, 애니메이션을 해부해 보겠다고 덤비는 변태적인-_- 오타쿠 녀석 정도이다. 일반 “민간인” 들은 십중팔구 여기서 애니메이션을 던지게 된다. 하가렌은 그래도 물리/화학적인 지식을 약간씩 첨가해서 부가 설명을 함으로써 이러한 사태를 방지했다.(되리어 스토리 전개가 기발하다는 평까지 들었다.)

이러한 연유로, 아름다운 음악과 고요한 영상이 잘 어울리는 츠키히메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나 필자 같은 오타쿠들에게는 열렬한 지지(혹은 적지않은 호의)를 받고 있지만, 거기서 끝이다. SEED처럼 DVD가 130만장씩이나 풀릴 일은 없다. 하가렌처럼 음반이 불티나게 팔릴 일도 없다.

그래서.. 아니, 걍 그렇다는 얘기다.

  • 2004년 12월 26일 SNUCSE 커뮤니티에 투고

Ps> 어떤 정신나간 괴인이 만든 츠키히메 오프닝

3 thoughts on “츠키히메는 왜 하가렌만큼 대중적이지 못할까

  1. 확실히 미연시에 비하면 월히의 애니메이션화는 쓰x기라고 욕을 먹습니다.
    기본적으로 월히의 미연시는 여러가지 루트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월히전체의
    세계관을 알기위해선 ALL CLEAR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걸 소화헤내기에는
    애니메이션이 부족하다고 할수있을듯합니다..
    타입문(월히 제작사)의 묘미는 케릭터들의 스펙이 딱(!) 정해져있고
    그리고 이야기의 진행성에 따라 이런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것이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건담,강철과는 다른점이
    크다고 볼수있지 않을까요..

    강철은 연금술사 등가교환의법칙 현자의돌 이3가지를 이용해서 내용을 끌어가고

    건담은 말그대로 가장중요한 건담, 캐릭터들의 대립과 갈등하는 면으로 끌어간다고 생각
    합니다..

    제가 적긴 했지만.. 민망하네요;;;

    아참, 알퀘이드가 살아난것은 흡혈귀 진조이기 때문인데요..
    마늘,십자가,햇빛에 크리티컬뜨는 잡종들과는 격이다르기 때문에..
    세계 world 라는 빽이 있기때문이죠..
    말하자면.. 정령이라고나 할까요.. 절대! 죽지않습니다..
    아, 시키(주인공) 한텐죽지만.. 이녀석은 이레귤러 이기때문에..
    뭐 생각해보면 이녀석이 스토리를 끌어가는 걸까나..

    이상 킹왕허접의 글이었습니다 데헷♡

  2. 사실, 원작에서도 “진조가 왜/얼마나 쌔염?” 이 잘 안나오죠. 가월십야까지 가서야 알게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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