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립 전쟁사 박물관 – 퀴러시어 아머Cuirassier Armor

2005년 8월 6일 오후 4시

브뤼셀 왕립 전쟁사박물관

흔히 총기의 발달로 기사와 갑옷이 전장에서 퇴출되었다고 하지만, 그 과정이 그렇게 단순한 것도 아니다. 전쟁 무기는 필연적으로 보수성을 강하게 띠는 물건이다. 새로운 것이 나왔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기존의 것을 최대한 개량하여 사용하는 것이 선호된다.

중세 유럽에서 총기는 1400년대 중반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총기 도해(圖解)는 1475년의 것이다. 처음엔 대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계속 발전하면서 기존의 갑옷을 크게 위협했다. 막시밀리안 갑옷에서 볼 수 있듯이 처음에 갑옷은 계속 강도를 높여 가면서 발달했지만, 결국 방어력을 더이상 끌어올릴 수 없는 순간이 왔다. 갑옷은 사람이 입는 것인 만큼, 무게와 착용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도를 높인다고 해서 무게가 너무 나가게 되면 갑옷으로서는 실격이다. 지금까지 갑옷은 플루트Flute를 파거나 열처리 등을 해서 무게를 늘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것조차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팔치온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 퀴러시어 아머. 갑상이 짧은 것으로 봐서 아직 초기의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 플레이트 아머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에 대한 갑옷 장인들의 대응은 “덜 중요한 곳은 포기하고, 중요한 곳만 방어한다.” 였다. 어깨 등의 무거운 장갑판을 간략하게 떼내고, 화기에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은 몸통 부위의 방어에만 집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리 갑옷은 통채로 떨어져 나갔다. 대신 갑상Tasset을 확장하여 허벅지까지 방어하도록 하였을 뿐이다.

투핸드 소드와 함께 전시되어 있는 퀴러시어 아머. 갑상이 길어지고 커다란 어깨 방어판도 없어졌다.

이렇게 점점 경량화되어가는 기병들의 갑옷을 퀴러시어 아머Cuirassier Armor라고 한다. 이 갑옷의 등장과 함께 기병들의 전투 방식도 바뀌었다. 15세기 말 처음 퀴러시어가 등장한 이래 16세기를 거치면서 기사들은 점점 사라져갔고, 그 자리는 경량화된 갑옷과 권총 등의 화약 병기로 무장한 퀴러시어들이 채워갔다.(물론 기병칼이나 창 등도 썼지만.)

전형적인 퀴러시어 아머. 각종 도록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형식이다. 갑상이 무릎에 이르기까지 늘어져 있다.

그 후의 전쟁에서도 기병들이 활약한 만큼, 퀴러시어 아머는 계속 사용되었다. 다만 그 모양은 점차 간소해져 갔다. 17세기 중반의 30년 전쟁 말기영국 내전에 즈음하면 퀴러시어 아머는 팔다리를 방어하는 부분은 전부 다 떨어져 나가고 가슴 부분만 방어하도록 경량화된다. 퀴러시어 아머가 마지막으로 사용된 것은 나폴레옹 전쟁을 거쳐 제 1차 세계대전에서였다.

배에 총알 자국이 있는 퀴러시어 아머. 나폴레옹 시대의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몇몇 퀴러시어 부대가 남아 있었지만, 이미 탱크와 비행기의 시대가 열린 마당이라 별 의미는 갖지 못했다.지금도 영국 왕실 근위대의 Blues and Royals 등의 소수의 퀴러시어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의장용으로만 갑옷을 착용할뿐이다.

참고문헌

무기와 방어구(서양편), 이치카와 사다하루 저 / 남혜승 역, 들녘, 2000

http://en.wikipedia.org/wiki/Matchlock

http://en.wikipedia.org/wiki/Cuirass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