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테스트]내가 CEO가 된다면…?

바야흐로 야후의 심리 웹진 “구냥“의 폐인이 되어가고 있는, 아니 폐인이 되어버린 고어핀드.

그러다보니 이번 심리테스트는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먼저 해봤어요 ( –)

어쩌다 보니 새 심리테스트 나오는 것만 목을 늘이고 기다리게 되나… 쩌업 ( –);;

[#M_ 미안하다 심리테스트 하느라 늦었다. | … |

자기애 : 70 점 자극추구성 : 42 점

사실 이 테스트, 꽤나 흥미가 있어서 세 번이나 해봤습니다. 그 중 두 번 나온 게 이 “폼생폼사” 인데, 나머지 결과도 자기애가 높고 자극추구성은 중간 정도 되더군요. 꽤 정확하게 나온 모양입니다.

당신이 추구하는 것이 뭔지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당신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낸다. 당신은 남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남들과는 다른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 남들과는 상관없이 지낼 수 있다. 문제는 당신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당신이 발견한 가능성을 실현하는 사람은 정작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다. 당신의 꿈은 크지만, 당신에게 그 꿈을 위해 모험을 할 만한 용기는 많지 않다.

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사람들이 하나도 모르는 건 어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뭐… ( –)

그래서 사람들은 날 빅장 스타일러라고 부른다 으허허허

당신이 경영하는 회사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신중함 덕분일 것이다. 당신은 모험을 꺼리긴 하지만 궁극적으론 모험을 추구한다. 성공적인 경우, 당신은 남들이 다 하는 방법을 이용해 남들이 생각치 못했던 목표를 달성한다. 즉 이전에 검증된 방법을 이용해서 검증되지 않았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또한 당신은 실패할 일은 시작도 하지 않는다. 당신이 가능하다고 말한 것은 정말로 가능한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남들은 한번도 생각치 못했던 일일 지라도 말이다.

당신이 경영하는 회사가 망한다면 그것 역시 당신의 지나친 신중함 때문이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는 빠른 결정과 신속한 행동이 성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당신의 조직과 당신이 이끄는 이사회는 여러 가지 실패 가능성을 피해보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몰려버릴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것이다. 이것이 축적되면 회사는 망한다. 게다가 당신은 한번 결정한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당신의 취미와 회사의 이익을 구분하지 못하며, 당신이 옳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남들도 똑같이 여겨주길 기대한다. 그 결과 당신 회사는 당신의 취미활동에 돈을 대느라 파산한다.

고어핀드가 제일 만들어보고 싶은 게임-_-..

당신은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시장 보다는 안정된 시장에서 강점을 발휘한다. 환경이 변할 것 같은가? 카르텔을 만들고 담합을 하라. 현상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당신 성공의 비결이다. 경쟁자는 싹수부터 밟아 없애거나 아예 매수해 버려라. 물론 이런 것들은 당신이 이미 그 분야에서 1인자의 위치를 확고히 유지했을 때나 가능한 얘기지만. 가능한 차선책은 CEO로 사는 것 보다는 그 뒤에서 CEO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개인 취향으로 창조한 브랜드의 신화, 스티브 잡스 (Steve Paul Jobs)

1955년 생. 애플 컴퓨터의 창업자. 현재 애플 컴퓨터 CEO. 현존하는 미국의 CEO 중 가장 까다롭고 가장 “제멋대로” 성격의 인물. 무일푼에서 시작,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컴퓨터 천재를 만나 애플 컴퓨터를 창립하고 백만장자가 됨. 신들린 설득력과 타고난 협상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제품 생산에 개인 취향을 고집하는 등 전횡을 일삼다가 회사에서 쫓겨나고 또 다시 창립한 회사를 말아먹는 등 파란 많은 경력을 쌓음. 그러나 그가 “취미 삼아” 사들인 3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가 대박 행진을 이어나가고, 위기의 애플이 그를 다시 CEO로 추대하면서 그는 다시 한번 인생의 전성기를 맞음. “개성과 스타일 빼면 시체”라고 할 정도로 스타일에 살고 스타일에 죽는 경영을 고집함. (이런 스타일 경영은 현재 어느 정도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음.)

사실들

1955년 생. 어린 시절 클라라와 폴 잡스라는 부부에 입양돼 길러짐. 그다지 풍족하지 않은 환경이었으나 스티브 잡스는 특유의 낙천성과 넉살, 그리고 타고난 설득력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수 있었음.

여행을 가고 싶을 때 차를 빌려 타거나 심지어 경비행기를 얻어 탄 적도 있었고, 고교 졸업 후 리드 대학에 들어가 돈 한푼 안내고 한 학기 동안 기숙사 학생으로 (밥까지 공짜로 얻어 먹어가며) 지낸 적이 있었다. 그는 마치 혀만 놀리면 세상 모든 일을 다 해결할 듯한 사람이었음.

학창 시절 그는 대체로 지적이고 무사태평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음. 그러나 그는 사실 무서울 정도로 까다로운 성격에 병적으로 완벽주의를 고집하는 편이었음.

어릴 때부터 장사에 대단한 수완이 있었음. 스테레오 라디오를 사서 헤드폰 잭을 연결해 상당한 마진으로 물건을 되파는 등, 돈 버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고 자신도 그것을 즐겼음.

1974년 아타리 사에서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몇 달 만에 그만두고 인도를 여행함. 돌아온 뒤로 “영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자부함. 그의 이 영적 에너지는 평생을 두고 언급됨.

1975년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에 가입. 이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꿔줄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Stephen Wozniak)을 만남. 이들은 이곳에서 의기투합,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기로 함. 스티브 잡스는 자기 부모님의 차고를 빌려 컴퓨터 조립 “공장”을 만들었고, 1976년 애플 I 컴퓨터를 출시함. 100% 스티브 워즈니악의 손으로 만들어진 이 컴퓨터는 666달러에 판매됐음.

애플 컴퓨터의 공동 창립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와 완전 정반대의 성격으로 천사 같은 심성을 가진 박애주의자인 동시에 당대 최고의 천재이기도 했음. 그는 혼자 최초의 통신 해킹 기기를 발명했으며, 업계 최초의 프로그램 개발, 암호 풀기, 복잡한 코드 해독 등 어디서 뭘 하든 천재적 역량을 발휘함. 특히 그가 만든 애플 컴퓨터는 오늘날 PC의 모든 기초 설계를 창안한 역사적인 작품이었음.

1977년 애플 I의 성공에 고무된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은 애플 컴퓨터라는 회사를 설립,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애플 II를 시장에 내놓음. 이후 1980년대 중반, IBM이 PC 시장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애플 II는 “PC의 대명사”로 불리며 컴퓨팅 역사상 가장 성공한 하드웨어 제품 중 하나로 기록됨.

1980년 애플 컴퓨터가 주식을 상장하고 스티브 잡스는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됨. 당시 애플의 시장 가치는 12억 달러. 그러나 이후 내놓은 애플 III의 부진, IBM PC의 시장 진출 등으로 애플 컴퓨터의 전성기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막을 내리기 시작함.

워즈니악을 제치고 애플 컴퓨터의 “실세”가 된 스티브 잡스는 이때부터 본인 취향의 제품을 생산토록 독려함. 스티브 잡스의 첫번째 작품은 1983년 출시된 “리사.” 자신의 첫번째 딸의 이름을 딴 이 컴퓨터는 최초의 그래픽 사용자 환경을 비롯해, 마우스, 컬러 모니터 등 각종 첨단 기능을 탑재한 당시로선 가장 진일보한 PC 제품이었음. 리사를 필두로 잡스는 제품의 시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오직 “미치도록 훌륭한,” 가장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임.

1984년 애플의 대표작 매킨토시 출시. 리사의 혁신적인 디자인을 답습한 이 제품은 보다 작고 저렴하고 실용적이었다. 그러나, 매킨토시는 IBM PC에 비해 제대로 쓸만한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램)이 거의 없었음. IBM PC엔 문서 만들기, 장부 작성, 데이터 관리, 게임 등 없는 프로그램이 없었으나, 매킨토시로는 이 모든 작업이 버거웠음. 하드웨어와 운영체계의 완벽성에만 치중한 잡스의 고집 때문이었음.

스티브 잡스가 첫 출시한 매킨토시 앞에서. 이때부터 스티브 잡스 개인은 회사보다 더 유명한 IT 업계의 “브랜드”가 됨.

1985년 자신이 주도한 제품의 연이은 실패를 이유로 애플 컴퓨터에서 퇴출됨. 잡스는 특히 자신이 CEO로 고용했던 존 스컬리(John Sculley)로부터 퇴출된 것에 굉장한 충격을 받음.

퇴직금 1500만 달러와 상당수의 투자금으로 새로운 컴퓨터 회사 넥스트(NeXT)를 설립. 넥스트는 1989년 최초 (역시 진일보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으나 다시 한번 애플리케이션과 호환성 부재로 참담한 실패를 당함. 이후 넥스트는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다가 결국 1996년 애플에 인수됨. (공식적으론 인수였지만, 사실상 시장 퇴출이었음.)

넥스트 출시 뒤 다시 한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스티브 잡스. 세상은 스티브 잡스의 회사나 제품보다는 업계 최고의 브랜드였던 스티브 잡스 개인에게 더 관심이 있었음.

1986년 조지 루카스가 운영하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겸 3D 그래픽 소프트웨어 업체인 픽사(Pixar)를 인수함. 당시 픽사의 가격은 1000만 달러. 픽사는 1989년 컴퓨터 애니메이션 “틴 토이(Tin Toy)”로 사상 처음 아카데미 상을 받음. (단편 영화 부문)

픽사는 이후 월트 디즈니와 합작으로 1995년 첫번째 상업 영화인 “토이 스토리(Toy Story)”를 내놓음. 그때까지 스티브 잡스에게 애물단지에 불과했던 픽사는 이 작품 하나로 일약 헐리웃 최고의 알짜 기업으로 급부상.

약 10년간 계속된 제품 판매 부진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 경영 위기로 난항을 겪던 애플 컴퓨터가 마지막 고육책으로 1996년 스티브 잡스를 “임시” CEO로 고용함. 잡스는 고사 위기에 처한 애플의 국면 전환을 꾀함. 이때부터 애플 컴퓨터는 전국에 애플 컴퓨터 직영 매장을 설립해 직접 마케팅에 나섰고, 파워맥 G3 기종을 출시하면서 회사는 순식간에 흑자로 돌아섬. 그리고 1998년 애플은 일반 고객 층을 노린 저가형 매킨토시 모델 아이맥(iMac)을 출시했고, 아이맥은 1년 만에 200만 대라는 기록적인 매출을 올리며 1998년 하반기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컴퓨터 기종이 됨. (애플은 이 제품으로 시장 퇴출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시장 점유율은 윈텔 진영에 계속적으로 밀림.)

2001년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 아이포드(iPod) 출시. 이 제품은 출시되자마자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 2002년 70만대, 2003년 140만대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림. 아이포드는 MP3 플레이어 시장의 대세가 됐고, “아이포드 산업”이라 할만큼 관련 제품들까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감. (아이포드는 원래 애플 것이 아니라, 토니 파델이라는 사람의 발명품이었음. 그는 원래 필립스나 다른 기업에 제품을 팔려고 했는데, 애플 컴퓨터의 회사 환경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애플에 제품을 넘김.)

비록 컴퓨터 시장 점유율은 하락했지만,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아이포드 산업으로 기업의 새로운 활로를 찾음. 아이포드는 하드웨어 판매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한 음원 판매로 상당한 수익을 얻고 있음.

아이포드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껍데기 뿐인 브랜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스티브 잡스의 스타일에 의한 브랜드 경영은 애플 컴퓨터의 회생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 시장 적응력은 떨어지지만 독창적인 완벽주의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사람들의 구매력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코카콜라, 나이키에 버금가는 세계 정상급 가치를 지니고 있는 애플 컴퓨터의 브랜드는 모두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와 집착에서 비롯된 것.

스티브 잡스는 100% 유아독존형 인간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제로에 가까움.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짓밟아 버리는 버릇이 있음. 특히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가혹하리만큼 적대적임. 픽사에서 제작한 “벅스 라이프”를 홍보하기 위해 외주 업체가 방문했을 때, 잡스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업체 측 신입 여사원에게 “네가 그렇게 말해 봐야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왜 자꾸 입 아프게 떠들어 대냐?”라며 여자가 눈물을 쏟을 때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모욕을 주었다고 함.

이상주의적 인간으로 항상 자신의 이상에 맞는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데 총력을 다했음. “미치도록 위대한(insanely great)” “우주의 역사에 남을(making a dent in the universe)”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매번 제품이 나올 때마다 하드웨어 디자인, 소프트웨어, 레이블 명칭, 심지어 기계 내부의 전선줄 배치까지 일일이 간섭하며 완벽을 추구했고, 이는 애플 컴퓨터의 독창적인 기업 브랜드로 발전함.

괴팍한 성격에 채식주의자의 절제된 생활, 문학적 감수성과 변덕스러움, 뛰어난 언어 구사력과 설득력 등은 매스컴의 관심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으며, 매우 독단적인 성격이면서도 생각이 깊고 산업 본질에 대한 이해가 탁월했다.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안목도 높아 스티브 잡스 개인 역시 또 다른 독창적인 브랜드로 발전했음.

스티브 잡스의 졸업식 축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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