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히코 이노우에

일본에 처음 갔을 때가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그 때 같은 여행사 프리패키지(*주1)를 구입한 사람들 중에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나하고 광고 일을 하는 형 하나 뿐이었는데, 형은 휴가가 나자 얼떨결에 여행을 오게 된 거라 나와 형은 함께 여행하게 됐다.

여행 마지막 날 그 형과 얘기를 하다가 슬램덩크 얘기가 나왔다. 그 형은 그림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 다케히코 이노우에는 정말 그림 잘 그리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노우에 그림 잘 그리는 거 알고 좋아하기도 했지만 정작 프로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오니 귀가 쫑긋했다. 이야기인즉슨, 이랬다:

“솔직히 슬램덩크 처음 연재할 때 그림은 만화가로서 그저 그런 수준이다.(나도 동의했다.) 그는 부상으로 농구를 접고 만화를 시작한, 늦깍이 만화가일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슬램덩크 막판에 가면 만화가 아니라 영화가 된다. 하다못해 오토바이 타다 목 부러져서 싸인펜 하나 가지고 누워서 그린 “부저 비터”도 아무나 그릴 수 있는 솜씨가 아니다.

배가본드? 이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이 안 되는 지경까지 왔다.

이노우에는 이미 최고다.”

…”배가본드”를 보다가 갑자기 그 때 그 일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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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는 이쁜 캐릭터를 좋아한다. 현실이 그럴 일이 없다보니 예쁘고 멋있는 거, 잘생긴 걸 좋아한다.

만화가도 사람이다보니 역시 그런 걸 좋아하고, 좋아하니 자주 그리게 되고, 자주 그리니 잘그리게 된다. 그러다보니 그림 그리는 사람 치고 이런 캐릭터 못그리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나 싶다.

…그럼, “그 자체로 삶이 묻어나오는” 캐릭터라면?

전란의 세월에서 잔뼈가 굵은 촌장. 마을을 괴롭히는 악당을 죽여 달라고 칼 좀 쓴다는 걸인에게 부탁하면서도 “까짓거 죽이면 좋고, 못하거나 둘 다 죽어도 손해볼 것 없지” 하는 노인.

그가 뭔가를 마음먹은 모습.

칼을 놓고 온갖 고생 다하며 살아온 퇴물 검객. 세상 꼭대기에서 밑바닥으로 추락해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본 중년 남자.

그리고 그가 겁먹고 당황한 모습.

결코 이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이거 그릴 재주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늦깍이 만화가 중에서.

덤으로, 눈 속에 헤아릴 수 없는 악함과 태연함을 지닌 악당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게다.

Ps> 오랫동안 안 나오던 배가본드 21권이 드디어 나왔던데, 언제 볼까 ㅡㅜ

*1) 숙박지와 교통편만 구입하고 나머지 여행은 여행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패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