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그대 생에 눈이 멀다 (by 휘레인)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것아

네 하늘도 없고

땅도 없는 왕이라

그저 허공 속을 너울거리며

땅에도 발을 딛지 않고

하늘도 우러르지 않고 사는 것이야

내 눈이 멀어 그대를 보았다.

내 마음이 멀어 그대를 좇았다

일생에 한 번 눈이 멀어도 시원찮을 판이야

한데도 내 딛고 선 땅이 너무나 작아

네 딛고 선 허공이 부럽기 짝이 없구나

어하, 어찌할 것이냐

하늘을 보고 웃어보자

땅을 보고 울음이나 토해보자

사람도 아닌 것이 사람의 웃음을 흘리고

짐승도 아닌 것이 짐승의 울음을 아는구나

내 왕은 땅을 모른다.

내 왕은 하늘도 모른다.

그저 훨훨 날아갈지니

땅도 하늘도 없는 이 세상을

한 판 늘어지게 놀아부자꾸나.

  • 오늘 산 무비위크에서 본 멋진 시 한 구 입니다. 한 눈에 반해서 이렇게 원작자 허락도 안 받고, 블로그에 올려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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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 *

내 눈이 멀어 다시는 줄 위에 못 설 줄 알았는데

이것 참 색다른 맛이네

내, 실은 눈멀기로 말하면 타고난 놈인데,

그 얘기 한번 들어들 보실라우?

내 어릴 적에는 광대패를 처음 보고는 그 장단에 눈이 멀고,

광대짓 할 때는 어느 광대놈과 짝 맞춰 노는 게

어찌나 신나던지 그 신명에 눈이 멀고,

한양에 와서는 저잣거리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엽전에

눈이 멀고,

얼떨결에 궁에 와서는…

그렇게 눈이 멀어서…

볼 걸 못보고, 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을 훔쳐 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이 멀어져 가는 걸 못 보고.

이렇게 눈이 멀고 나니 훤하게 보이는데 두 눈을

부릅뜨고도 그걸 못보고.

*장생 *

(억지 신명을 내며)

그건 그렇고!

이렇게 눈이 멀어 아래를 못 보니 그저 허공이네, 그려.

이 맛을 알았으면 진작에 맹인이 될 걸.

공길

(울먹임을 참으며)

이 잡놈아, 맹인이 되니 그리 좋으냐?

*장생 *

그래, 좋다. 좋아 죽겠다, 이년아!

공길

(장생을 한동안 바라보다)

저…

(울먹임을 참으며)

저 겁대가리… 없는 놈 좀 보소.

눈깔도 없는 놈이 게가 어디라고 거길 올라가 섰냐.

냉큼 내려가라, 이놈아.

장생, 환희에 찬다.

*장생 *

(신명이 나기 시작해서)

저 년 말버릇 좀 보게.

내가 이 궁에 사는 왕이다, 이년아!

공길

(울먹임을 참으며)

그래?

안 그래도 내 세상을 이리 아사리판으로 만든 왕의

상판때기 한번 보고 싶었는데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알겠다, 이놈아!

*장생 *

(탈을 벗어 아래로 던져 버리며)

저 년이! 내 상판이 어디가 어떤데?

공길

(공길도 탈을 벗어 허공으로 던져버리며)

네 놈이 두 눈이 멀어 뵈는 게 없으니,

세상을 이리 아사리판으로 만들어 놨구나.

*장생 *

옛끼, 이년!

자, 이승의 왕인 내가 한번 놀아볼 것인데,

이 모습을 한번 보면 저승에 가서도

못 잊으니 잘 봐라. 이년아.

공길

넌 죽어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프냐?

양반으로 나면 좋으련?

*장생 *

아니, 싫다!

공길

그럼 왕으로 태어나면 좋으련?

*장생 *

그것도 싫다!

난…

광대로 태어날란다.

공길

이 놈아. 그 광대짓에 목숨을 팔고도 또 광대냐?

*장생 *

그러는 니년은 뭐가 되고프냐?

공길

나야, 두말할 것 없이.

광대, 광대지!

*장생 *

그래!

징한 놈의 이 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

광대로 다시 만나 제대로 한번 맞춰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