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겸을 든 조선 여군

도대체 우리나라 사극이나 역사물을 보면 조선시대 병사들은 죄다 푸른 색 전포에 당파만 들고 나오는지. 역사적인 사실에 안 맞을 뿐만 아니라 촌스러워 쉰내가 벅벅 나 죽겠다. 게임이고 영화고, 이걸로 도대체 뭘 만들어 보겠다는지.

그런 의미에서 역사 갤러리의 그림쟁이 오작서생 햏이 그린 이 그림은 꽤나 간지가 난다. 일단 상상력을 발휘해서 여성 캐릭터라는, 상당히 재미있는 캐릭터를 디자인했으면서도 지킬 것 다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 포스트에서는 무기에 대해서 주로 논하기로 하겠지만 나머지는 언젠가 별도 포스트로 작성해볼 생각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겸(鎌)이란 낫을 이르는 말인데, 본래 삼국시대 많이 쓰였던 무기다. 상비군이라는 것이 전무한 시대다 보니 병사들은 손에 익숙한 것으로 전쟁을 해야 했고, 당연히 농사일에 쓰던 낫이 전쟁터에 기어나온 것은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아, 그런데 이 커다란 걸 어디에 쓰냐고? 바로 기병을 말 위에서 끌어내리거나 말 다리를 토막내는 데 쓰인다. 보병이 기병에게 대항할 방법이 별 게 없다보니 이런 류의 전술은 중세 유럽에서도 사용된 바 있었다.

다양한 날을 가진 철겸

위 사진을 보자. 공주 하봉리 유적에서 출토된 철겸인데, 이거 밑을 보면 뾰족하게 나와 있는 철재의 무언가가 보일 것이다. 이것은 물미라고 하는 것인데, 창과 같은 무기를 땅에 꽂을 때를 위해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즉 이 낫은 땜방용 무기가 아니라 당당한 전투용 무기였던 것이다. 보통 기병의 양성이 어려운 가야와 신라 지방에서 많이 나오는 편이라고 알고 있는데, 서울 아차산에서 발견된 고구려군 수비초소에서도 이 무기가 많이 나온 걸로 보아 고구려군도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시대가 흘러 예전만큼의 활약은 못 하게 되었지만,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함대에도 시체를 건져올려 목을 따기 위해 배마다 겸이 실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모르긴 몰라도 판옥선에 기어오르는 왜병들의 손목을 뎅겅뎅겅 잘라내는 데도 꽤나 활약했지 싶다. 여기 나온 겸은 오작서생 햏이 약간의 판타스틱함을 살리려고 살짝 바꾼 것인지라 고증에 100%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대략 괜찮으니 넘어가자.

일제시대 그려진 임진왜란 전투도의 일부. 오히려 지금의 사극보다 고증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이 그림에도 버려진 조선군의 협선 위에 나뒹구는 철겸이 보인다.

다음으로 허리에 찬 칼을 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우리나라 고유의 환도(環刀)는 보통 저렇게 칼자루가 등 뒤로 가게 찬다. 전통적으로 활이 주력인 한국 군대인 만큼 화살 넣는 전통과 활 넣는 동개도 차야 하고, 그러다보니 별로 쓸 일이 없는 칼이 희생한 거다. 일본처럼 시도때도 없이 발도술 하며 날라댕기는 넘들이 많으면 당연히 칼자루가 앞으로 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갑옷. 수(水)자 전포를 씌운 것으로 봐서 이 여햏 수병인가보다.

우리가 사극에서 보는 푸른 전포만 입고 나오는 조선수군은 구라다. 일단 그 전쟁판에 그리 군복이 통일되어 있을 리도 없고(누더기 군복이 많았겠지) 무엇보다 그 시대 갑옷도 안 입고 전쟁터 뛰어드는 바보는 없다. 함대에서 노 젓는 격군이라면 또 몰라도 말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캡쳐. 참으로 문제가 많은 장면이다.

이 여햏이 입고 있는 갑옷은 우리가 사극에서 이따금 보는 두정갑이라는 갑옷이다. 몇 가지 종류가 있지만 아무래도 빨간색과 초록색 갑옷이 눈에 익을 것이다.

겉 보기에 허술해 보이지만, 가죽 안에 죄다 철판이 박혀 있다. 이른바 철두정갑이다. 화살과 같은 투사무기에 대한 방어력이 발군인 데다가 일본도도 의외로 공격하기가 쉽지 않은 갑옷이지만 좋은 만큼 당연히 가격의 압박도 심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철판을 뺀 면피형 두정갑이다. 이 갑옷은 비교적 대중적으로 양산되서 보급이 가능했고 조선 후기에는 대표적인 갑옷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어쨋든 무장이 이 정도면 말단 졸병은 아닌 것 같다. 요점은, 이 햏자 정말 그림 잘 그린다는 거. 바로 이거.

3 thoughts on “장병겸을 든 조선 여군

  1. 야시럽지 않은 색감이 좋네요.
    조상들의 지혜가 응축된 병장기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되길 바래 봅니다.

  2. 조선시대에 일반 병졸들도 갑옷을 입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습니다. 드라마에서 갑옷을 입지 않고 나왔다고 해서 딱히 고증 오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군복의 통일성은 당시 자료를 보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저 당시 의병들도 자원해서 관군에 편입되는 경우도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반드시 전포를 갖추어 입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군복이 촌스럽다는 것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문제지만 저 당시에 통일된 군복을 제정하고 일괄적으로 입힌 나라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 이 글은 오래 전에 쓴 글이라 미처 수정하지 못했습니다. 갑옷 착용 건에 대해서는 “수군에 한해서는 거의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가 정설로 알고 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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