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사무라이와 히달고

종강 기념으로 영화 “히달고”를 봤다.

항상 바쁘게 치여 산다지만 보겠다고 마음먹은 영화를 2년이나 묵히다 보게 되는 건 살다 살다 처음이다.

1.

대형 서점의 에세이 란을 찬찬히 걷다 보면 하나의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언젠가부터 현대문명 밖의 세계에서 경험한 일종의 구도담 같은 것들이 서가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 현대 문명 밖의 세계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네팔 티벳의 오지부터 아마존 강의 어딘가까지 다양하지만, 편리하지만 건조한 삶을 살아가던 글쓴이가 그곳에 가서 가난하고 야만적이지만 정신적으로는 훨씬 풍요롭고 건강한 그들을 이해하고, 일종의 종교적인 체험을 하고 돌아왔다는 류의 이야기다. 이런 류의 글들은 글쓴이가 의사나 사업가, 혹은 교수와 같은 초 현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 또한 공유한다.

이러한 책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상황에 있을 것 같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팍팍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 어디론가 탈출할 곳을 찾는다. 하지만 탈출할 곳은 없으니 차라리 자신이 소망하는 일을 체험하고 온 이야기를 간접 경험함으로써 대리 만족한다.

2.

라스트 사무라이와 히달고 모두 2004년 초에 개봉된 영화다. 하지만 시기적인 것을 제외하고도 두 영화는 많은 것을 공유한다.

우선 뿌리 뽑힌 나무 신세의 주인공이다. 한 때 잘 나가던 그들은 한창 산업화로 치닫던 19세기 말의 미국 사회에 의해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괴로워하다가 이역만리의 이국으로 떠나게 된다.

그래, 나도 갈 데가 없다…

라스트 사무라이의 주인공 네이든 알그렌 대위는 남북 전쟁의 영웅이다. 하지만 전쟁과 인디언 토벌을 거치면서 용기와 희생, 명예와 같은 전통적인 군인의 덕목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돈만 남은 세상에 환멸을 느낀 그는 서커스단에서 총쏘는 묘기를 보이며 술로 세월을 보내다, 신식 일본군의 교관이나 하러 일본행 배에 몸을 싣는다.

히달고의 주인공 홉킨스, 그리고 그의 머스탱 종(種) 히달고는 최고의 콤비다. 둘은 함께 수백 번의 경주에서 우승했다. 카우보이 홉킨스도 덕분에 잘 나가는 우편 배달부다.

하지만 백인과 인디언 사이의 혼혈인 홉킨스에게, 시대의 흐름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한창 진행되던 미국의 산업화에 의해 불벼락을 뒤집어쓴 건 그와 함께 살던 인디언들이었다. 물소는 사라지고, 땅은 백인들에게 빼앗기고. 급기야 인디언 토벌로 몰살까지 당한 그들은 서커스 쇼에 출연하면서 겨우 삶을 유지한다. 애꿋게도 인디언을 몰살시키라는 그 명령서를 들고 간 게 바로 홉킨스였다.

자넨 인디언도 백인도 아닐세… 더 늦기 전에 자신을 찾게.

그들의 혼이나 다름없던 야생마 머스탱도, 야생마를 멸종시키려는 미국 정부의 방침에 의해 도살되어 간다. 방황하던 홉킨스와 히달고는,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3.

다음으로 둘은 도착한 이국 – 신비로운 동양 세계 – 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와 다시 만나게 되고, 그것과 투쟁하게 된다.

알그렌 대위는 사무라이들과의 교전에서 포로가 되고, 그들과 함께 한 해를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무라이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닮아간다. 결국 그는 명예와 충성를 아는 사무라이가 되어 신식 군대로 상징되는 현대식 합리성에 반기를 든다.

나도 걍 사무라이 할래..

아라비아의 사막을 건너는 “불의 대양” 경주에 참가한 홉킨스와 히달고는 또다시 혈통 문제와 마주한다. 유명하지 않은 말을 탄 이름 없는 미국인 기수라는 점에서 그는 라이벌들인 아라비아 산 명마를 탄 명문가 출신의 기수들의 상대가 못 되지만, 결국 라이벌들의 방해를 뚫고 경주에서 우승한다.

이쯤 놓고 보면 두 영화 사이의 차이점이 뭐인지 언뜻 생각이 안날 정도다.

이국 여인네와의 찐한 사랑은 덤이지.

3.

레바논 계 미국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양에 의해서 발명되고, 상상된 신비로운 동양에 대한 환상” 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두 영화는 이야기의 틀 자체는 상당히 고전적인 이야기 틀이다. 하지만, 두 이야기 모두 기존의 이런 류 이야기들과는 달리, 해결의 공간으로 동양을 지목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왜 그럴까?

이 두 영화는 앞의 책 이야기에서 말한 신비로운 (동양) 어딘가에서의 종교적 체험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 이런 캐릭터가 스크린에 등장한다는 것은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와 아라비아의 사막을 신비롭게 생각하는 현대(서양)인의 페르소나이기 때문일 것이고.

사무라이들이 명상을 더 많이 했을까, 사케 마시면서 노래를 더 많이 불렀을까?

4.

물론 두 영화가 완전히 같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는 라스트 사무라이를 히달고보다 더 높게 치고 싶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한 사나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자신의 과거에 대놓고 반기를 드는 등 드라마틱한 갈등이 있는 반면, 히달고는 이야기 전개가 조금 뻔하고 밋밋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갈등이 해결되는 방식을 보자면, 두 영화는 확실히 같은 원형을 공유하는 영화다.

도축할 머스탱 걍 나한테 다 팔어…

  • 이 영화는 400번 이상의 장거리 경주에서 우승한 프랭크 홉킨스의 이야기를 실화로 한 것이다. 그는 야생마 보호론자로 활동하다 86세의 나이로 1951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