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력이 돋보이는 만화, <검은 사기>

어떻게 보면, 한국 만화와 일본 만화의 차이점은

국적보다 다른 데 있는 게 아닌지.

“속는 쪽이 나쁘다. 그게 당신들 논리지? 그럼… 나한테 불평하면 안 되지.”

사기꾼을 사기치는 사기꾼을 소재로 한 <검은 사기> 는 정말 멋진 만화다. 이 만화의 기본 얼개는 평범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기꾼들을 주인공 쿠로사키가 다시 사기치는 것. 다만, 그 수법이 매번 다양하여 읽는 이에게 모르는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를 준다. 사기꾼들도 바보는 아니고 사기를 치는 것 또한 위험이 따르는 일인 만큼 쿠로사키가 “수술”을 진행하는 동안 느껴지는 긴장감도 무시 못한다. 법의 빈틈을 빠져나가는 자들에 대한 복수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덤이다.

그대로 갚아 주자구!!

억지에 가까운 거창하기만 한 설정으로 가득찬 판타지 만화와는 달리 아주 현실적이고 공감가는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일본 만화잡지 특유의 치밀한 자료 조사가 담긴 이야기도 돋보인다. 이 만화는 애시당초 사기꾼들이 실시하는 다양한 마케팅 방법(?)과 그들의 수익 모델(?)에 대한 풍부한 정보 수집이 없으면 불가능한 물건이다.

실제로 이 만화의 뒤켠에는 부록으로 이야기에서 다뤘던 사기 수법에 대해 해설하는 코너가 실려 있는데, 한 편을 구성하기 위해서 여러 권의 사기 사건을 조사해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 같다. 보다 보면 일본 만화가 가진 막강한 취재력에 대해서 절로 감탄하게 된다. 이야기가 산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각 에피소드를 깔끔하게 똑똑 떨어지게 만든 것도 괜찮고, 주요 인물 또한 개성이 또렷한 인물 몇으로 제한1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악덕 기업만 조지는 특이한 사기꾼, 요이치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유명한 가이낙스社의 창업자인 오카다 토시오는 자신의 저서 <오타쿠: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에 미친 놈들> 에서 일본 만화사를 설명하면서 영화와 같은 제작 체계, 즉 “집단 작업” 시스템을 갖추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시스템의 배경은 일반적인 만화 작가의 작업 역량으로는 주간 만화의 연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편집자가 상업적 상황에 맞춰서 연재될 만화의 스타일을 결정하고, 적당한 화풍을 가진 만화가와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를 물색한다. <침묵의 함대> 처럼 밀리터리나 국제정치 등에 대해 대량의 자료가 필요한 경우, 전문 스태프들이 지원해주는 것은 물론이다. 심지어 복싱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가 복싱의 규칙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단순한 소재 재공의 차원이 아닌 셈이다.

언젠가 애니메이션 잡지에서 어느 만화가의 이야기를 볼 기회가 있었다. 이 만화가는 한국 사람이지만 일본에서 연재를 진행하고 있다. 잡지 기자와의 미팅 중에, 앞으로 야쿠자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 기자 하는 말이, “작품의 배경이 90년대 말이니까, 이 시기의 야쿠자 조직원 복장 자료를 준비해서 보내주겠다.” 라고 하더란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작가 왈, “한국에서 만화 그리면서 미친 듯이 자료를 찾아다니며 고생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검은 사기>를 보다 보니 그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한국 만화의 주류인 웹툰과 일본 만화의 주류인 잡지 만화의 차이점은 국적보다 이런 데 있는 게 아닌지.


  1. 나머지 사기꾼들은 다양하게 사기를 치긴 하지만, 결국 단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