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싫으면, 하지를 마세요.

1.

2003년 7월 21일의 일이다. KBS 아침마당에서 게임중독 문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며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를 불렀다. 그리고… 정신병자 취급을 하며 망신을 줬다.

임요환 팬들은 즉각 반발했다. 그럴 만 했다. 방송 자체가 프로게이머 – 학부모들의 눈엣가시인, 게임이라는 문화로 먹고 사는 직업 – 를 모욕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보고 “사이버머니 1억원 있느냐?” “PK 할때 오프라인에서도 충동을 느끼느냐?” 따위의 상식없는 질문이 나올 수가 없다.

인터넷을 통해 반발이 확대되자 KBS는 7월 24일 <아침마당> 서두에서 “임요환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프로게이머로서 현재 게임중독에 빠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조언을 하기 위해 출연했으며, 그 취지에 따라 방송이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핵심적인 문화로 자리잡은 ‘인터넷’을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입니다” 는 입장을 표명했다. 물론, 임요환 팬들을 비롯한 게임 팬들이 이걸 사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당연했다. 사람 죽여 놓고 “의도는 나쁜 게 아니었어.” 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2.

2년 전의 불쾌했던 기억이 떠오른 건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 실린 칼럼을 읽으면서였다. 매체는 다르지만, 모든 잘못을 게임의 탓으로 여기는 야비한 사고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침마당과 이 칼럼은 동일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한 교사가 썼다는 칼럼의 중심 내용은 간단하다. “게임 업체들의 방치와 무관심으로 인해 청소년들이 건강을 해친다.” 는 것이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의 수면권” 운운한다. 가소로운 이야기다. 어떤 것이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를 끈다면, 밤을 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하게 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그저 재미있으니 밤을 새워서 게임에 열중하는 거다. 칼럼은 흡사 게임 업체들이 청소년들의 수면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식으로 글을 써 놨는데, 적어도 내가 알기에 게임 업체들이 청소년들을 잠 못자게 하면서 게임만 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밤을 새워가면서 게임에 열중하는 것은 결국 이용자 스스로의 선택1이다. 즉, 문제는 이용자에게 있지 매체 자체에 있지 아니하다.

글쓴이가 제시하는 원인 분석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소위 “게임 업체들이 청소년들의 건강 문제에 무관심한 이유” 가 “게임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경제 논리가 청소년 보호라는 사회적 양심에 우선했기 때문이다.” 란다. 글쓴이가 착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게임산업은 경제 논리에 따른 보호를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굳이 사실을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현실은 「도덕의 왕국」이다. 청소년 보호라는 전가의 보도만 휘두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곳이란 말이다. 영웅전설 사건과 같이 게임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와 탄압이 일삼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 우익이 역사 교과서를 왜곡해도 대신 두들겨 맞는 “만만한 대상” 이다. 이렇게 게임이라는 매체는 그 잘난 사회적 양심에 항상 탄압당해 왔다.

하지만 이 글은 이렇게 명확한 사실들을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야비하게도 게임업체 탓을 한다. 이 칼럼은 게임 업체들이 청소년들의 건강 문제에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당하게 법에 따라 장사하는 게임 업체들이 왜 청소년들의 자유의지로 인한 문제까지 챙겨야 하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자녀가(혹은 학생이) 게임에 중독되어 건강을 망쳤다면, 진짜 책임이 있는 것은 그들을 올바르게 교육시켜야 할 의무를 가진 학교와 가정이다. 왜 자기가 할 일을 게임업체들에게 뒤집어 씌우는가? 그 정도로 그치면 다행이겠는데, 오히려 게임업체가 책임을 안 진다면 언제까지나 불온한 매체로 규정되고야 말 것이라고 협박을 해댄다. 글쎄,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이 칼럼의 저자 스스로가 게임을 불온한 매체로 보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할 성 싶다. 불온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만들어내는 게임 업체들에게 엉뚱하게 책임을 지우고 있지 않은가. 멀리 갈 것도 없이 게임산업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한 이 칼럼 자체가 그 증거라 하겠다.

3.

그런 의미에서 위 칼럼은 한국의 기성사회 – 교사, 학부모 등등 – 가 게임이라는 문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 아주 나이스한 자백서라 하겠다. 게임이 그렇게 싫으면, 그냥 하지를 마라. 그러면 될 일이 아닌가?


  1. 물론, 그것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