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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flickr@sascha-gebhardt)

12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주로 사용된 투구는 11세기에 등장한 노르만식 투구Norman Conical Helmet였습니다. 이 투구는 11세기 이전에 등장했지만, 12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화 없이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투구뿐 아니라 갑옷까지도 별 변화가 없었습니다. 11세기의 방어구들을 사용하는 것, 이것이 12세기 중반까지의 상황이었습니다.

영화 『Kingdom of Heaven』의 한 장면. 십자군 기사들이 노르만식 투구를 착용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12세기 말이다.

하지만 12세기 중반을 넘어서면 기존의 방어구 체계에는 몇 가지 변화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공격 무기가 발달되면서 더이상 기존의 방어구로는 충분한 방어력을 기대하기가 힘들어졌거든요. 도검 자체도 발전했지만, 기존의 방어구를 박살낼 수 있는 도끼나 메이스 같은 무기들이 널리 쓰1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250년경에 제작된 프랑스의 마카이요프스키Maciejowski 성경사본에 실린 일러스트. 약간 후대의 것이지만, 도검 공격력의 막강한 발전을 설명하기엔 모자람이 없다. 칼과 도끼에 사정없이 박살나고 있는 투구들을 보라!!

공격력이 강화되는 만큼 방어력 또한 강화되어야 했습니다. 가장 간단한 해법은 신체 주요 부위에 더 많은 보조 방어구들을 장비해서 방어력을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탱크의 방어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갖다붙이던 방법과 비슷한 방법이지요.

일전에 Chain Mail에 추가되는 다양한 보조 장비들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 글에서 소개한 부속구들은 12세기 초까지 그런 게 있다 뿐이지 그리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2세기 말에 이르면 이전까지 잘 쓰이지 않던 쇼우스(Chausses)가 다리 보호를 위해 널리 사용되며, 길어야 손목 정도를 덮던 호버크도 손 전체를 덮을 정도로 길어지게 됩니다. 아래 재현 사진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 주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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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노르만 쇠뇌수 재현. (출처: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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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의 기사 재현. (출처: flickr)

이러한 해법은 간단하지만, 맹점이 있습니다. 급소인 머리에 대한 방어는 그대로라는 것이죠. 여기에 대해 처음으로 시도된 해법은 투구 만드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원뿔 모양 디자인을 포기하고 비교적 더 평평한(하지만 방어력은 더 강한) 투구를 만드는 것이었지요. 12세기 중반을 넘어가면 기존의 노르만식 투구는 슬슬 적게 쓰이게 됩니다. 대신 그 자리를 메운 것은 Pot Helm과 같은 새로운 투구였습니다.

Pot Helm - 대충 이렇게 생겼습니다. 영화 『Braveheart』의 한 장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공격력이 강화되면서 안면 공격에 대한 방어도 중요해졌거든요. 결과적으로 Pot Helm은 안면 보호 장치가 장착되면서 전혀 새로운 투구로 진화해 나가게 됩니다. 그레이트 헬름Great Helm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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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헬름을 손에 든 12세기 말의 기사. (출처: flickr)


  1. 1141년 잉글랜드에서 벌어진 Battle of Lincoln에 대한 기록에도 잉글랜드 국왕 Stephen of Blois가 휘두르는 전투 도끼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