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le을 볼 때마다 나는

"붉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좌파들은 왜 아이폰을 쓰죠?"

작년 7월이었다. 한국어 트위터에서는 한 삼성전자 간부의 발언이 화제를 탔다. (#1, #2) 마침 어떤 신문 칼럼에서 갤럭시S를 "이순신폰"으로 지칭한 것이 네티즌들의 반감을 샀기 때문에, 이 발언은 iPhone 사용자들을 비국민(혹은 빨갱이) 취급한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1했다. 실제로 갤럭시S 출시 후 터져나온 문제점들무리한 언론플레이와 연관되면서 한동안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처: twitter@jcstar21)

의미는 좀 다르지만, 나도 Apple을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빨간색이다. 빨간 사과나 빨간 내 iPod를 떠올리는 게 아니다. 내가 떠올리는 건, 중국 공산당이다.

국공 내전: 도시와 농촌

국민당과 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놓고 벌인 전쟁인 국공 내전(1946-1950). 홍군(紅軍, 인민해방군)은 국민당군에 비해 장비도 보급도 열악했지만, 결국 국민당군을 완패시키고 중국 대륙을 차지한다. 막장짓을 반복하며 민심을 잃은 국민당보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도 있었지만, 군사적으로는 홍군의 배후지 확보 전략이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영화 집결호(2008). 국공내전을 소재로 하고 있다.

언뜻 보면 도시가 농촌보다 중요해 보인다. 일단 도시라는 곳 자체가 물자가 오가는 교통의 요지(Hub)이고, 또 공업 생산품도 도시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도시는 주위 농촌에서 올라오는 식료품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게다가 당시 중국 인구의 분포를 생각할 때, 도시는 그리 비중이 높지 않았다. 대다수 농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며 농촌을 장악한 홍군은 도시에 진을 친 국민당군의 보급을 끊고 굶겨죽였2고, 1949년에는 대륙을 완전 장악했다.

생산 Device와 소비 Device

내가 Apple에서 중국 공산당을 떠올리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처음 MS가 PC 시장을 장악했을 때, 워크맨이나 카메라 같은 컨텐츠 소비용 Device들은 생산용 Device인 PC와 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소비 Device들이 디지털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디카로 찍은 사진을 PC를 통해 싸이월드에 올렸고, PC에 있던 mp3를 mp3 플레이어에 담아 들고 다녔다. PC는 물자가 오가는 도시처럼 컨텐츠가 오가는 중심이 되었고, 도시가 공업 생산품을 생산하듯 업무 도구 노릇을 했다. 이렇게 PC와 소비 Device들의 관계는 도시와 농촌의 관계를 닮아갔다. 그리고 Apple은 iPod, iPhone, iPad 등을 출시하면서 "농촌" 을 착실하게 장악해 나갔다.

센양으로 진공해 들어가는 인민해방군. (1948)

동시에, PC의 상대적 중요도도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있고, 덕분에 개발 도구인 PC는 내게 없어서는 안될 도구다. 하지만 나는 iPhone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언제나 iPod로 음악을 듣고 iPad로 전자책을 읽고 인터넷을 하면서 다닌다. 집에 돌아오면 일단 하는 게 iDevice들을 PC에 설치된 iTunes와 sync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전에도 iPad로 책을 읽다가 잔다. 컴퓨터가 업인 나조차 소비 Device들을 쓰는 시간이 PC를 쓰는 시간과 비슷한 것이다. 내가 이 정도일진대, PC를 생산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은 PC가 중요해봐야 얼마나 중요할까? 이미 인터넷만 되는 가벼운 넷북3이 불티나게 팔리게 된 지도 꽤 됐다.

틀림없이 MS는 Windows, Office 등을 앞세워 생산 Device인 PC를 장악하고 있다. 마치 도시를 장악한 국민당군처럼. 하지만 근처의 소비 Device들은? 이 Device들을 장악한 것은, 바로 Apple이다. 농촌을 장악한 홍군처럼 말이다. 홍군이 국민당군을 박살내서 타이완으로 쫓아낸 것을 생각할 때, 무서워지지 않을 수가 있는가? 더 무서운 건, 이번엔 타이완 섬처럼 도망갈 구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거다.

주변부에 포위된 중심부

iOS 4.3에 대한 소문들이 오르내리는 와중에 최근 재미있는 소식을 하나 접했다. 향후 애플이 iPad 차기 버전에 Mac OS를 탑재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루머일 뿐이고 운영체제가 그렇게 쉽게 탑재될 수 있는 성격의 것도 아니지만,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애플 입장에서, 운영체제의 호환성을 높이는 것만큼 꽃놀이패도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컴퓨터공학부 운영체제 교육에 사용되는 Pintos 구현만 한 번 해봤어도 이런 소리는 못한다. 하기야 iPad 차기버전 해상도가 24인치 모니터 수준이 될 거라는 소리도 나오는데 이 정도야 약과지.

북경에 입성하는 인민해방군(1949).

애플이 휴대용 디바이스 시장의 최강자인 이유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이 그들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아이폰이라는 희대의 플랫폼과 강력한 결제·배포 도구인 앱스토어가 결합함으로써, 수많은 소비자들이 없으면 못 사는 애플리케이션들이 iOS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제 개발사들은 거대한 시장을 보유한 애플의 플랫폼을 거부할 수가 없게 되었으며 수많은 앱들이 있는 한 소비자들은 애플의 손을 벗어날 수가 없게 되었다.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생태계가 조성된 것이다.

애플 입장에서는 이 생태계가 더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좋다. 흡사 만주를 지배하던 홍군이 화북, 화남, 사천까지 정복하는 게 더 나은 것처럼. 실제로 iPad는 신규 디바이스라는 걸 감안할 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애플리케이션들을 보급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이유? 간단하다. iPad와 iPhone은 동일한 운영체제에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미 iPhone에 의존하는 앱을 개발해 놓고 있는 개발사들 입장에서는 약간의 수정만으로도 열성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수 있다. 운영체제의 호환성은 이렇게 무섭다.

마찬가지 관계가 Mac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Mac과의 호환성이 높아질수록, 개발사들은 Mac용 애플리케이션을 그만큼 더 많이 내놓을 수밖에 없고 Mac의 점유율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나처럼 직업적 이유로 인해 리눅스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아닌 한, Mac은 그만큼 더 매력적인 제품이 되어가는 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라. 예전엔 거의 찾아보기 힘들던 Mac 사용자들이 얼마나 많이 늘어났는가? 이렇게 점유율을 차근차근 높여 가면서 우리 주변의 모든 컴퓨팅 기기들 - 휴대폰, 태블릿, 랩탑, 데스크탑 - 을 장악해 나가는 애플을 보다 보면, 내 눈에는 동북 지방의 작은 '해방구'에서 시작해서 대륙 전토를 장악해가는 홍군이 떠오른다. 도시에 고립된 국민당군을 격파하고, 무기를 빼앗는다. 향상된 전투력으로 다음 도시를 빼앗고, 다시 국민당군의 좋은 무기들을 빼앗고, 더 강해진다. 그리고 화북으로, 화남으로, 사천으로... 대륙 전토 장악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이게 애플빠들끼리의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는...

Apple이 만들어내는 제품들은 한결같이 예쁜 데다가 인터페이스도 편리하다. 그래서 나도 이들을 쓰길 좋아한다. 하지만 이따금 쓰다 보면, 서늘한 오한이 온몸을 감싸는 게 느껴진다. 대륙 전토를 장악하면, 이 친구들은 얼마나 거대한 존재가 될까.

* 다음 글도 읽어 보면 좋다: 패스워드 없는 세상, 애플과 구글이 열까 by 광파리 간략히 요약하자면 근거리 통신 기술을 이용하면 Apple이 결제 시장까지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 사실 이게 더 무섭다.

물론 고어핀드는 못말리는 구글빠입니다. 내게 막장 공돌이라고 돌을 던져도 상관없어


  1. 많은 네티즌들이 삼성이 언론을 움직여 애국심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단정한 것 같다. 물론 삼성측은 이것을 부인했다. 

  2. 정확히 말하면 굶주림을 참지 못한 국민당군이 알아서 공중분해됐다고... 흥미롭게도, 농촌을 장악한 월마트가 도시를 장악한 K마트를 박살내버린 것을 동일한 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3. 생산 Device로서의 PC보다 소비 Device 쪽에 더 가까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