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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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flickr@zetotal)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요소가 작용한다. 첫째는 대상 재화나 서비스의 필수 여부다. 예를 들어, 우리는 경매에 붙여진 미술품에 엄청난 가격이 붙어도 별로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미술품 없어도 살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상의 가격이다. 아무리 필수적인 물건이라 하더라도 가격이 엄청나게 싸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새 컴퓨터 없으면 거의 못 사는 시대가 되었고 또 트랜지스터가 모여서 컴퓨터가 되지만, 아무도 트랜지스터의 가격을 따지지 않는다. 개당 가격이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필수적이면서도 제법 돈이 들어가는 대상에 대해서는 불만을 품을 수도 있다. 식료품이나 집은 이러한 재화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정부에 이러한 항목들을 관리할 것을 요구한다. 반대로, 이 두 조건 중 하나라도 만족하지 않는다면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 반지는 아주 비싸지만, 필수품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의 가격을 가지고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2.

[2030 잠금해제] 20대 섹스의 경제학 (한겨레 2012.11.18)

최근 한겨레에 칼럼 하나가 올라왔다. 글쓴이는 그나마 20대가 즐길 수 있는 것은 데이트 정도 뿐인데, 이것마저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쉽지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한 달에 30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데이트 비용과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소득1을 대비시키며 답이 안 나오는 문제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사실 이건 처음부터 문제가 될 수가 없다. 데이트 비용은 애시당초 적정선이라는 게 있을 수 없는 데다가, 정확한 집계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선 첫 번째부터 살펴보자. 연애상대를 고른다는 것은 이성의 집단에서 자기 짝을 필터링하는 행위다. 이 과정에서는 경제적 자산뿐만 아니라 문화적·사회적·성적 자산 등이 모두 고려된다. 하지만 사람이 워낙에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보유한 자산의 종류와 양도 제각각이고 그걸 평가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상대방보다 더 적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경제적 자산을 투여해서라도 거래를 성립시켜야 한다. 데이트 비용을 많이 부담하는 것은 자신의 경제적 자산을 상대에게 보이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트 비용은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다.2 적정선이 없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인 '집계 방법'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서, 내가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면서 밥을 먹고 영화를 봤다고3 치자. 그렇다면 이 비용은 100% 데이트 비용인가? 굳이 데이트를 하지 않았어도 나는 밥을 먹고 영화를 볼 것이니, 식사비용이나 문화생활 비용이 아닐까? 만약 둘 다라면, 영화 표값에서 데이트 비용과 문화생활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어떻게 정의되나? 이건 답이 안 나오는 문제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 때문에, 이 문제는 애시당초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3.

이 칼럼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런 부적절한 문제를 더 부적절한 방법으로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글쓴이는 20대의 1회 평균 데이트 비용이 8만원(한 달이면 약 30만 원)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체 누가 그걸 정했나? 물론 내 주변에는 이와 비슷하게 돈을 쓰는 사람이 많고 이 이상으로 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조한다는 사실이 주장의 타당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4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는 많은 팬을 몰고 다니지만 정작 그의 주장의 타당성은 별로인 것과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글쓴이는 소위 돈과 시간 들여가며 하는 '연애행각'을 20대에게 필수인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이건 그저 사적 욕망일 뿐이지, 의식주처럼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멋진 피규어를 사고 싶은 욕망이나 원두커피를 마시고 싶은 욕망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만약 위 칼럼에서 데이트 비용을 피규어 구입 비용이나 원두커피 비용으로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별로 타당성이 없을 것이다. 데이트 비용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저 글은 필수적이지도 않은 경험을 구매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문제삼아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그 비용이 어느 정도가 드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래 가지고서는, 타당성이 없다.

나는 한 번에 8만원이 드는 데이트가 사치인지 아닌지는 관심도 없고 판단할 위치에도 있지 않다. 비싼 옷 걸치고 원두커피 물고 다니는 여성을 된장녀라 부르는 것도 반대다. 소비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할 문제고, 내 관심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적 영역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신문 지면에 이런 칼럼이 실리는 데는 관심이 있다.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기준을 갖다놓고 그게 보편 타당한 기준 내지 표준인 것처럼 주장하고, 그것을 이루기 힘든 현실에 불만을 표시하며, 도대체 결론이 뭔지도 모르겠는 글이 실리는 사태 말이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건 그냥 넋두리에 가깝다.

4.

솔직히 저 칼럼을 읽은 순간 생각난 것은, 얼마 전 화제가 됐었던 모 여성 기업인이었다. "왜 젊은이들이 정부에게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수동적인 입장인지 모르겠다"는 그녀의 발언이 망언 취급을 받은 데는 이유가 있다. 그녀는 재벌 2세고, 아버지의 지원을 받아 기업을 인수해서 지금까지 온 사람이다. 이런 극도로 희귀한 배경을 가진 사람은 일반적인 20대와 비교 자체가 되질 않는다. 그런데 "나도 세계 30개국에 진출하는데 왜 너희는 못 하느냐?" 라는 소리를 하니 사람들이 집단으로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데이트 비용 문제도 마찬가지다. 앞서 밝혔듯이 내 주변에는 저 정도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는 친구들이 적지않이 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모두 안정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좋은 학교 나와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표준'이 될 수가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만큼 그들이 지출하는 데이트 비용도 일반적인 20대와 비교가 될 수가 없다. 비교가 되지 않는 걸 억지로 비교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동적인 젊은이 운운과 데이트 비용 운운은 똑같다. 차이점이라면 전자가 사람 열 받게 만드는 반면 후자는 짜증이 나게 한다는 것 정도다.

5.

혹자는 이 칼럼에 대해 "20대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없는 여유가 없다는 사실 정도는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라고 의견을 주기도 했다. 동감이다. 차라리 형편없는 20대 소득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조차 없다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면 훨씬 훌륭한 글이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5

좀 더 내 느낌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글쓴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가 심히 궁금해졌다. 제법 여유가 있는 내 친구들보다 훨씬 씀씀이가 큰 사람들과 어울려 지낸다면 (그래서 내 친구들 수준의 비용이 사회적으로도 표준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면) 처음부터 이런 글을 쓰면 안 됐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저런 무리한 비용 산출을 밀어붙이지 말았어야 했다. 오가는 이야기를 듣자 하니 재능도 있고 글도 잘 쓰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쩌다 신문 칼럼난에 저런 글을 덜컥 내버렸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세상은 불가사의한 일 투성이다.


  1. 최저 시급이 5천 원도 안 되는데 상당수가 이걸 못 받는다... 

  2. 괜히 키 작고 못생긴 남자가 미녀 애인을 끌고다니면 돈이 엄청나게 많은가보다라고 하는 게 아니다! 

  3.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냥 넘어가자(...) 

  4. '데이트를 즐기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필요하다' 니까, 여유 있는 사람들이 쓰는 것에 비해서는 적은 비용인 것이 당연하다. 

  5. 데이트 비용 산정에 있어서 많은 분들이 영화 관람 비용 및 부대비용을 지적하며 한 번에 6만원은 순식간에 나온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런데 실제로 여기 담합 의혹이 있다! 팝콘 등 음식물도 마찬가지. 관객 대부분이 외부 음식 반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는데, 영화상영사에서는 쉬쉬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따지고 들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