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 작전. 영화 (2010) 중.

리들리 스콧 x 러셀 크로가 돌아왔습니다. 어제 개봉한 영화 이야깁니다. 가 개봉된 게 2000년 6월이니까 딱 10년 만이군요.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만, 어찌어찌 시간이 되어 오늘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자면, 영화에서 로빈 후드가 입고 나오는 갑옷이 재미있게 생겼더군요 - 예, 어찌어찌 기사 차림을 하게 되기 전까지 입던 갑옷 말입니다. 위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다른 인물들이 입고 나오는 갑옷들과는 사뭇 다르게 생겼습니다. 작은 철판을 이어서 만들었지요. 게다가, 어깨 부분하고 몸통 부분이 만들어져 있는 방식이 조금 다르지요. 궁금해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저 갑옷의 정체에 대해서 잠시 썰을 풀어 보려 합니다.

Scale Mail과 Lamellar Armor

어깨 부분과 같은 방식으로 만든 갑옷을 스케일 메일(Scale Mail, 혹은 Scale Armor)이라고 합니다. 이 갑옷은 위쪽에 작은 구멍이 뚫린 철판들을 이어서 만드는데, 덕분에 작은 철판들이 모인 모습이 흡사 물고기 비늘(Scale)처럼 보이게 됩니다. Scale Mail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 갑옷은 서유럽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발견됩니다. 물론 국가별로 스타일은 조금씩 다릅니다만 대체로 비슷한 방식으로 만듭니다. 한국에서는 어린갑(魚鱗甲)이라고 하는데, "물고기 비늘 모양 갑옷" 이라는 뜻이니 이 또한 기본적으로는 똑같은 의미인 셈입니다.

Scale Mail을 만드는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철판들을 가죽 끈 등으로 꿰어 옷에 연결하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옷에 직접 리벳rivet으로 박는 방식입니다. 어느 쪽이건, 얇은 옷에 하기는 힘들고 가죽옷처럼 튼튼한 재질의 옷 위에 만들게 됩니다.

고대 다키아Dacia의 Scale Mail. 고대 로마의 트리야누스 기념비에 새겨진 것. http://en.wikipedia.org/wiki/File:Dacian_Scale_Armour.JPG

이러한 형식의 갑옷은 중세 유럽에서 11세기 ~ 12세기에 걸쳐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당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체인 메일Chain Mail에 비해서는 그리 많이 쓰인 갑옷이 아닙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에 묘사된 Scale Mail. 노르망디 공작 기욤의 형인 추기경 Odo가 Scale Mail을 입고 있다.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Odo_bayeux_tapestry.png

반면, 몸체에 보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만든 갑옷은 러멜러 아머(Lamellar Armor)라고 합니다. 이 갑옷 역시 Scale Mail과 마찬가지로 작은 쇳조각(소찰小札)을 이어붙여서 만듭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Scale Mail처럼 쇳조각 위쪽에만 구멍이 뚫려 있는 게 아니라 위 아래에 모두 뚫려 있게 됩니다. 사진에서는 모두 여섯 개의 구멍이 뚫려 있군요. 역시 전세계적으로 만들어지는데, 한국어로는 찰갑(札甲)이라고 합니다.

통일 신라기의 찰갑. 소찰(小札)을 이었던 끈들은 삭아 없어지고 쇠로 만든 소찰들만 남았다.

조선 시대의 찰갑. 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 당시 입었던 것이다. 가죽 위에 옻칠을 했다.

둘 다 작은 쇳조각들을 모아서 만듭니다만, Scale Mail과 Lamellar Armor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일단 구멍 뚫는 방법이 다른 만큼 끈을 꿰는 방법도 다릅니다. 일단 Lamellar Armor 쪽이 좀 더 강력하게 고정되지요. 반면 Scale Mail은 약간 더 신축성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Scale Mail은 철판의 뒤에 천이나 가죽으로 된 안감이 있는 반면 Lamellar Armor는 이것이 없습니다.

그럼, 저 갑옷의 정체는?

그럼, 로빈 후드가 입고 나오는 갑옷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저건 서유럽 갑옷이 아닙니다. 이슬람 권에서 쓰이던 갑옷이지요. 영국을 포함한 서유럽에서는 기본적으로 Lamellar Armor를 쓰지 않을 뿐더러, Scale Mail도 많이 쓰는 편이 아닙니다 - 관련 사료가 가뭄에 콩나듯 할 정도;

영화에서 로빈 후드는 제 3차 십자군에 참전했던 것으로 나오니까, 거기서 이슬람식 갑옷 한 벌 얻었다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기야, 가난한 궁수가 비싼 갑옷을 구하는 방법은 전리품밖에 없겠죠.

참고문헌

David Edge, John Miles Paddock, , Crescent, 1993

David Nicolle and Christa Hook, , Osprey,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