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 had never made a city so flush. (지방이 하나의 도시를 그토록 윤택케 한 적은 없었다.)

- 데렉 톰슨 (Derek Thompson)

1.

수염고래(Bowhead whale)를 사냥하는 모습을 묘사한 판화. 1868년.

미국의 대문호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은 육지 생활에 염증을 느껴서 포경선을 탄 주인공이 거대한 고래와의 사투에서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앞부분을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이슈메일이 항구에 나가서 배들을 살펴보고 항해 계약을 하는 부분인데요, 쉽게 말해서 연봉 협상을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젊은이, 이름이 이슈메일이라고 했던가? 그럼 여기 서명하게. 자넨 300번 배당이 적당하겠어."

"이보게, 퀴퀘그. 자네에게 90번 배당을 주겠네. 낸터킷 출신 작살잡이 가운데 이렇게 많은 배당을 받은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야."

아마 이 부분을 읽으신 분들은 좀 특이하다는 걸 눈치채셨을 겁니다. 그냥 숫자만 덜렁 나오니까요. 심지어 숫자가 작을수록 좋은 대우를 받는 겁니다.

2.

이 장면을 이해하려면 19세기 미국 포경 산업의 수익 분배 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고래의 수염이나 뼈도 돈이 되기는 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고래의 지방을 해체해서 나오는 고래 기름이었습니다. 화학 산업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다보니 식용유, 조명유, 윤활유 할 것 없이 고래 기름을 썼거든요. 자연히 포경선의 목표는 고래를 사냥해서 해체한 뒤 최대한 많은 기름을 선창에 채워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이 아직 초기 국가이던 시절, 변변찮은 산업이 없던 와중이다보니 미국의 포경업은 단연 독보적인 산업이었습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미국 포경산업은 1816년부터 1850년 사이 대략 14배 정도(!) 성장했습니다. 1846년 미국이 보유한 포경선이 대략 640척이 넘었는데, 이 수치는 다른 나라들의 포경선을 전부 합친 것의 세 배가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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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뼈 - 뉴베드퍼드 포경 박물관 소장. 원래 미국 포경업은 매사추세츠 주의 낸터킷 항에서 시작되었지만, 선박이 대형화되면서 뉴베드퍼드 항구로 중심지가 옮겨 왔다. 낸터킷 항구의 얕은 수심이 대형 선박을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비 딕』에도 뉴베드퍼드가 더 크고 배도 많지만, 그래도 고래잡이의 본고장에서 배를 타고 싶어서 낸터킷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출처: flickr@leewrightonflickr)

수익 분배 방식도 특이했습니다. 정해진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고래 기름을 팔아서 나오는 수익의 일부를 배당금 형태로 받았거든요. 앞에서 '300번 배당' 이라는 말은 수익금의 1/300을 받는다는 의미인 겁니다.12 이러한 급진적인 방식은 지금 기준으로도 꽤나 생소하지만, 당시에는 거의 혁명적이다 못해 충격적인 방식이기까지 했습니다. 같은 시기 존재했던 동인도 회사와 같은 무역 회사들도 배 타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 회사들은 중간 관리자에게는 거의, 말단 선원에게는 전혀 지분이나 배당 같은 걸 준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유럽의 큰 무역 회사들도 이러고 있는데 이제 막 독립한 어린 국가의 포경선 선주들이 최첨단 수익 분배를 실행하고 있었던 겁니다. 『모비 딕』에 묘사된 건 그 일면이구요.

3.

영화 『하트 오브 더 씨 (2015)』. 1820년, 남태평양에서 조업 중 향유고래에 받혀 침몰한 에식스 호 사건을 소재로 했다. 에식스 호에는 원래 20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지만, 표류 끝에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1등 항해사 오웬 체이스를 포함한 8명 뿐이었다. 이 사건은 훗날 『모비 딕』의 소재가 됐다. (출처: imdb)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네요. 도대체 왜 저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가? 그냥 고정급을 주면 되는 게 아닌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런 기묘한 수익 분배 방식이 생긴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포경 산업은 틀림없이 고부가가치 산업이었습니다만, 극도로 불확실한 산업이기도 했습니다. 우선 상선과는 달리 항로 자체가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한 번 출항하면 선창에 고래 기름을 가득 채울 때까지 고래를 잡아야 하는데, 막상 어장에 고래가 충분치 않으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른 어장까지 가서라도 잡아서 채워 넣어야 했거든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세계 일주를 하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모비 딕』에서도 면접을 보러 온 주인공이 상선을 타본 적이 있다고 하자 선주인 펠레그 선장이 상선 얘기 따위는 집어치우라는 말을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인적 구성도 다양해서 항해사나 작살잡이 외에도 대장장이나 미장이, 목수 같은 다양한 전문가를 승선시켜야 했습니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조업에 큰 차질이 생겼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전세계를 돌아다녀야 하는 마당에 사람을 많이 태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많아봐야 20명 남짓한 선원들로 이 모든 일들을 처리해야 했던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몇 년에 걸친 항해기간 내내 열심히 일하게 하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지분을 주는 거죠. 포경선이 돈을 많이 벌면 선원도 그만큼 더 벌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급이 높아지면 그만큼 지분도 수직 상승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슈메일처럼 시작한 초심자일지라도 실력을 쌓아 작살잡이가 되면 퀴퀘그처럼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항해사나 선장처럼 엄청난 지분을 받을 수도 있었고, 펠레그 선장처럼 포경선의 지분을 챙겨서 은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원에게 이윤의 일부를 나눠주는 방식이 표준이 된 건, 단순히 당시 선주들이 사람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닌 것입니다.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지극히 자본주의적 동기의 자연스러운 결과였을 뿐이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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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경정 모형. 고래를 잡을 때 쓰는 빠른 보트로, 6~8인 가량이 몰았다. 위쪽에 보이는 돛대용 바늘이나 칼 손잡이는 고래 뼈로 만든 것이다. 영국 리즈, 로열 아머리 소장.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미국 포경산업을 연구한 학자들은 미국 포경산업의 융성을 이끈 요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듭니다. 적은 인원이 원양 포경선을 다룰 수 있도록 해 주는 기술적인 혁신과 선원 개개인에게 지분을 보장하는 운영 혁신이 바로 그것입니다. 흔히 눈에 보이는 전자에만 신경쓰기 쉽지만, 실제로 더 영향력이 강했던 것은 모험적인 자본과 인력을 집결시키고 관리하는 벤처 비즈니스의 모델을 제시한 후자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포경 산업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한때 미국의 대표 산업 중 하나였던 포경 산업은 이후 미국이 산업화되면서 철도나 철강 같은 기술 산업에 자리를 넘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포경 산업에서 시작된 미국식 비즈니스의 골격은 이후에도 남아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습니다: "소수의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팀으로 어렵고 모험적인 사업에 도전하여 높은 수익을 올린다. 전문가 각각에 일정량의 지분을 분배함으로써 리스크를 관리하고, 동기를 부여한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미국이 새로운 산업을 처음으로 개척해 나갈 때마다 빛을 발했습니다. 철도가 전 미국을 연결하든, 실험실에 있던 전기가 가정집까지 들어오든, 모두가 개인용 컴퓨팅 기기를 가지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세상이 오든 말이죠.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는 아직도 미국 포경업의 그늘 아래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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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Garage. 1976년, 이곳에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Apple I을 개발했다. 사진을 찍는 것은 자유지만, 개인 주택이기 때문에 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5.

"52시간에 막혀 A급개발자도 일못할판…연구소 해외로 옮길수도" (2021.07.21, 매일경제)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에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정부가 근로 시간에 관여하지 않는 게 원칙적으로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현실이죠.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한국에서 '스타트업'이라는 단어는 원래 의미와는 전혀 다른 뜻으로 변질된 지 오랩니다. 그 누구도 '스타트업'을 사전적 의미 - '최고의 전문가들이 최첨단의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모험 기업' - 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좋게 봐야 "IT 중소기업" 이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좀 힙한 ㅈ소" 정도로 이해하는 게 보통이죠. "훌륭한 기업가들도 많은데 너무 악의적으로 깎아내리는 게 아니냐"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그만큼 블랙 기업에 허울 좋은 스타트업이라는 포장지를 둘러 놓은 경우가 흔하다는 얘깁니다. 이 정도면, 스타트업의 특수성을 이해해 달라는 소리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죠. 설득력 같은 것이야 말할 것도 없구요.

내가 하고 싶은 소리가 전부 들어 있음.

하지만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열심히 고래잡이에 매진하던 포경선원들을 떠올리면,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군요: "세상을 바꿀 최신 기업가라 자칭하는 사람들이 200년 전보다 더 못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향유고래를 사냥하는 모습을 묘사한 판화. 1870년.

참고문헌


  1. 그렇다고 진짜 급여를 아예 안 주는 것은 아닌 게, 일단 선주가 배를 타는 선원에게 계약금조로 선금을 어느 정도 준 뒤 나중에 수익금을 분배받을 때 그만큼 공제하고 정산하는 식이었다고. 

  2.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차렸겠지만, 영어도 제대로 못 하는 작살잡이 퀴퀘그의 연봉이 미국인 초보 선원 이슈메일의 연봉의 3배가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