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초고왕>의 투구는 어느 시대 투구일까?

역사극 ‘근초고왕’ 타임머신 타고 만든다?

‘근초고왕’, 백제역사 고증의 비밀 ‘재미 쏠쏠’

드라마 의 한 장면. 왼쪽 인물이 차양주(미비부주)를 쓰고 있다.

드라마 의 한 장면입니다. 왼쪽 인물이 투구를 쓰고 있죠? 제작진이 “철저한 고증을 거쳐서 만들었다.” 고 자랑하던 바로 그 투구입니다.

사극의 소품에 투자를 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어쩌죠? 저 투구는 근초고왕 시절에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저 투구는 … 일제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차양주, 혹은 미비부주

사진에 나타난 투구를 차양주(遮陽胄), 혹은 미비부주(眉庇附胄)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차양(遮陽)이 달려 있는 투구(주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야구 모자를 생각하시면 되겠군요. 5세기 2/4분기경부터 등장하며, 현재까지 모두 4개의 유물이 전합니다.

경상북도 고령 지산동 출토. 드라마 제작진이 참고했다는 바로 그 투구다. 5~6세기 가야의 것으로 보인다. 목 보호대 부분은 부식되어 없어졌다.

위 사진이 실제 유물의 모습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투구는 기본적으로 가로로 놓여진 철판을 뼈대로 놓고, 약 50여 개의 작은 철판을 사이사이에 철못으로 연결해서 만듭니다. 이렇게 뼈대가 되는 철판 세 개를 위에서부터 각각 복판(伏板), 동권판(胴卷板), 요권판(腰卷板)이라고 합니다. 그 사이사이에 배치된 세로 철판들은 단지판(段地板)이라고 하지요. 복판 위에는 반구 모양의 꼭지가 달려 있는데, 이 외에는 이전에 소개했던 종장판주와 마찬가지로 장식대가 올라갑니다.

복원하면 전체적으로 대충 이런 모습이 됩니다.

역수입의 이유

왜 이 투구가 ‘일제’ 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차양주의 경우, 처음부터 그 양식이 상당히 완성된 상태로 나타납니다. 반면, 일본에서 발견되는 차양주는 그 발전 과정에 따라 상당히 많은 종류의 유물이 나타나며, 심지어 차양주의 형태가 아직 절반밖에 갖춰지지 않은 유물도 존재합니다.1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이 투구는 일본2에서 개발되어 발전하다가 한국으로 역수입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선진 철기 기술이 일본 내에서 발전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 애써 다른 나라의 투구를 수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엔 한국이 일본보다 뭐든지 앞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투구를 만들 기술이 모자라서 수입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투구가 고위 전사의 무덤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방의 작은 지배자나 고위 전사에 딸린 하급 전사의 무덤에서나 나오죠. 따라서 이 투구는 장례 의식을 위해 교역 상대국이었던 일본에서 사 왔거나, 군대의 장비를 보충하기 위해 구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드라마로 다시 돌아갈까요? 근초고왕은 백제의 13대 왕으로, 재위 연도는 AD 346 ~ AD 375 년입니다. 저 투구가 등장하기 적어도 50년도 더 전에 죽은 사람이라는 얘기죠. 게다가 근초고왕 시대의 일본에는 아직 철못과 같은 고도의 기술을 사용하는 집단은 있지도 않았습니다. 이건 당시엔 아직 한반도에서만 가능했던 기술이거든요.

뭐 얼마 전에 드라마를 보니까 조선시대 사인검이 소품으로 나오고 있더군요. 이것만 봐도 고증에 대해서는 제가 더 할 말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소품 투구에 장착되어 있는 정체 불명의 기둥들은 뭐란 말입니까 OTL

이 드라마에 대한 본격 역사 블로거 초록불님의 포스팅 링크: [[1](http://orumi.egloos.com/4481560)] [[2](http://orumi.egloos.com/4478983)] [[3](http://orumi.egloos.com/4479795)]

참고문헌

송계현, , 1988

: 차양주의 그림은 여기서 가져왔다.

小林謙一, , 2008

이현주, , 2010


  1. 그래서 일본의 박물관을 가면 차양주는 정말 많이 구경할 수 있다. 

  2. 정확히 말하면 일본 기나이(畿内) 지방. 

19 thoughts on “<근초고왕>의 투구는 어느 시대 투구일까?

  1. 첫번째 사진 왼쪽의 설형(혀모양)장식이 달린 차양투구를 보니 예전 e뮤지엄 차양투구 낚시가 생각나네요;; 고려시대 투구라는 e뮤지엄의 구설명에 낚여 파닥거리다. 국회도서관 갔다가 한국의 갑주 찾아보고. 번동아재님 말씀 듣고 한국의 갑주까지 샀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결론은 한국의 갑주를 사게 되어 다행입니다-0-;
    http://kyb0417.egloos.com/4104715
    http://kyb0417.egloos.com/4111482
    http://kyb0417.egloos.com/4116061

    • 하, 그런 식으로 낚시를 하다니 정말로 놀랍군요. 고려 시대 차양투구라니 OTL

      말이 나온 김에 고려시대의 갑주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저는 쇄자갑, 경번갑, 찰갑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단 앞의 두 개는 몽골제국 등에서도 썼던 것이니 당연히 썼을 것이고, 후자의 경우 동래성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찰갑과 삼국시대 찰갑의 소찰 투공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찰갑의 전통이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링크 주신 포스트에서도 언급하셨지만, 고증에 신경을 안 썼으면 썼지 제발 자기네 입으로 고증 잘했다고 말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듣는 사람이 더 민망한 일이에요.

    • 1. 뭐, 반지전쟁을 안 찍고 있다는 점에서 넘어가 줘야 하는 걸까요.
      2.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외로이 방구석에서 떨지 않는다능… 떠는 건 연애세포가 있는 겁쟁이들이나 하는 거라능(?).

      * 그리고 거기 이미 일치감치 안다능. :)

    • 너무 늦어버린 난 느림보라고요 -느림보, SG 워너비-

  2. 대륙백제 떡밥과는 별개로 갑주에 대한 고증은 꽤 괜찮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맹점이 있었군요. 그래도 역대 한국사극중에서 갑옷의 질감이나 미적감각은 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고어핀드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네요.

    아직 근초고왕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시작부터 저 환서해대백제부터 방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갈족이 글라이더를 타고 공중강습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나자 도저히 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

    • 갑옷의 미적 감각이라… 저 투구 앞에 세워 놓은 정체 불명의 다테모노 비슷한 걸 보니 입맛이 뚝 떨어지더라는… OTL..

  3. 지금까지 한 사극 중에는 가장 고증이 잘 된 편이죠!! 수입의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려러니 하고 있고 특히 고구려 갑옷은 정말 고증이 뛰어나다고 봅니다. 예전 사극에선 누가 고구려고 누가 백제고 누가 신라이고 누가 중국이고 그런 것을 구별하기 어려웠지만 이번 것은 딱 알겠더군요!! 그리고 일본의 기모노라던지 그런 복식의 원형은 백제에서 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제작진은 그것을 참고해서 한 것 같습니다.

    • 1. 제멋대로 섞여있는게 되려 고증에 더 맞죠. 좋은 물건은 퍼지게 마련이니까. 300년동안 엎치락 뒤치락 투닥투닥 했는데 서로에게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안 했으면 삼국의 군사기술이 남에게 영향을 줄 만큼 발달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좋은 걸 받아들일 줄도 모르는 멍청이들만 있었단 뜻이니깐요.
      2. 기모노는 당의가 건너가서 된 겁니다. 백제에서 건너간거라 쳐도, 백제는 그걸 어디서 배웠을까요? 벌써 7세기쯤 되면 왜도 백제를 통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견수사니 견당사니 하는 거 보내서 배워왔죠. 완성된 형태의 당의는 더 나중이고.

    • 1. 고구려 갑옷이 고증이 뛰어나다라… 도대체 어떤 갑옷이요?
      2. 기모노에 대해서는 역시 박하사탕님 덧글을 참조하시죠.

  4. 견당사니 뭐니 일본이 독자적으로 당과 교류했다고 하시는데
    그 당시 일본의 선박제조기술과 항해기술로 당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가다가 조난을 당했죠, 그래서 신라의 선박과 항해사들의 도움으로
    엔닌스님이 당까지 갔죠, 제가 역사스페셜 직접본거고요
    일본은 모두 신라를 통해서 당의 문물을 수입했지
    독자적으로 가진 못했거든요
    그리고 일본고대복식은 삼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일본 전통복식만드는 장인이 직접얘기한겁니다

  5. 그리고 지금 현재의 기모노는 바늘질이 하나도 안되어있는
    이불형태의 옷입니다.
    이 기모노가 탄생한 역사적사실을 본다면 아주 미개하기 그지없는
    옷이죠
    일본의 성씨들이 미개하듯이
    기모노도 미개한 옷입니다
    성적으로도 관련된 옷이죠
    빨리벗고 이불로쓰기위함이죠 여자들은 만나는 남자마다
    밭에서든지 성관계를 해야했거든요 이를 거부하면 남자들은
    여자들을 죽여도된다는 법까지 있었습니다

  6. 박하사탕님은 제대로 알지도못하면서 댓글쓰셨네요
    뭐 디죽박죽? 엎치락뒤치락? 투닥투닥?
    좋은것을 못 받아들이는 멍청이들이요? 어이없네요
    백제문화가 짬뽕이란소리도 들리고
    삼국은 약했고 삼국 문화는 짬뽕이고
    그게 바로 식민사학이죠
    어디 일본서기로 역사공부 하셨나요?

    • 선박 및 항해 기술 문제와 의복의 영향 문제는 엄연히 별개 문제입니다.

  7. 제가 모바일이라 답글달기가 없네요
    분명 박하사탕님이 견당사를 보내 일본이 당과 직접 교류했다고
    하는데, 틀린겁니다
    제가 인터넷으로 유투브 역사스페셜 링크 걸어드리죠
    그리고
    저 투구가 일본산이 아닌 백제것이라는
    뉴스가 2007년도에 나왔는데
    이건 뭔지 설명해 주실래요?

    • 반박을 할 때는 다큐멘터리나 뉴스가 아니라 서적이나 논문 자료를 제시하는 게 맞습니다.

    • 확인해 봤는데, ‘학계의 분석도 바뀌게 됐다’는 건 투구 얘기가 아니라 갑옷(횡장판갑) 얘기네요. 무엇보다 뉴스 자체가 기존 학계의 연구 성과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 견당사 역시 630년~894년에 걸쳐 파견되었는데,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통일 신라가 일본의 가상적국이었던 탓에 일본 조정은 신항로를 개척해야 했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제든 신라든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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