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5일 오후 4시
위트레흐트

1.

(출처: flickr@die_gabel)

78년 6월 발매된 타이토Taito의 업소용 비디오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는 지금으로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게임 산업의 역사에 있어서는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진다. <인베이더>는 현재의 비디오 게임에서 당연시되는 쌍방향성을 처음으로 도입한 게임이다. 인베이더 이전에도 비디오 게임 - 혹은 슈팅 게임 - 은 있었다. 다만 이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일방적으로 공격만 할 뿐, 상대가 공격해 오는 것은 아니었다. <인베이더>는 "외계인이 총을 쏘면서 공격해 온다." 는 룰을 추가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 "멍하니 손을 놓고 있으면 당한다." 는 생각에 정신없이 몰입한 것이다.

컨텐츠적인 관점에서도 혁신적이었지만 산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게임 산업의 규모가 급팽창하는 계기도 되었다. 이래저래 큰 의미를 가진 작품인 셈이다. 덕분에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다룬 책에서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빠지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2.

"인베이더 아티스트" 는 바로 그 인베이더 게임의 캐릭터를 소재로 작품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다. 유럽의 고풍스러운 건물이나 거리에 어느 날 갑자기 스페이스 인베이더 모양의 타일을 붙여 놓고 사라진다는 정체불명의 아티스트.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가 만들어 놓은 "작품"은 지극히 초현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옛 건물들과 기막힐 정도의 조화를 이룬다는점이다. 그래서 언뜻 보면 그저 오래 전부터 저기 있었겠거니... 싶어서 몰라보는 것도 허다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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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레흐트 우체국 앞에서 발견한 인베이더 아트.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위트레흐트 거리를 여유있게 걸어다니면서 구경하던 중, 동행한 친구가 엽서를 부칠 곳이 필요하다고 해서 잠시 우체국에 들렀다. 나는 우체국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밖에서 그냥 서서 기다렸는데, 갑자기 한 쪽에 기묘한 모양의 문양이 박혀 있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인베이더 아트였다.

망설임없이 사진에 담았다. 주변 환경과 얼마나 잘 조화되는 작품인지 말로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실물을 보고 나니 이해가 갔다.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본래부터 저기 있는 것인 줄 알았으리라.

3.

파리에 있다는 인베이더 아트. 별명과는 달리 스페이스 인베이더만 고집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게임도 인류 문명의 일부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도 문화적 유산이라는 점에서 보면 도시의 오래된 거리과 별로 다르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오래된 모습을 지닌 채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도 둘은 닮은꼴이다. 인베이더를 표현한 픽셀 그래픽은 비디오 게임의 상징이지만, 탄생한 지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100년도 더 된 거리의 벽돌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유럽의 오래된 거리는 기막히게 조화된 모습도 모습이지만 의미에 있어서도 은근히 잘 어울린다.

어쨌거나, 인베이더는 설정상 "우주로부터의 침입자" 다. 이 침입자들이 거대 도시들의 오래된 건물에 하나씩 "침입해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은 묘한 흥취를 준다. 이래저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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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Blackfriars 다리 남쪽에 있는 invader art.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