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 광신도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어차피 대부분의 기능은 안드로이드에서도 된다고요!!"

"님이 아무리 우겨도 안드로이드 점유율이 더 높거든요?"

이 친구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안드로이드와 기능적으로 별로 다르지도 않은 아이폰을 쓰는 건 어차피 돈낭비에 불과하고, 그런 아이폰을 사는 애플 사용자들은 비합리적인 사람들이며, 쓸데없이 비싸기만 한 제품을 만드는 애플은 오래 못 갈 거라는 거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건 그냥 헛소리다.

기능이 많다 = 더 좋다?

단위 구매자가 특정 플랫폼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능이 많아서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 혹시 주위에 기자들이 쓰는 휴대폰 보신 적 있으신지?

지금은 좀 줄었는데, 스마트폰 초기만 해도 아이폰하고 안드로이드 폰 둘 다 들고 다니는 기자들 많았다. 직무 특성상 통화 내용을 녹음해야 했는데 아이폰은 그게 안 됐거든. 그러니까 직무 특성상 안드로이드 폰을 무조건 쓸 수밖에 없었던 거다. "나는 아이폰이 더 좋은데요", "아이폰에 있는 이 앱 꼭 써야겠는데요" 라고? 그럼 선택의 여지가 없다 - 번호 두 개 개통해서 둘 다 쓰고 다니는 수밖에. 휴대폰 두 개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던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서다. 기능이 많냐 적냐 같은 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휴대폰만 그런 것도 아니다. 90년대 콘솔 게임기 전쟁 때도 비슷했다. 90년대 초 게임기 시장에서는 기존의 시장 지배자였던 Nintendo의 Nintendo 64와 새로 시장에 진입한 Sony Playstation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는데, 결국 드래곤 퀘스트 7과 파이널 판타지 7이 Playstation으로 나오면서 대세가 완전히 기울어져버린다. 이유? JRPG 양대 산맥인 드래곤 퀘스트하고 파이널 판타지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에게 'Playstation을 써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였거든. 이는 90년대에 맥킨토시가 Windows의 공세에 초토화되면서도 전멸을 모면한 이유이기도 하다 - 책 편집이나 디자인용 프로그램들이 매킨토시 쪽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DOS = Windows 쪽에 Excel이니 뭐니 프로그램이 많았다고 한들 디자인 하는 사람들이나 책 편집하는 사람들은 매킨토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는 이 프로그램들이 '매킨토시를 써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 였기 때문이다.12

물론 기능이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해지기는 하다. 기능이 많을수록 특정 소비자가 꼭 필요로 하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데다가 요구조건이 그냥 저냥인 상당수 소비자 입장에서는 같은 값이면 기능 많은 쪽을 사기 마련이니 (두 개 다 사려는 사람은 잘 없다) 타 플랫폼과의 경쟁에서는 유리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확률은 법칙이 아니니까.

광신도들의 착각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기능은 안드로이드에서도 된다' 같은 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는 대체재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관계고, 결정적으로 대부분의 기능이 있든 없든 따위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 같은 사람이야 아이폰 쓰다가 바로 안드로이드로 바꿔도 바로 적응하지만 (기계를 좋아해서 실제로 이렇게 쓴다.) 안드로이드의 조작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이폰에 딱히 좋아하는 앱이 없거나 비싼 가격이 불만이더라도 못 나간다. 자기에게 맞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게 아이폰을 써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물며 많은 앱들이 아이폰 우선, 안드로이드 나중에 나오는 식이라면...? 말이 필요없다.

그러니까 웬만한 것은 다 되는 안드로이드가 iOS의 시장을 위협할 수 없는 이유는 웬만한 것 다 되는 맥이 윈도우 시장을 위협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한 셈이다. 되기야 리눅스도 웬만한 건 다 된다. "안드로이드에서 웬만한 것은 다 된다" 는 말은 안드로이드가 시장 점유율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지, 아이폰 사용자가 멍청하다는 이유 또는 아이폰이 조만간 망해서 사라질 거라는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궁금하다. 이 친구들은 도대체 IT 산업에 대해 뭘 좀 알고 씨부리는 게 맞나? 그냥 애플 제품을 사 쓰면서 거들먹거리는 힙스터들에 대한 반감 더 나아가 애플에 대한 증오감에 눈이 멀어서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깎아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전 글에서 나는 애플빠들을 가리켜 "애플과 잡스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고 삼성 등 재벌 대기업을 깎아내리면 자기가 스마트한 인간이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근데 이건 애플빠들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안드로이드 광신도들도 "아이폰 쓰는 타인을 비합리적인 인간들로 깎아내리면 자기가 합리적인 인간이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나는 애플 편이냐 안드로이드 편이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특히 요 근래에 그런 질문을 더 자주 받는 것 같다. 내 대답은 이런 시답잖은 걸 가지고 싸워대는 게 병신같다는 것이다. 도대체 뭐 어떻게 살아왔길래 휴대폰에 자기 정체성을 얹어놓고 사냐.

이런 친구들을 위해 우리의 펠드란스 박사가 사자후를 예비하였다. 다시 봐도 정말 명작이다. (출처)

+1. 점유율 문제는 이야기할 가치도 없다. 이런 걸 가지고 자부심을 느끼고 싶냐?
+2. 정작 이런 소리 하고 있는 나는 HTC 넥서스 원부터 써왔다는 게 유우머. 심지어 나는 android 소스코드 뜯어보면서 Java 공부한 사람이다.


2014년 10월 22일 추가:

최근 발생하고 있는 텔레그램 이주 사태는 이 문제에 대한 교과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카톡이 텔레그램보다 훨씬 기능이 많고 심지어 전국민이 다 쓰고 있다시피 한데도 많은 사람들이 카톡을 버리고 텔레그램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왜 그렇겠나? 보안성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대부분의 기능' 따위는 전혀 고려사항이 되지 못했다.


  1.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사실이지만, 엑셀은 원래 매킨토시용으로 처음 나왔고(1985) 실제로 초기 매킨토시의 킬러 애플리케이션이었다. 다만 MS가 윈도우 95 출시에 맞춰서 매킨토시용 엑셀을 출시하지 않았는데, 이유야 뻔하다 - 엑셀을 써야 하는 소비자들은 매킨토시 말고 윈도우 쓰라는 거다. 실제로 엑셀이 윈도우를 써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되어버리면서 매킨토시 생태계는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매킨토시용 엑셀이 다시 나오게 된 건 개인용 컴퓨터 플랫폼이 MS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후의 일이다. 

  2. 사실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한데, 나는 신입생 때 배운 Ubuntu Linux에 락인되서 여태 못 나가고 있다(...) Big Data 개발이 본업이라 하드웨어가 빵빵한 Unix-like 운영체제를 써야 하는데, 그걸 생각하면 Windows는 진작에 못 쓰고, OSX는 비싼 데다 손에 익지도 않아서 딱히 매력이 없다. 여기까지 오면 쓸 수 있는 게 Linux,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desktop 기능이 잘 제공되는 Ubuntu 밖에 없다(...) 게임이고 뱅킹이고 죄다 포기해야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그게 나한테는 'Linux를 써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 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