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 왜 45세 정년이 될 수밖에 없는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 중 하나는 한국은 원천기술, 기반기술이 취약하고 응용기술만 발달했다는 것이다... 서글프게도 이 모습은 70, 80년대 공장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4년제 대졸자가 하던 수준의 일을, 이제는 대학원 나온 석사들이 한다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렇게 남의 것을 습득하는 것에 머무르다 보니, 실제로 머리를 써야 하는 것은 단순한 트릭 같은 것이다. 어떤 문제 상황이 주어졌을 때, 이것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가,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가, 일반해를 찾자면 어떻게 되는가, 더 좋은 방법은 없는가와 같은 고민은 전혀 하지 않은 채, 3일 내로 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면 툴에서 무슨 옵션을 써야 하는가와 같은 지극히 '실용적인' 문제로 치환하게 된다.
사실 이게 모든 악의 근원이다. 기술력의 부재. 원천기술의 부재. 단순히 뭔가를 뚝딱뚝딱 해서 돌아가는 것을 만들면 되기에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단순 작업을 하고. 그러다 보니 숙달되는데 시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어느 정도 하고 나면 누구나 다 비슷해진다. 그래서 개발을 10년 하면 전부 매니저 트랙으로 간다. 어떤 사람은 5년만에 모든 걸 깨우치고 매니징 능력을 갖추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7년이 걸리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10년 쯤 지나면 조금더 빨리 하고 아니고 정도만 차이가 나지, 다 비슷비슷한 실력을 갖추게 된다.
자, 그래서 이 과정에서 버티지 못하고 나온 사람은? 할 일이 없다. 중소기업에 가서 '매니저' 일을 계속 하거나, 치킨집 차리는 것이다. 딱히 대단한 기술이 필요없는 직종에서 이러는 것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문적인 기술, 특히나 기술집약적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은 그 기술집약이라는 것이 남의 것을 사와서 내가 이용하는 식의 '집약'이었기 때문이다.
java를 만들고, java를 더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던 사람은 어디 가든 쓸모가 있지만, java 응용 프로그램 중에서 어느 파트를 하나 맡아서, 이를 테면 클라이언트단에서 통신 프로그래밍을 주로 하던 사람은 그 기술이 도태되고, 새로운 기술이 사용될 때, 새로운 기술을 익힌 젊고 인건비가 싼 인력으로 대체된다. 기술 개발을 하는 사람은 '정년'이 없지만, 기술 이용을 하는 사람은 정년이 빨리 온다.
- 전문: #
- 2차 출처: 기술의 발전과 숙련공의 필요성
인상깊게 읽은 사람이 많은 모양인지 여기저기서 많이들 이야기하고 있는 글인데, 내가 이 글에서 하고 싶던 얘기가 전부 들어 있다. 흔히들 4X세가 되면 쫓아내는 한국 기업 야박하다, 부당하다고들 하는데 그런 소리나 하고 있으니까 짤릴 수밖에 없는 거라는 생각은 안 드나보다. 자기가 왜 경쟁력이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의 인력이면 당장 자르는 게 낫지 않나?
아래 글에서는 개인 단위의 경쟁력보다 조직 구조 측면에서 좀 더 파고드는데, 여기서도 거의 똑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미숙련 사원, 대리급에서는 언제나 조직내 수요가 공급보다 크다. 즉, 데리고 일하고 싶어도 사원, 대리는 늘 부족하다. 따라서, 어느 조직에서든 이 때가 상대적으로 행복하다. 이 상태는 대략 과장 초반까지 이어진다... 대략 45세에 부장쯤 되면, 팀제가 아니라 어떤 조직 구조로도 조직에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당한 자리를 나눠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때부터 조직은 본격적으로 이들에게 가혹하게 굴게 된다. 여기서 이직해봐야 받아줄 만한 곳이 별로 없다. 다른 조직도 마찬가지니까.
문제는 이런 현실을 당사자가 잉여인간이 된 다음에 깨닫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체류연한만 채우면 자동으로 되던 진급이었다. 요새는 과장 되기도 마냥 쉽지는 않고, 차/부장은 여러 차례 밀리는 일도 많다. 단순하게 진급의 문제가 아닌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대책은 두 가지다. 끝까지 삼각형 내부에 남아있는 것과 아예 떠나는 것이다. 방석 차지하기 게임에서 이기든지, 다른 게임으로 바꾸라는 얘기다. 두 경우 모두에 있어 관건은 경쟁력이다.
자기 분야에서 기본을 갖추되, 관련 분야 하나쯤에서는 두각을 보일 수 있는 사람. 너무 어려운가? 쉽지 않으니까 대체불가한 것이다. 안정된 직업생활을 누리고 싶다면, '대체불가'를 추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