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7일 오후 1시

영국 포츠머스

1.

전쟁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영국의 이순신 호레이쇼 넬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국의 군신 호레이쇼 넬슨, 그는 1758년 9월29일 노포크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불과 열두살의 나이로 해군에 입대한 그는, 20세 때 영국 해군사상 최연소로 프리깃함의 함장이 된다.

그 뒤 10년여간 주로 서인도 제도에서 근무했으며, 1793년 프랑스 혁명전쟁이 발발하자 지중해 함대로 전근, 다시 10여년을 프랑스 군 그리고 나폴레옹과 싸우는 데 보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오른쪽 눈(코르시카 칼비 상륙작전), 오른쪽 팔(산타크루즈 점령전)을 잃는 등 큰 부상을 당했으나, 많은 공을 세워 기사 작위를 받고 해군소장으로 승진했다.

그와 나폴레옹의 대결은 1798년부터 시작되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전쟁의 주된 적인 영국의 자원 보급력을 악화시키기 위해 인도로의 루트를 뚫고자 했고, 이를 위한 이집트 원정을 프랑스 총재정부에 건의하여 허락을 받아낸다. 자연히 지중해 함대를 이끌던 넬슨에게는 나폴레옹을 비롯한 프랑스 지상군을 수송하는 프랑스 함대를 없애버려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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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 호의 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로 영국 지중해 함대는 나폴레옹을 놓쳤지만, 넬슨은 이집트까지 쫓아가 지상군을 상륙시키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프랑스 함대를 기습했다. 아부키르 만에서 벌어진 이 해전에서 영국군은 프랑스 군함 13척 중 11척을 나포하거나 격침시키고 프랑스의 지중해 함대를 격멸한다. 이른바 아부키르 해전이며, 이 싸움으로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해전에서 프랑스 군의 전사자만 9천 명에 이르렀다.

3년 후 넬슨은 해군 중장으로 승진, 발틱 함대의 부사령관으로 프랑스의 동맹 덴마크 해군과 전투를 벌여 또 크게 이긴다.

그리고 1805년 10월21일, 넬슨이 지휘하는 27척의 영국 함대는 트라팔가르 곶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프랑스 - 스페인의 연합함대 33척을 맞아 18척을 나포 혹은 격침시키고 단 한척의 손실도 입지 않는 대기록을 세운다. 이날 죽음으로 승리를 이끈 넬슨의 기함이 바로 Victory 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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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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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1571년 베네치아/스페인 연합함대가 레판토에서 오스만 투르크의 함대를 격파한 이후 해군전술은 대포를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포라는 것이 배 옆면에 실리는 것이다보니 전투에서 배의 대열을 유지하는 것이 엄청나게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으며, 서로 맞보고 쏘아대니 자연히 전과도 보잘것이 없었다.

이리하여 영국 해군은 새로운 전술을 개발한다. 일단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장악한 뒤, 비스듬한 대열을 짜고 적진을 덮친다. 그리고 선봉이 적의 대열을 쪼갠 다음 뒤돌아서 적함을 공격한다. 바람을 안고 공격하면 적이 도주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ㄷ자 모양의 진에 갇힌 적선은 죽도록 대포를 두들겨 맞다가 격침되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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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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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대포를 닦는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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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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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까지 대포가 올라와 있다. 사실 갑판에서는 해병들이 총도 쏜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3.

전쟁사적인 가치가 큰 전투장비들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당시 수병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 잘 복원되어 있는 것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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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병용 침상. 일반 수병용 해먹과는 달리 좀 더 높은 곳에 설치한다. 공기도 좀 더 좋고 볕도 잘 들어왔기 때문이지만, 병이 옮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었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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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병들의 먹거리를 장만하는 주방.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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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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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품병들이 늘어놓아져 있는 이물쪽의 응급실. 넬슨 역시 이 근처에서 숨졌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호레이쇼 넬슨은 적진을 뚫고 들어가는 최신 전술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용감한 장군이었다. 나폴레옹은 영국 해군의 해상봉쇄를 뚫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이를 알아챈 넬슨은 오히려 툴롱 항구의 해상봉쇄를 돌파한 프랑스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그들을 대양으로 유인했다. 결국 프랑스 스페인 연합함대는 이베리아 반도 남서쪽의 트라팔가르 만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4.

범선 시대 최후의 대해전인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승리함으로서 영국은 19세기 내내 바다를 장악했다. 이것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 제국의 영광을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빅토리 호의 넬슨이 죽어간 자리에는 "호레이쇼 넬슨, 여기 잠들다" 라고 새겨져 있었다. 영국의 다른 박물관이나 기념관들은 모두 개인 용도의 사진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지만, 여기만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영국인들에게 있어 이곳만한 성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에 체류하는 동안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넬슨의 동상을 볼 수 있었다. 넬슨은 영국인들의 자부심 그 자체라고 할 만했다. 현재 그는 영국의 유명 인사들이 묻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웰링턴과 함께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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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