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몰락의 시작, 콜트레이크 전투(Battle of Kortrijk, Battle of the Golden Spurs) #4

플랑드르 군대

플랑드르 군대의 주축은 브뤼주 등의 도시에서 동원된 직공들이었으며, 이들은 대략 다음과 같이 편성되었다.

  • 브뤼주 시의 민병대 3000 명(지휘: William of Jülich).

  • 브뤼주 교외와 해안 지역의 민병대 2500 명(Guy of Namur)

  • 동 플랑드르의 민병대 2500명(John Borluut)

  • 이프르Ypres의 민병대 500명(John of Renesse)

여기에 약 친 백작파 귀족 400여 명이 가세했다. 하지만 이들의 전력은 프랑스 군의 엄청난 기사들에게 도저히 미치지 못해, 이들은 말을 타지 않은 보병 기사Foot Knight로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프랑스 군대

로베르의 문장

아르투아 백작 로베르 Robert d’Artois, Count of Artois가 지휘하는 프랑스 국왕의 원정군은 당시 기준으로 최강의 군대라고 할 수 있었다. 숫자로는 대략 6500명으로 9500명 가량의 플랑드르 군대보다 적었지만, 추가로 대략 2500여 명에 달하는 견습 기사들이 있다는 점, 그리고 당시 “기사 1명은 보병 10명에 맞먹는다.” 는 군사 격언이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플랑드르 군대보다 모자라지 않았다 – 아니, 오히려 플랑드르 군대를 압도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 기사 2500명( + 비슷한 숫자의 견습 기사)

  • 석궁수Crossbowman 1000명

  • 장창병Pikeman 1000명

  • 경보병Light Infantry 2000명

포진

7월 8일 콜트레이크에 도착한 프랑스 군은 콜트레이크 남쪽에 숙영지를 설치한다. 플랑드르 군대는 콜트레이크 북쪽에 포진하고 프랑스 군과 노려보게 되었는데, 프랑스 군은 군대를 내보내 콜트레이크 시를 “찔러” 보았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어, 콜트레이크 시 동쪽에 위치한 평원에서 플랑드르 군을 먼저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프랑스 군의 일부 기사들은 전장이 말을 타고 돌격을 가하기가 어려운 지형임을 들어 플랑드르 군대가 먼저 공격해 오도록 유도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작전 회의에서 묵살되었다. 프랑스 군은 아무도 자신들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상대는 기사 전력도 없는 민병대였으니까.

1302년 7월 11일, 양군은 콜트레이크 시 동쪽 평원에 포진을 완료했다. 플랑드르 군은 콜트레이크 시와 요새를 오른쪽에 둔 채로 북쪽에, 프랑스 군은 그 남쪽에 자리잡았다. 플랑드르 군 입장에서는 요새에서 농성중인 프랑스 군이 달려나와 후미를 습격하게 해서는 안되었기 때문에, 이프르 시의 민병대는 예비대로 후방에 남기고 나머지 군대만을 포진시켰다.

전투 직전, 플랑드르 군 병사들에게는 “현 위치를 절대 고수할 것이며, 포로 또한 잡지 말 것” 이라는 지시가 하달되었다. 사실 기병 전력이 없으니 현 위치에서 수비만 하라는 것은 그렇다손 쳐도, 포로를 잡지 말라는 명령은 상당히 이상한 명령이었다. 당시엔 포로의 몸값을 챙기는 것이 전쟁에서의 큰 수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사들이 사용하던 철제 박차(spur). 잉글랜드제이며 14-15세기경의 물건으로 여겨진다. 플랑드르 군 지휘부가 내린 지시는 직역하자면 “박차를 찬 사람은 전부 죽여라.” 였다.

하지만 포로란 전투 도중에 번거롭고 귀찮다. 뿐만 아니라 기사 전력도 없는 플랑드르 군 입장에서는 어차피 쥐가 고양이를 무는 판국이라 몸값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전투개시

전투는 전형적인 중세식 전투방식 그대로 석궁수들이 서로 사격을 가한 뒤 양군이 충돌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다만 이 경우엔 플랑드르 군대는 돌격시킬 기사들이 없어서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프랑스 기병들 – 혹은 당대의 기병들이 전술에 무지하여 “닭치고 돌격” 만을 고집했다는 것은 상당히 와전된 말이다. 그들은 기병돌격을 아주 선호했지만 대열이 무너지는 사태 역시 충분히 염려하고 있었기에 전투에 들어갈 때 오랬동안 대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곤 했다.

문제는 양군의 사이에 위치한 작은 개천이었다. 3미터 폭의 야트막한 개천에 불과했지만 이곳을 통과하면서 꼼꼼한 대열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었다. 게다가 개천에서 별로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플랑드르 군이 포진하고 있었다.

기사의 가장 큰 힘은 엄청난 속도를 이용한 충격력이다. 뒤집어 말하면, 기사가 충분한 속도를 낼 만한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충격력은 그만큼 반감된다.(∵운동에너지 = 0.5 x 질량 x 속도 ^ 2)

그리고 가장 먼저 공격을 시작한 프랑스 군의 좌익이 딱 그 꼴이었다. 개천을 건너면서 대열이 어지러워진 그들을 맞은 것은 8열로 빈틈없이 정렬된 플랑드르 민병대들이었다. 돌격할 만큼 충분한 거리도 없이 곧장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