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문대 내년 전공지원 받아보니...

광운대 국문과 폐지 논란

1.

고대 그리스에서 교육의 목적은 그대로 지덕체를 갖춘 훌륭한 자유시민을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히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기르기 위한 철학· 기하학과 아름다운 몸을 가꾸기 위한 체육활동이 장려되었죠. 반면 실용적인 학문은 그리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숫자를 가지고 하는 계산 같은 건 천한 노예들이나 하는 일이었죠. 이들에게는 당연히 일반 시민과 같은 교육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그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중세 유럽의 교육 목적은 게르만 야만족들의 지배로 사라져 버린 고대 그리스· 로마의 이상 사회를 부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자연히 대학 교육도 고대 그리스· 로마의 철학이나 기하학, 고전 문학 등을 아주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중세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서양 인문학의 전통은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쌓아올려진 것입니다. 프랑스의 대학 입시에서 철학적인 논제를 주고 그것에 대해 논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생긴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확신 때문인 겁니다.

한국에서도 출판된 바칼로레아 답안집

2.

그런데 우리나라나 일본은? 사정이 다르죠.

전통적으로 이 나라들에서 인문학이라는 것은 유학이었습니다. 정치논리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인문학이 (좀 과장해서) 출세를 위한 도구, 혹은 양반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놀이개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뭐 중세 유럽의 신학도 출세를 위한 것임에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동네는 성직자로 출세하는 것 말고도 상인이든 기사든, 이런저런 출세 방법이 많았습니다.

근대 이후에는 국가적인 신식 고급 관료나 교사, 장교를 양성하기 위한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대학 교육의 목적이란 이러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도쿄 대학교는 처음부터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유럽의 대학처럼 인문학과 같은 기초교양 교육에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자연히 도쿄 제국 대학 경성분교에서 출발한 서울대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질 않습니다.

한국· 일본의 대학과 유럽 대학의 차이점은 이 책에 자세히 나옴돠...

이쯤 되고 보면 사람들은 인문학의 가치를 모릅니다. 철학이나 역사 같은 것은 그저 한가한 잡담 정도로밖에는 안 보이겠죠. 일본 우익 작가가 카이사르 동인지처럼 써제낀 웃기는 책이 훌륭한 역사서로 만인에게 인정되는 코메디는 이러한 환경에서 가능한 겁니다.

3.

70~80년대까지 서울대 인문대에 사람이 충분히 몰렸던 것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바로 거기가 서울대였기 때문입니다. 일단 서울대만 나오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되는 마당이라 연세대학교 꼴찌 입학이 고려대학교 수석보다 점수가 나은 게 당연하던 시대였기에, 대학은 간판 따러 들어가고 진짜 공부하려는 건 대학원 가서 공부하는 경우가 수두룩했습니다.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도 학부는 고려대 생물학과 나온 사람입니다.

반면 지금의 한국인들은 훨씬 합리적입니다. 기업은 대학 좋은 데 나온 사람보다 직업적으로 관련된 분야를 공부한 사람들을 원합니다. 이 마당에 출세하는 데 도움도 안되고 관심도 없는 인문학 따위를 누가 하려 들겠어요?

4.

개인적으로 역사나 철학 쪽에 쥐꼬리 다섯 개 만한 관심은 있어서 인문학 수업도 좀 들었고, 방에 책도 좀 있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을 살리겠다고 세금을 쓰는 건 아무리 봐도 밑빠진 독에 물 붇기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같습니다. 뭔가 획기적인 전기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 모르겠는데, 이런 건 사람이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넌 컴퓨터 만지작거리는 거하고 장사하는 거 공부했으니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 아냐?" 예,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옛 말에 "개는 주인을 위해 짖고 사람은 배운 대로 떠드나니" 라고 했으니, 이상할 것은 없겠죠.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현실이라는 건 생각보다 훨씬 참혹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