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면 너도 땅투기 하든가

<마린블루스 11월 5일자>

요새 서점에 가면 책 제목들이…

집투기, 땅투기 안하는 사람은 아주 바보 취급 -_-;;

부디 나중에 꿋꿋하게 자기일만 해 온 사람들,

바보 만들지 말아주시길

0.

간만에 마린블루스에 들어갔다가 기분 잡쳤습니다. 아무리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지만 이따위 만화가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진다는 걸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군요. 안 그래도 마린블루스 점점 재미없어지는 것 같아 좀 서운했는데.

정말 베짱이 군은 비난받아야 하나요?

1.

베짱이 군의 부모님은 베짱이 군에게 집을 사주었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건가요? 베짱이 군의 부모님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주택 구입자금을 댔다던가, 자식에게로의 증여 과정에서 탈세를 했다면 비난을 받고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난할 수 없죠. 합법적인 구입 및 증여이니까요.

“누군 좋은 부모 만나서 편하게 살고, 누군 돈 없는 부모 만나서 힘들게 살아야 하냐?” 고 반문할 수도 있겠는데, 신세 한탄은 혼자 술 마시면서 하든지, 힘든 운명을 점지해 준 삼신할망을 탓하면 될 일입니다. 사람이 타고 난 팔자, 그게 도대체 그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나요? 누군 부잣집에 태어나 탱자탱자 노는 친구들 보면 안 억울한 줄 아십니까?

정 그렇게 억울하면, 상속세 비율을 콱 높이자고 주장하면 될 일입니다. 하기야, 전세계에서 최저 수준인 상속세를 유지하고 있는 대통령이 저 나라 국민에게 빨갱이 취급받는 나라니 가능성은 거의 0%겠지만 말입니다.

2.

이 만화가 사람 어이를 빼놓는 두 번째 이유는 경제학적 무식입니다.

베짱이 군의 집은 틀림없이 가격이 3억이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시세일 뿐입니다. 가격이야 어찌되었든 베짱이 군이 가지고 있는 건 집일 뿐이라는 얘기죠. 베짱이 군이 집을 팔아서 시세 차익을 챙기지 않는 한 그건 엄연히 손에 들어온 소득이 아니란 겁니다.

만화에서는 베짱이 군이 놀면서 당장 3억을 손에 쥔 것처럼 묘사하는데 웃기는 소리죠. 이건 당장이라도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끝이라니까요. 다시 말하지만 베짱이 군이 가진 자산은 엄연히 집 한 채일 뿐입니다.

이 만화는 자산과 자산의 현금 평가를 헷갈리고 있는 거죠.

3.

“어쨌든 열심히 일한 사람보다 가만히 노는 사람이 돈을 더 버는 건 옳지 못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이것도 한심한 착각이죠.

의외로 많은 한국인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모은 노동소득만이 깨끗하고 정당한 소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보다 주식을 해서 재산을 증식할 것을 권한다.” 며 스스로 앞장서서 적립식 펀드를 가입하자, 청와대 블로그에 “대통령 재임중에 재산을 늘리다니, 부정한 소득이다!!” 혹은 “주식이나 부동산이나 투기고, 정당하지 못한 소득임에는 틀림이 없다.” 는 비난이 빗발쳤었죠.

집을 산 사람도 엄연히 투자가치가 유망한 부동산을 사기 위해 이리저리 발품도 팔고, 공들여 교섭도 했을 겁니다. 이건 노력이 아닌가요? 이러한 노력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 것보다 열등하다고 할 수 있나요? 아니잖아요?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자본을 통해서 얻는 소득이 마음에 안 든다면,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공산 국가로 가세요. 자본에 의한 소득을 긍정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떠나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4.

성게군은 “책 제목들이 집투기, 땅투기 안하는 사람은 아주 바보 취급한다.” 고 했는데, 서점을 집처럼 들락거리는 전 “집투기 안 하면 넌 바보다!!” 하는 류의 책 제목을 본 적이 없군요. 못 봐서라구요? 글쎄요, 제가 보는 책의 3~40% 정도가 경제· 경영 서적인데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군요.

사람들이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면 거기에 관련된 책이 쏟아져나오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게 과연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걸까요? 정말?

“부디 나중에 꿋꿋하게 자기일만 해 온 사람들, 바보 만들지 말아주시길” 이라고도 했는데, 이건 도대체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르겠군요. 부동산 가격은 누군가가 “오늘부터 부동산 가격을 올려라.” 고 해서 올라가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집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과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편승해서 돈 벌어보고 싶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가격이 오르는 것일 뿐이죠.

가격이 오르는 걸 보고 “어, 저거 사면 나중에 돈 되겠네.” 하는 사람들이 더 몰려들면 수요가 늘어서 또 가격이 오르는 겁니다. 그걸 보고 또 몰려들 사람들 있겠죠. 튤립 구근이든 부동산이든, 투기의 매커니즘은 항상 이런 식입니다.

5.

못해 먹겠다? 억울하면 때려치우면 될 것 아닙니까?

이따위 용공 만화 그리지 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