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와 세계관의 정합성

1.

인기 만화 <데스노트>가 드디어 완결을 맞았습니다. 뭐 일본에서는 완결난지 이미 한참 전이고 일본어판을 번역한 스캔본이 나돌기도 했으니 저보다 훨씬 일찍 키라의 최후를 지켜보신 분들도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전 한국어판이 나올 때까지 걍 기다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누구나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는 만화가 나온 건 꽤나 오랜만의 일인 것 같습니다. <아즈망가 대왕>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군요.

2.

현대 판타지 소설의 대부로 알려진 J.R.R 톨킨은 1938년 On Fairy Tales란 제목 아래 행해진 강연에서, 판타지가 충족해야만 할 조건으로 “현실 세계의 법칙과는 전혀 다르지만, 각 요소가 모순 없이 아귀가 들어맞는 법칙을 지녀야 한다.” 고 밝히고 있습니다. 비슷한 관점에서 <미사고의 숲>의 작가 로버트 홀드스톡은 “주인공이 궁지에 몰릴 때, 모자에서 마법의 토끼가 끝없이 나온다면 그건 가치 없는작품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죠.

판타지는 틀림없이 현실과는 다른 어느 세계의 이야기이지만, 상상의 세계랍시고 마구 썰을 풀어대다가는 극적인 긴장감이 없어지고 유치찬란해지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조롱하는 말로 “기계 장치의 신(Deus ex Machina)” 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주인공이 처한 위기상황이 점점 더 복잡해질 때 갑자기 무대장치로 신(神)이 등장하여 절대적인 힘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버리는 이야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어느 나라 왕자가 소금산으로 소금을 얻으러 떠났는데, 막상 소금산에 가니 설정상 그 왕자가 졸라 대단한 인물이어서 아무 문제 없이 소금을 얻어왔다 – 뭐 이런 김빠지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 음, 특정 드라마 결국 또 까게 되는군요. -.-;;)

어쨌든 잘 짜여진 판타지의 세계는 그 성립 요건으로서 “확실하게 정립된 일관된 법칙” 을 요구합니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중간계의 일관적인 법칙은 “절대 반지를 소유한 이는 남들 앞에서 모습을 감출 수 있으며, 암흑의 제왕 사우론의 힘을 소유할 수 있다” 로 정말 단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반지에 얽힌 온갖 인간들의 풍성풍성한 이야기가 덧붙으면서 20세기 영미 문학의 최고 걸작에 이른 거죠.

3.

<데스노트>의 매력은 아마도 이러한 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데스노트>의 세계는 현실 세계와 거의 똑같은 세계입니다만, “얼굴과 이름을 알면 노트에 이름을 적어서 죽일 수 있다.” 라는 점이 다릅니다. 거기에 노트를 사용하는 각종 활용 방법들, L 일당과 야가미 라이토와의 머리싸움이 얽혀들면서 흥미진진함을 유발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 법칙에 얽혀든 사람마다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히지 않기 위해 얼굴이 보이는 걸 피한다던지, 사신의 눈을 빌린다던지 하면서 백인백색의 반응을 보이지요. (개인적으로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키라 혐의를 피해버린 야가미 라이토가 기억이 돌아오면서 L을 골로 보내버릴 때가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

묘하게 귀여웠던 이 고스 스타일 아가씨. 부두교스러운 액세서리를 하고 다니면서도 밝고 깜찍한 처자라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현실엔 이런 처자 어디 없나… ( –)

생각해 보면 소싯적에 침을 질질 흘려가며 보던 <드래곤 볼>도 이러한 점에서는 마찬가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드래곤 볼> 세계의 가장 핵심적인 법칙은 바로 “7개의 드래곤 볼을 모으면 용신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 일 겁니다. 초반에는 저열한 성적 코미디였다가 전투 만화로 성격을 급반전시키기는 했지만, <드래곤 볼>의 세계는 어쨌든 그 법칙 아래에서 움직입니다.

4.

다시 판타지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이런저런 판타지 물이 발에 채일 만큼 쏟아져나오는 오늘날이건만, “일관된 법칙”을 지닌 판타지는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개성 있는 “법칙” 을 들고 나와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것이 부족한 것도 한 이유이거니와 거창한 설정( = 법칙)을 만들어놓고 그 설정을 제대로 써먹지를 못하는 것이 주된 원인인 것 같습니다.

판타지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현실에는 없는, 허구의”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뒤집어 말하면 신기한 것을 보여 줄 수 없다면 그 순간부터 판타지라는 타이틀은 내려놓아야 정상입니다. 프로그램 못 짜는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래머 타이틀을 포기해야 하듯이.

이런 식으로 놓고 보면 “판타지는 많은데, 정작 판타지는 없다.” 가 지금의 현실인 겁니다. 먼치킨같은 주인공이 졸라 짱쎈 드래곤을 마구 잡아대고 오크가 도끼들고 당당당 돌아다닌다고 해서 과연 그것이 판타지일까요? 오크니 엘프니 하는 소재들은 하도 오래 본 소재인지라 친근하면 친근했지 하나도 신기하지도, 흥미롭지도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젠, 제발 이런 거 좀 그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허구헌날 삼각관계에 고부 갈등만 줄창 반복하는 아줌마 드라마도 아니고.

5.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작품의 세계관에 대해 설정자료를 준비하는 (예비)크리에이터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설정 자료는 사용하라고 있다는 것, 단순 명확한 세계관으로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걸 결코 잊지 않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개인적 만족에 불과한 설정을 마구 찍어낸다면 그건 차라리 자위행위에 가깝지 작품이라고 하기엔 어렵겠지요. 오크도 엘프도 등장하지 않지만 <데스노트>는 훌륭한 판타지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지 않습니까.

좌우당간 <데스노트>는 끝났습니다. 앞으로는 또다른 법칙을 재치 있게 끌고간 작품이 또 절 즐겁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데스노트>가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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