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수요일에 멀티라이터님하고 만나서 이야기하다 생각난 이야기 몇 토막 슥슥.

episode 1.

조선 선비 1: 저 형, 질문이 있는데요.

조선 선비 2: 응?

조선 선비 1: 북경 서점거리에는 없는 책이 없다면서요? 덕분에 청나라 가는 사신들한테 책 사달라고 쥐어주는 돈도 많다던데.

조선 선비 2: 우리나라에는 책 시장에는 그런 책들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논어 같은 책이 머리만큼 팔린다면 그런 책은 꼬리만큼도 안 팔릴 걸. 몇 명이나 본다고 책장수들이 그런 책을 갖다놓겠나?1

조선 선비 1: 그래도 책 읽고 싶다는 선비들이 갈수록 많아질 테니 언젠가는 시장도 커지고, 책장수들도 그런 책들을 갖다놓지 않을까요.

조선 선비 2: 그 정도 열정이 있는 선비들은 그 전에 벌써 청나라 가는 사신들에게 돈 쥐어줬겠지. 그런데 어떻게 시장이 커져?

episode 2.

컴공돌이 1: 저 형, 질문이 있는데요.

컴공돌이 2: 응?

컴공돌이 1: 컴파일러 책 같은 건 한국어판이 없다면서요? 덕분에 고수들은 죄다 원서를 사서 본다는데.

컴공돌이 2: 우리나라에는 서점에 그런 책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롱테일로 치면 꼬리 끝에나 붙어 있을 책들인걸. 출판사들이 팔리지도 않을 책을 뭐하러 번역하겠어? 죽어라 번역해놔도 초판 겨우 파는 판인데.

컴공돌이 1: 그래도 그런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질 테니 언젠가는 시장도 커지고, 출판사들도 그런 책들을 번역해 내놓지 않을까요.

컴공돌이 2: 그 정도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그 전에 벌써 아마존에 주문 넣었다. 그런데 어떻게 독자층이 넓어져?

episode 3.

게이머 1: 저 형, 질문이 있는데요.

게이머 2: 응?

게이머 1: 콘솔 게임들은 왜 NDS 히트작 정도 빼면 한글화가 안 되서 나오는 걸까요? 게임성이 훌륭한 게임이 한글화되어 나오면 좋을텐데.

게이머 2: 우리나라에서 그런 게임 찾는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다 복사 쓰니까 시장도 손바닥만하잖아? 소니나 마소가 팔리지도 않을 게임 뭐하러 번역하겠어?

게이머 1: 그래도 우리말로 편하게 게임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질 테니 언젠가는 시장도 커지고, 웬만하면 한글화되서 나오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만큼 불법 복제도 줄 거고.

게이머 2: 그 정도 열정이 있는 게이머들은 그 전에 벌써 구매대행 했던지, 일본 가는 사람한테 돈 쥐어줬겠지. 그런데 어떻게 게이머가 늘어?

episode 4.

네티즌 1: 저 형, 질문이 있는데요.

네티즌 2: 응?

네티즌 1: 영어 위키피디아에는 없는 게 없다면서요? 일본어도 그렇고. 우리나라 위키피디아는 파리만 날리는데.

네티즌 2: 위키피디아 보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대부분 네이버 연예기사에 리플 달고 있지 그런 디테일한 지식을 찾는 사람이 몇이나 있어. 이용자가 없으니 글쓸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악순환이지.

네티즌 1: 그래도 한국어로 각종 정보를 편하게 찾아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테니 언젠가 한국 위키피디아도 이용자가 많아지고, 내용도 풍부해지지 않을까요.

네티즌 2: 글쎄, 그럴까? 위키피디아에 글 쓸 정도의 고수들은 그 전에 벌써 영문판이나 일문판 찾아보고 땡일껄? 그런데 이용자가 늘까?

Q: 왜 Game Programming Gems는 5권까지만 번역되고 더이상 안 나와요?
A: 그거 공부하는 게임 프로그래머가 몇 명이나 있겠어요? 진짜 보겠다는 사람들은 아마존에서 원서 사다 봤을걸요?

Q: 왜 외국 역사책은 우리나라에 번역 안되요?
A: 그거 보는 역사 덕후가 몇이나 있겠어요? 오스프리 한국어판도 번역되서 나왔는데 잘 안 팔려요. 진짜 보겠다는 애들은 아마존 재팬에서 신기원사 책 뒤지고 있을걸요?

Q: 왜 한국 블로고스피어에서는 맨날 똑같은 떡밥으로 싸우고 서로 트랙백 쏘고 찌질거려요? 외국 블로고스피어는 정보도 많고, 완전 신문이더만.
A: 한국 네티즌들 본래 그래요. 한국어 블로그에 괜찮은 정보 올려 줄 애들이 많아야 좀 나아질 텐데, 그럴 애들은 벌써 외국 블로그 구독하고 있을걸요?

Q: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웹 2.0 서비스가 없어요?
A: 쓸 애들은 벌써 플리커나 딜리셔스, 페이스북 쓰고 있겠죠. 이용자가 없는데 무슨 서비스를 만들겠어요?

* 또 뭐 있을까?


  1. 보통 조선에서는 아는 선비들끼리 책을 주고받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