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검, 귀면장식대도
도검이라는 병장기는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추세를 보여 주는데, 바로 칼 끝에 달리는 병두(柄頭, pommel)의 모습입니다. 기본적으로 칼자루의 끝에 장착된 병두는 칼의 무게 중심을 잡고 칼머리를 보강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대체로 오래된 검일수록 무게 중심을 잡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체로 고대로 갈수록 병두가 크고 화려하며, 반대로 현대로 올수록 병두가 작고 단순해지는 특성[^1]을 보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서양검인데요, 주먹만한 병두가 장착된 바이킹 검과 아예 병두라고 볼만한 물건이 없다시피한 현대의 플뢰레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요즘 생산되는 칼 중에 병두에 정교한 문양을 새기는 등 신경을 많이 쓰는 도검은 일본도가 거의 유일합니다.
- 사진출처: 上 - Flickr - arnybo's photostream, 下 - 득점하는 남현희1
한국의 도검 역시 이러한 추세를 벗어나지 않는데, 고대에는 화려한 병두를 자랑하는 환두대도가 제작되었지만 조선 시대에 이르면 주술적 의미를 가진 몇몇 검을 제외하면 병두가 아주 단순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제 지역의 검 중 상당히 재미있는 유물이 한 점 전하는데, 귀면(鬼面)의 형상이 새겨진 환두대도입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일단은 평범한 환두대도로 보입니다. 그럼 환두 부분을 확대해 보겠습니다.
이 귀면 문양2은 중국의 청동기 시대부터 나타나지만3, 한국에서 나타나는 것은 평양 천도 이후로, 보통 절 등의 건축물에 사용되는 기왓장 등에서 보입니다. 저 검은 7세기의 검으로, 귀면이 각종 건축물에 사용되는 현상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귀면장식대도는 위에서 소개한 백제의 것을 제외하면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발견된 것4 단 한 점만이 남아있습니다. 즉, 세상에 단 두 자루밖에 없는 형식인 셈이지요. 그 수가 적은 데다가 딱히 대단한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따로 분류하지 않고 삼루환두대도의 일부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삼루환두대도는 둥근 고리 세 개를 이어 붙여서 만든 환두대도로, 아래와 같은 형식을 가리킵니다.
발견된 수량이 워낙에 적은 만큼, 이 검이 얼마나 유행했고 또 얼마나 쓰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통일 신라 시기의 유물에서 이러한 형식의 검이 보여, 통일 신라 시기에도 이러한 형식의 검이 제작되어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진의 큰 칼을 잡은 원숭이 석상은 통일신라시기의 성덕왕릉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무덤에 설치된 수호신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8세기 중엽의 것으로 여겨지는 유물입니다.
그런데 두번째 사진을 보시면, 이 석상이 쥐고 있는 검의 병두에 귀면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저는 이러한 점에서 귀면장식대도가 백제 멸망 이후 적어도 이 시기까지는 쓰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우 석상일 뿐이지만, 저 석상에는 통일 신라시기에 사용되던 갑옷의 형식인 명광개를 상당히 정확한 형태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당시 무구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반증이지요. 그런 점에서 저 석상이 쥐고 있는 환두대도가 당시 사용되던 귀면장식대도를 묘사했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고 봅니다.
묘지를 지키는 석상이 쥐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검에는 어쩌면 주술적인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기야, 귀면 자체가 사악한 귀신을 쫓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문양이긴 하죠.
위에서 예로 든 귀면장식대도와 원숭이상은 모두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들입니다. 혹시 박물관에 들르실 일이 있으시다면, 한 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아마 아무 것도 모르고 보시는 것보다 더 재미있으실 겁니다. :)
김유식, , 문화와 나 2002년 겨울호.
- 김유식 씨는 국립 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학예연구사로, 국립 경주박물관 주최 전을 진행했다.
, 국립 대구박물관, 2007
- 2007년 8월 ~ 10월에 걸쳐 열린 대구박물관의 한국 도검 전시회에 출품된 도검들의 사진을 담은 도록. 선사 시대의 석검부터 조선의 도검까지를 모두 총망라하며, 그 내용이 매우 풍부하다. 고어핀드 군은 중앙박물관 서점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구입했다.
, 육군박물관, 2002
- 역시 선사 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검들을 수록하고 있는 전시회 도록. 아쉽게도 저작권 문제 등으로 인해 실제 수록된 것은 전시품의 약 1/3에 불과하다고 한다. 무속에 사용된, 실전성이 전혀 없는 검들도 수록된 것이 특이하다.
[^1]: 단순하게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이 사이에서 상당히 많은 변화를 보인다.
1. 귀면병두 귀면병두 귀면병두…. 귀두? (뭔 개솔…)
2. 커다란 병두 하니 글라디우스가 생각나버린…
3. 상당히 희귀한 유물을 소개해주셨군요.. 아, 보고싶어라….
1. [버럭]
2. 글라디우스도 그렇고, 고대의 검 중에는 확실히 균형을 맞추기 위해 커다란 병두를 장착하는 것이 많지요.
3. 한국에 오실 일이 있으면 잠시 들러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D
또 어디선가 들은 말이지만..(또 사실성 없는 소리랍니다..)
고대 검들로 갈수록 철제의 가공방법이 서툴러져서
무게가 늘었기때문에
미끄러지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병두가 컷다는 말도 있더군요.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대체로 고대로 갈수록 칼이 무겁기 때문에, 무거운 병두가 균형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휘두르다가 미끄러지게 됩니다. 다만 철의 가공방법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는 못해서 본문에 쓰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아는바로는
철제 가공방식에 따라 검의 디자인도 다르다고 알고있습니다. 처음엔 그냥 민무늬로 검을 만들다가 무게가 너무 늘어나자 중세 암흑기에는 검신에 홈을 판것으로 알고있고요 또 후반부에 다시 가공방식의 발전으로 그 홈이 다시 없어졌을겁니다/
조금 사족을 달자면,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암각화 중에 보면 인면(혹은 귀면)비스무리한 것도 있긴 합니다. 그리고 귀면와라는 말은 조선시대에도 나오고, 애초에 ‘도깨비’란 것 자체가 뭐랄까…딱히 ‘어떤 것’으로 정의내리기 힘든 존재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요괴들을 딱히 세세하게 나누고 발전(?)시킨 이른바 ‘요괴문화’가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딱히 어떤 대상으로 정의내리기보다는 ‘신령스럽고 기괴한 요물의 통칭’정도로 하는 게 더 맞습니다.
또한 귀와=치우설도 그냥 무시하기에는 힘든 것이, ‘조선무속고’에 보면 동국시세기를 인용하여 관상감에서 단오마다 치우 부적을 만들어 왕실과 사대부가에서 이용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지금도 치우얼굴을 그린 귀신퇴치부적을 불교용품점에서 종종 팔곤 하죠. 그리고 동문선에서 번역 출간한 ‘용봉문화원류’에 보면, 중국에서도 처음부터 치우를 현재의 귀면 형태로 여긴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오래된 치우도를 보면 새의 머리를 하고 있거든요. 이건 별 관련 없는 이야기지만, 중국 동북부에선 치우를 우신으로 섬기기도 합니다.
—이 덧글은 독자분들의 지식을 위해 적는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