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카는 SRPG일까?

  • 고기 구워 먹다가 나온 얘기가 생각나서 포스팅.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밥 먹다가, “SRPG도 온라인 게임으로 나왔으니 진짜 생각할 수 있는 장르는 다 온라인화됐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런데 가 정말 SRPG 맞냐?” 는 논쟁으로 튀더군요.

한동한 안했습니다만, SRPG 게임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좋아하는 장르인 만큼 여기에 대해 나름 생각을 한 바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적을 내용은 그 논의에서 제가 한 말들을 좀 더 디테일하게 다듬은 것입니다.

전략? 무슨 전략?

우선 SRPG 게임이 뭔지, 어떤 장르인지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4각 격자 위에서 진행되는 SRPG 게임을 하나 하고 있다고 치겠습니다. A와 B라는 유닛이 있다고 하지요. 각 유닛은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에 배치된 적을 공격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아래와 같이 생긴 맵 상에서 적 유닛 C를 공격하려고 합니다. A, B 가 각각 하나씩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유닛들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까요?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정답은 이겁니다.

그럼 문제.

유닛 A 를 아래와 같이 배치하면 안되는 이유가 뭘까요? 이렇게 해도 A가 C를 공격할 수 있는 데 말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위와 같이 A를 배치해도 C를 공격하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B는 C를 공격할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죠.

이런 식으로 놓고 보면, 아래 그림에서 회색으로 칠한 칸은 단순히 빈 칸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희소한 자원이죠. 유닛의 배치란, 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판단의 결과물입니다.

SRPG ≒ 자리 싸움

게임에서 이용되는 자원(Resource)이라고 하면 보통 유닛이나 유닛을 사기 위한 돈(미네랄, 가스…) 따위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SRPG 게임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요. 하지만 자주 간과되는 사실 중 하나는, SRPG 게임에 사용되는 자원에서 맵 격자의 중요성입니다. 실제로 SRPG 게임을 할 때 게이머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건 유닛의 이동 – “어떤 유닛을 어디에 갖다 놓아야 주어진 격자들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 – 입니다. 격자 하나에 유닛 하나만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이런 식이기 때문에, SRPG 게임이라면 격자의 활용 방식을 다양하게 해서 전략성을 부여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유닛마다 이동할 수 있는 범위나 공격할 수 있는 범위에 차이가 나는 건 기본이고[^1], 지형의 고저차에 따라 입힐 수 있는 데미지가 달라진다던가, 적 유닛의 측면이나 뒤로 돌아가서 공격한다던가 하는 시스템 등도 있죠. 서로 친밀한 유닛들이 인접해 있을 때는 크리티컬 히트가 잘 터지는 것과 같은 시스템도 있습니다. 니폰이치의 SRPG 시리즈 같은 경우는 캐릭터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지만, 여기에도 지형을 활용하기 위한 던지기 시스템이나 지오이펙트 시스템이 있지요. 잘 찾아보면 정말 많을 겁니다. 요점은, SRPG 게임에서 전략성의 상당 부분은 격자 활용법에서 오며, 이것을 요리하는 방법에 따라서 게임의 느낌이 달라지게 된다는 겁니다.

SRPG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고전적인 게임들 중 SRPG와 비슷한 것을 고른다면 아마 장기가 있을 텐데요, 이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서양 장기와 중국 장기는 유닛과 기본적인 이동 방식에도 차이가 좀 있습니다만, 유닛의 활용 방법(체스의 캐슬링, 양파상, 프로모션 등…)에서 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들은 격자의 활용 방법에 서로 다른 전략성을 부여하고, 결과적으로 게임의 느낌을 크게 바꿔놓게 됩니다.

뒤 랭크의 메이트(http://en.wikipedia.org/wiki/Back_rank_mate). 캐슬링은 King을 보호하는 유용한 방법이지만, 위와 같은 사태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백의 Rook이 흑의 King을 외통수로 몰아넣지만, 정작 흑의 King은 자신의 Pawn에 길이 막혀 피할 수가 없다 – 흑 유닛들은 무용지물이다. 캐슬링의 개념은 동양 장기에는 없다.

동양 장기(http://en.wikipedia.org/wiki/Xiangqi)의 멱 개념. 한(漢)의 병(兵)이 길을 막고 있기 때문에, 초(楚)의 마(馬)는 한(漢)의 마(馬)를 잡을 수 없다. 반면 한의 마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멱의 개념은 서양 장기에 없기 때문에, 마(馬)와 Knight의 이동 방법은 동일한데도 활용 방법에는 차이가 나게 된다.

아틀란티카가 정말 SRPG일까?

개인적으로는 아틀란티카를 거의 해보지 않았기에(레벨 10 가기 전에 접었습니다.), 아틀란티카가 SRPG가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게임의 장르라는 것이 칼로 무 썰듯이 정해질 수 있는 성격의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잣대 – 격자의 활용에 어떠한 전략성을 부여하느냐? – 를 가지고 잰다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 짜임새 있는 격자 활용 시스템을 탑재했다면 SRPG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좀 힘들지 않을까요. 결국 그건, 게임을 해보신 분들이 내야 할 것이겠지만요.

ps) 얼마 전 PSP용 사려고 용산 가보니, 용산 상인들이 반다이 코리아 담당자들을 영생시킬 분위기였음. 500만 원 아낄려고 게임에 번역 공략집 첨부 안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1]: 사실 위에서 예를 든 A와 B는 삼국지 영걸전의 보병과 기병입니다.

8 thoughts on “아틀란티카는 SRPG일까?

    • 불로초를 찾겠다고 일본에까지 사람을 보냈다는 진시황은 헛수고 한 겁니다. 정말로.

    • 음, 욕 먹어가며 만리장성을 쌓은 것도 사실은 영생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거나(탕)

  1. 으하하하 500만원 아끼려고

    …. 뭐, 500만원이라는 돈에 민감해질만큼 판매가 안 돼서 그러는 거겠죠.

    • NDS도 기체는 많이 팔았는데 정작 타이틀이 안 팔려서 큰일이죠. 어서 정품을 사쓰는 풍토가 정착되어야 할 텐데요.

  2. 아틀란티카 게임 진행 스타일은 보면 볼수록 디사이플즈 시리즈의 전투가 생각나더군요.(2행 3열의 영웅+유닛 조합으로, 전투 내에서 못 움직입니다.) HOMM 시리즈 식의 서양 SRPG를 지향하는 작품인데, 전투보다는 필드 마법과 영토 먹기, 영웅 및 유닛 육성이 중요한 작품이었죠. 전투는 좀 노가다 스러워서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틀란티카를 보면서 디사이플즈 시리즈와 겹쳐 보이더군요.

    다만 디사이플즈 시리즈는 필드 마법이나 땅따먹기, 영웅과 유닛 조합이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지만, 아틀란티카는…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아틀란티카는 잘 나가는 온라인 게임이기는 합니다만, 그 지향점인 SRPG라는 점에 있어서 이게 잘된건지 잘못된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디사이플즈라는 게임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전투 내에서 움직일 수 없다면 흔히 말하는 SRPG 류의 게임과는 좀 다르겠군요. HOMM이라면 그래도 SRPG 요소가 약간 더 짙은 편이겠습니다만…

      디사이플즈라는 게임과 아틀란티카가 비슷하다면, 아틀란티카는 흔히 이야기하는 의미에서 SRPG라는 타이틀을 달기엔 힘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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