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 show me the money

* 이 글은 시리즈의 토막글입니다.

피렌체 시에 있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성당. http://www.flickr.com/photos/dkrape/3031449519/

용병 이야기가 나온 김에 관련 에피소드 하나 슥슥.

14세기 이탈리아 반도에서 활동한 용병대장 중에 존 호크우드John Hawkwood라는 자가 있었다. 어느 날, 두 명의 도미니코 파 수도사가 길을 가다 호크우드와 마주쳤다. 수도사들이 호크우드에게 “나리에게 신의 평화가 있기를!!” 이라고 인사를 건네자, 호크우드가 벌컥 화를 내며 왈,

이 빌x먹을 놈들아!! 그러면 난 뭘 먹고 살란 말이냐!!

…아무리 직업이 용병이라지만 정말 할 말 없게 만든다;;14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용병대장은 크게 두 가지 케이스가있었는데, 하나는 이탈리아 안에 자기 영지를 가지고 정착한 용병대장이고 다른 하나는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떠돌이 용병대장이다. 호크우드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잉글랜드 출신이며, 당연히 후자에 들어간다. 그의 초기 행적은 상당히 불분명한데, wikipedia의 설명에 의하면 출신 성분조차 기사 혹은 재단사로 갈릴 정도다. 확실한 것은, 이 사나이가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로 건너와 군인이 된 뒤 백색 중대The White Company라는 용병단의 대장이 되어 1363년에는 이탈리아에까지 흘러들어갔다는 것 뿐이다.

존 호크우드를 그린 그림. http://en.wikipedia.org/wiki/File:Paolo_Uccello_044.jpg

이 “돈에 환장한”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1는 그와 동시기를 살았던 이탈리아의 문학가 프랑코 사게티Franco Sacchetti가 쓴 라는 책에 나온다. 이 책은 구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사게티는 귀족 출신의 공무원이었던 만큼 이 이야기가 실화일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실제로 당시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용병대장들은 돈을 밝히며 또한 잔악무도하기로 유명했다.

어쨌든 이 사나이는 1394년 침대 위에서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했고, 고용주였던 피렌체 공화국은 그의 장례를 성대히 치른 뒤 프레스코화까지 그려가며 그를 추모했다. 지금도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에서 볼 수 있다.


  1. 정확한 영역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8 thoughts on “한마디 – show me the money

  1. 에이… 그래도 설마 정색하고 저런 말을 했을란가요 ^^

    • 글쎄요, 당대 용병대장 중에느 워낙에 후덜덜한 인간이 많아서…

    • 사코 디 로마Sack of Rome의 세바스찬 세르토린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그런데 그 친구 이름의 정확한 스펠링을 모르겠어요.

  2. 조금 비슷한 이야기가 일본에도 있습죠.

    반 단에몬[塙 団右衛門 – 나오유키[直之]라는 이름도 있지만 저 통칭쪽이 더 유명]이라고 후에 토요토미 가문이 멸문 당하는 오오사카 농성전에서 토요토미 측에 서서 대활약을 펼치는 인물이 있습죠.

    세키가하라 끝난 뒤 낭인 시절에 단에몬은 자신의 친구와 신사에 참배를 한 후 친구에게 소원으로 무엇을 빌었냐고 묻자 그 친구는 – 무운장구와 나쁜 일이 일어나는 곳에 제가 있지 않기를 빌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단에몬은 웃으며 “나는 나쁜 일이 일어나는 곳이나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 내가 있기를 빌었네”라고 답했다고 하네요.

    세키가하라 끝난 뒤 세상은 평화 분위기로 접어들고, 전쟁터에서 한탕해야 출세할 수 있는 낭인인 단에몬은 그런 전쟁이 어서 일어나길 빌었다고 할까요. 뭐 결국 오오사카 농성전에서 토요토미 측의 용병이 되어 활약하니 소원은 성취….물론 나중에 전사.

    여담으로 이 반 단에몬은 왜란 때 건너 온 가등가명(加藤嘉明)의 부하로 해전에서 우리 측 전선을 빼앗았다고 하니, 칠천량 해전에 참전했었을 가능성이 크죠.

    • 1. 오오, 역시 전국시대 전문가인 발해지랑님이십니다.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군요. 감사합니다 :)

      가토 요시아키라 휘하에서 조선군 전선을 빼앗았다면 실제로 칠천량 해전 참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2. 신선조 관련 소설들을 읽어보면 전쟁이 있어야 무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낭인들이 많이 나오는데, 전국시대에는 낭인이 많았던 만큼 훨씬 그 수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들이 결국 시마바라 난 때 마지막으로 정리되는 것이겠습니다만…

      여담이지만 언젠가 본 일본도 코등이 중에는 천주교 계열 낭인이 쓰던 게 있더군요. 성모상을 새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그 낭인도 전쟁이 있어야 출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요.

  3. 대단히 솔직한 인간이었군요. 그런데 너무 솔직하면 그것도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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