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플랫폼
아이폰이 대단한 건 그것이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플랫폼은 따로 있다.
1.
블로고스피어 불멸의 "떡밥"을 꼽자면 단연 아이폰이다. 이 물건이 어서 출시되기만을 기다리는 인물이 필자 주변에만 1개 중대는 있다. 아이폰이 언제 출시된다는 둥, 어디어디서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둥 하는 소문을 접하는 건 이제 하루 일과가 되었다.
아이폰이 이렇게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는 건 애플의 이미지 덕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성능 덕분라고 생각한다. 보통 휴대폰에도 사람들이 많이 쓰는 기능들1은 내장되어 있다. 하지만 아이폰은 차라리 PC쪽에 가까워서, 내가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골라서 설치할 수 있다.
2009년 11월 현재 앱스토어에 등록된 애플리케이션은 10만 개가 넘는다. 그 99% 이상이 쓰레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꾸로 이야기하면 1%는 괜찮다는 얘기다. 그것만 해도 천 개다. 휴대폰에 내장되어 나오는 기능들에 비하면 없는 게 없는 수준이다. 이 정도면 가슴이 두근두근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누가 이 많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까? 앱스토어에 진을 친 개발자들이다. 애플리케이션이 팔릴 때마다 대금의 일부가 들어온다. 히트를 치지 않아도? 그렇다. 꼭 히트를 치지 않아도.
2.
다양한 틈새 상품들의 총합이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 히트 상품이 전체 매출을 결정하던 시기와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이러한 현상을 롱테일 현상이라고 한다. 앱스토어는 롱테일 현상의 한 예이다.
롱테일의 발현 조건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다음 세 개2다: 적은 생산 비용. 적은 유통 비용. 마지막으로 적절한 컨텐츠를 찾아주는 필터의 존재.
우리가 몸담은 인터넷 공간 자체가 롱테일의 대표적인 예다. LAMP3와 같은 오픈 소스 프로그램들과 값싼 서버 가격은 웹 컨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가격을 0에 가깝게 만들었다. 필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이다. 그 결과 웹 공간에는 오프라인에서는 상상도 못할 다양한 컨텐츠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전체 웹에서 이러한 틈새 컨텐츠들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아이팟과 같은 플랫폼은 롱테일 현상을 만들어내며, 강화하는 특징이 있다.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쓰려 유저들이 몰리면, 그걸 노린 개발자들이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낸다. 그만큼 또 새로운 유저들이 유입된다. 이러한 선순환(Positive Feedback) 속에서 롱테일은 더욱 강화된다.
3.
좀 뜬금없지만, 지금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군벌이나 테러집단과 같은 폭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건 무기와 인력이다. 과거에는 이것을 구비하는 데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들었다. 문제는 그게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화기인 AK47 소총. 이 걸출한 총기는 그리 비싸지 않다. 이라크 같은 분쟁 지역에서는 닭 한마리 값이면 중고품을 살 수 있을 정도다. 너도 나도 저작권을 무시하고 카피해대서 사실상 "오픈 소스"화 되어버린 탓이다. 총 뿐 아니라 RPG7와 같은 로켓포, 자폭 테러를 위한 폭탄 조끼도 그 성능에 비하면 아주 싸다. 값싼 인력도 넘친다. 전쟁으로 교육과 일자리를 빼앗긴 청년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폭력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비용은 이렇게 헐값이 되었다.
더 소름끼치는 현실은, 이 시스템에 선순환(Positive Feedback)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못 가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으니, 군벌 휘하에 들어가서 총질을 할 수밖에 없다. 소년병 양산 → 폭력 격화 → 등교 포기 → 다시 소년병 양산의 악순환이다. 설령 전쟁이 끝나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돈 벌 거리가 마땅치 않으니, 싸움이 있는 곳으로 가서 용병 노릇을 하는 수밖에 없다.
4.
후세인 정권이라는 "기능" 은 붕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나타난 건, 기능을 만들어내는 "플랫폼" 이다. 어린이들을 학교에 가지 못하게 만들고, 값싼 총이 굴러다니고, 총질로 먹고 살게 만드는 환경 말이다. 그리고 그 플랫폼은 대량의 애플리케이션들을 양산하는 중이다. 쏟아져나오는 무장 세력들과 늘어나는 전사자들은 그 결과물일 뿐이다.
지난 5월,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2만여 명의 병력을 증파했다. 진화한 탈레반이 이미 전국의 70%를 장악한 여기도 사정은 만만치 않다. 따지고 보면 탈레반 또한 폭력의 플랫폼에서 배출된 "히트 상품" 이다. 이 히트상품을 제압하는 데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반면 성공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지구 한쪽에서는 미제 휴대폰에 목을 매는 사이, 반대편에서는 미군들이 죽을 쑨다. 상황은 다르지만, 본질은 똑같다.
구구절절 동감하게 되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스티븐 잡스 = 부시 라는 놀라운 공식을 만들어내는…
다만, 한쪽은 매우 긍정적인 프로듀서고, 다른 한쪽은 시밤쾅일 뿐.
그렇죠. 쇳조각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만 농기구를 만들 수도 있다 하였는데, 이 경우도 비슷한 예인 것 같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탁월한 응용이네요.
감사합니다. (–)(__)
전 아이폰을 기다리는 중대의 몇 소대 몇 분대 소속인가요?
[…]
저도 아이폰을 거의 초소형 PC급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말 언제 나오는지…;;
지금은 일단 접어두고 다음 세대때나 나올까 싶기도 하네요.
1. ㅋㅋㅋㅋㅋ
2. 정말 다음 세대때나 나올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낙에 발매일이 질질 끌리고 있어서요.
우리동생 핸드폰이 아이폰인데, 정작 전화기능은 전혀 쓸모없음.
도라버리게스 // 전화기능 따위는 장식에 불과합니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모르죠 (웃음)
워낙에 여기저기 많은 소문이 돌고 있어요.
그놈의 아이폰 때문에..
ㅋㅋ
제가 들은 소문으론…(진정 남에게 들은 소문입니다.)
KT측에서 이미 상당량의 아이폰을 구매했다고하더군요.(들은 바로는 몇십만 단위..)
이게 풀려야 하는데 안풀려서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라고..
게다가 풀리면 곧바로 공짜폰이 될 가능성의 거의 60%이상이라는…
(올해 출시를 목적으로 선구매를 했는데 이게 풀리지를 못한데다가.. 신제품 출시일도 곧 다가오고 출시일 연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소문이라는..ㅋㅋ(소스를 제공해준 출처에 따르면 아주 믿을만한 사람으로부터 들었다고 하는데.. 그거 모르죠..ㅋ)
몇십만 단위까지야 샀겠습니까. 그거 소화할 시장이나 있다고…
간만에 괜찮은 글을 포스팅하신 듯 (?)
(도망 ㅌㅌㅌ)
내 글이 언제 안 괜찮은 적 있었나뇨?
이 괘씸한 늠.
갑자기 뜬금 없기는 한데, 롱테일에 대해서 다음 글들을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blog.jinbo.net/marishin/?pid=221
http://blog.jinbo.net/marishin/?pid=211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 글을 쓴 사람은 롱테일 이론에 대해서 좀 잘못 잡고 있는 것 같아 한 자 남깁니다.
우선 롱테일 현상은 대형서점 등에서 예전에도 존재하던 것도 맞습니다. 크리스 앤더슨도 자신의 책에서 그것을 언급하지요. 하지만 글쓴이처럼 “듣보잡 다수가 힘을 발휘한다.” 고 해석하는 게 아니라 “듣보잡들도 듣보들 사이에서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고 해석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에 롱테일이라는 이름까지 붙는 이유는, 예전에는 몇 안되던 대형서점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던 현상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산업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히트상품이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는 것, 예전보다 훨씬 다양한 상품이 팔리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거든요. 그리고 그것은 산업적으로 상당한 대세가 되어가고 있지요. 당장 동네 서점이나 동네 음반점이 문을 닫는 것 보세요. 예전처럼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를 읽고 히트곡을 듣는다면 이들도 장사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컨텐츠의 맛을 본 사람들은 더 자기에게 맞는 걸 원하고, 그러다보면 이왕 갈 거 인터넷 상점이나 대형 상점만 찾게 되고, 결국 동네 서점이나 음반점은 문을 닫아야 하지요.
그리고 이 이론이 관심을 끄는 것은, 그 원인에 대해서 고찰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겁니다. 저 글의 저자는 “롱테일 운운이 온라인에서만 가능한 건 ‘물건 전시 비용’ 덕분” 이라고 억지를 씁니다만, 유통 비용 뿐만 아니라 생산 비용, 필터링 장치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대형 서점도 인쇄 기술의 발달로 비용이 줄어들고 도서 분류 기법이 발달한 시대의 산물이지요. 구텐베르크 시대에는 이런 건 상상도 못하는 것이었구요.
롱테일에 대한 해석, 산업적 의미 그리고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롱테일 현상을 “용토 폐기되어야 할” “허황된 이론 따위” 로 치부하는 태도는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유행” 이라는 것에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거리를 두는 자세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친 건 모자람만 못하겠죠.
동네에서 각종 소매점이 사라지는 현상은 사람들의 욕구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라기보다 ‘유통비용’ 문제가 결정적 원인일 겁니다. 대형마트가 구멍가게를 망하게 만들듯이요.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를 보면 70년대 이후 기술발달에서 촉진된 산업구조 재편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런 부분을 언급하고 있지요. 일독할 만한 책이었습니다)
유통비용의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데, 인터넷 서점에 아무리 많은 상품이 등록되어 있어도 출간된지 몇 년 지난 책은 구할 수가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창고에 책을 보관하는 비용이 버거워지면 대개 절판시켜버리거든요.
이에 비해 앱스토어 등에서 판매하는 소프트웨어는 유통비용이 매우 싸니까, 실물을 팔아야 하는 제품이라면 퇴출되었을 상품도 진열대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이 ‘롱테일 현상’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발생하는 매출의 대부분은 평소 책을 꾸준히 많이 사는 소수 고객에게서 창출되듯이, 앱스토어의 매출액도 쓸만한 1%에서 대부분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롱테일 현상은 파레토 법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산업에 걸맞는 ‘이론’이라기보다, 기술 발달 덕에 유통 비용의 절감으로 오랜 기간 유통될 수 있는 상품 시장이 존재할 수도 있게 되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게 제가 링크한 marishin님의 글의 취지구요. 너무 호들갑 떨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죠.
그 글에서도 언급되었던 크리스 앤더슨의 주장의 근거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온라인에서도 히트 상품의 매출이 압도적이라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요.
예전에 바하문트님께서 크리스 앤더슨의 신작에 대해 혹평을 한 것도 있고 해서 그다지 신뢰하기는 좀 어려운 글쟁이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
예, 맞습니다. 히트 상품이 여전히 많이 팔리는 것 맞습니다. 앱스토어에서도 1%가 대부분의 매출을 낼 겁니다. 하지만 1%의 히트상품은 더이상 기존의 산업만큼 맹위를 떨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1%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롱테일이라 불리는 다양성이 필요했습니다. 이 부분은 본문에서도 언급했군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롱테일 이론의 의의입니다.
크리스 핸더슨의 오버액션 기질은 알려진 바입니다만, 그의 생각은 최근의 IT 산업 동향이나 소프트웨어 생태계 등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만큼 여전히 무시할 것이 못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 글을 쓴 사람의 직업이 오히려 궁금해지네요.
그리고 여전히 롱테일 현상을 유통가격만의 문제로 축소해서 보시는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제작비용입니다. 애플이 아이팟 소프트웨어 개발 라이브러리를 공개한 것도 다 제작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죠. MS 등도 비슷한 방향으로 애를 쓰고 있습니다. 도서의 경우, 오랜 기간동안 진행된 제지 기술과 인쇄 기술의 발달이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ps) 음반이나 책처럼 취향을 많이 타는 상품은 대형 마트에서 파는 일반 일용품하고는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책값이 똑같아도 저는 멀리 있는 대형 서점을 갑니다. 저는 베스트셀러만 읽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제작비용의 절감까지 고려한다면, 롱테일 현상이라고 부를만한 게 더 없어지는 듯합니다. 제작비용과 유통비용의 절감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70년대 이후 모든 산업에서 맹렬하게 추구해왔던 목표이고 실제로 달성되어 왔으니, IT산업에서 특별히 강조될 만한 특징이라고 부르기는 힘들지요.
IT산업에서 나타나는 비용절감의 효과가 다른 산업보다 훨씬 크니, 그 점이 강조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롱테일이라고 부른다면 몰라도, 대량생산의 시대가 저물고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종류의 상품이 만들어져 팔리고 있다는 건 2004년에 새롭게 주장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
제가 생각할 때 ‘롱테일’이 주목받은 이유는 이제 IT산업에서는 파레토 법칙이 들어맞지 않게 되었다는 데 있었던 것 같은데, 앤더슨의 주장의 근거가 사실과 다르다는 반론에 대해 ‘롱테일은 그 범위를 정하는 방법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반박한 걸 보면 굳이 히트 상품이 예전만큼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지 못하게 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롱테일’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한가 싶은 거지요. ㅎㅎ 그건 법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정리하면, IT산업에서 제작비용과 유통비용의 절감이 일어난 덕에 더 많은 종류의 제품이 팔릴 수 있게 된 현상 자체는 다른 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걸 ‘롱테일 현상’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이미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는데, IT산업에서는 다른 산업보다 유통비용 절감 효과가 훨씬 크게 나타나니까 이 부분을 ‘롱테일’이라고 보면 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파레토 법칙을 정말로 뒤집었다면 혁명적인 발견이었겠습니다만.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는 사례인 책과 음반을 예로 설명해보자면, 이것들이 취향을 많이 타는 상품이기는 합니다만, 동네 서점과 음반점이 망한 원인은 동네 슈퍼가 망한 이유와 동일합니다. 기존 유통망과 다른 새로운 유통망을 이용하는 판매자들과 비교해 가격경쟁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자기 관심사에 따라 책이나 음반을 구매하는 사람은 여전히 미미한 편이고, 베스트셀러가 전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예전처럼 베스트셀러 위주로 구입하고 있습니다만(물론 비율이 조금 떨어졌을 수는 있겠지만), 더 싸게 파는 곳에서 사고 있을 뿐이지요.
사고 싶었던 책이 절판되어 못 구하는 이유 또한 유통비용 때문인데, 책처럼 실물이 존재하는 상품은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형식으로 판매되는 제품보다 시장에서 사라질 확율이 훨씬 높은 거죠. 이 차이점이 바로 롱테일 현상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ps) marishin님은 기자이십니다.
1. 논의가 좀 길어지는군요. 잠시 정리를 하겠습니다. 영혁님의 의견은 대략 아래와 같은 것이지요?
a. 제작비용 및 유통비용의 절감이 소위 롱테일 현상(다품종 소량생산)의 원인인 것은 맞다.
b. 하지만 a의 현상은 70년대 이후 계속된 현상으로, IT 산업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IT산업의 경우 유통비용의 절감 효과가 유난히 큰 것 뿐.)
c. a, b로 볼 때, 롱테일 현상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현실에서 굉장히 많다. 혹은 따로 이름을 붙여야 할 정도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2. 음반에 대해서는 실증적인 데이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소녀시대 미니 2집을 예로 들죠.
명동 명동레코드 – 11000원
고속터미널 신나라레코드 – 11000원
전자는 반지하에 있는 손바닥만한 음반샵이고, 후자는 대형 음반샵입니다. 정가가 12000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대형 음반샵이 전혀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심지어 강남이나 코엑스에 있는 곳들은 거의 정가대로 받고 있습니다.) 도매상에서 구매해 올 때야 대형 매장이 유리하겠습니다만, 임대료가 지극히 높은 땅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따라서 음반점의 가격 경쟁력은 대형마트만큼 가격 경쟁력이 주된 요소가 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마케팅론에서는 이마트와 같은 일용품 상점을 가격 우위로 승부가 결정나는 대표적인(극단적인) 예로 들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음반점은 그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정가가 정해져 있는 책도 크게 양상이 다르지 않습니다.
아, 음반과 도서 시장의 경우 동네 소매점을 몰락시킨 것은 대형매장이 아니죠. 음반은 음반이라는 매체 자체가 몰락했고 요즘 유행하는 노래들의 수익은 대부분 휴대전화 컬러링이나 벨소리 등에서 나온다고 얼핏 들은 것 같습니다. 도서시장은 정가제를 시행해서 오프라인 서점을 보호하고는 있습니다만, 인터넷 서점에 시장을 엄청나게 빼앗긴 것이구요.
옛날에는 동네에 슈퍼, 서점, 음반점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주민들이 그런 소매점을 이용해서 물품을 구입하는 시대였지만, 이제 생필품은 대형할인매장에서(서울은 땅값이 비싸서 대형할인매장이 많이 없는 편이지만 지방의 경우 재래시장은 거의 괴멸 상태입니다), 그밖에 여러 다른 물품은 인터넷을 통해 사는 시대가 되었고, 유통비용 절감을 가능하게 만든 각종 기술의 발달이 공통된 원인이라는 점을 짚고 싶었습니다.
한 가지 더, IT산업에서 제작비용의 절감을 가능케 하는 각종 소스 코드 등의 공개는 어슐러 휴즈의 ‘소비 노동’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예전에는 판매자가 담당하던 행위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지요. 은행에서 창구를 줄이고 ATM을 이용케 한다거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음식을 나르는 일을 소비자가 하는 것처럼요. MS가 전향적인 태도로 나설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오픈 소스의 대의에 동감해서라기보다, 충분히 자기 회사에 이득이 된다는 점에 있지 않겠습니까.
오픈 소스는 소비자를 착취하는 거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를 바탕으로 유용한 제품이 싼값에 많이 개발되면 모두가 이득을 얻는 윈윈 게임인데, 다만 이또한 전체산업에서 나타나는 경향의 하나라는 거죠. 저는 ‘정보화사회’를 ‘산업사회’와 구별해서 볼 만큼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논의를 경계하는 편입니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찬찬히 뜯어보면, 20세기 후반부터의 기술 발전과 그로 인한 변화는 19세기 말의 제2차 산업혁명에 비견할 만한 정도가 아닌가 싶어요.
1. 예, 오히려 요즘의 음반 산업은 음악 산업과 패션 산업의 경계에 있는 듯한 인상마저 줍니다. 스타벅스나 옷 가게에서 갈수록 더 많은 음반이 팔리고 있으니까요. 전통적인 음악 산업은 컬러링이나 벨소리, mp3로 옮겨가 버렸죠.
2. 뭔가 잘못 짚고 계신데… 오픈소스 프로그램은 소비 노동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90년대 후반 이후의 지극히 새로운 현상이구요.
사용자 입장에서 오픈소스 프로그램은 그저 무료 프로그램에 불과합니다. ATM을 사용한다던가 음식을 나르는 것과 같이 사용하기 위한 노동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소스코드가 공개되어 있다 한들 그것을 직접 살펴보고 수정하는 사람은 10만 명 중 1명 있을까 말까일 겁니다. 아파치 웹 서버는 수억 대의 웹 서버에서 돌아갑니다만, 정작 소스코드를 분석하고 고치는 사람은 한 줌도 안 되죠.
생산비 절감이라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인데, 하나는 기업 또한 무료 혹은 거의 무료로 이 프로그램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고 또다른 하나는 프로그래머들 사이에 노하우를 공개함으로써 새로운 기술 발전을 촉진하거나 유용한 도구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저도 오픈소스 도구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여러 명이서 프로그래밍 작업을 할지, 효율적으로 프로그램을 짤지 감도 오지 않네요.
MS가 오픈소스에 전향적인 태도로 나오는 이유는… MS는 현재 OS 사업자로서의 유리한 지위를 악용한다는 비판과 더불어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개인정보를 빼내 간다는 등의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전 같으면 무시했겠지만, 리눅스와 같은 무료 OS가 발전한 지금은 그렇게 하지도 못합니다. 수틀린 이용자들이 리눅스로 옮겨 가 버릴 수 있거든요.
3. 롱테일이 가지는 의의, 혹은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조만간 따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예로 든 것들이 대량의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형태의 행위라는 점에서, 극소수에 의해 진행되는 오픈소스에 기반한 프로그램 개발 행위와는 층위를 달리하기는 합니다만, 리눅스를 기반으로 상업용 제품이 출시되는 현상을 보니, 본래 기업에서 전적으로 부담하던 비용을 외부 행위자의 행위 덕에 절감한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싶었어요.
물론 오픈 소스를 이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건 음모론에 가까운 바보의 생각이고, 이러한 점이 오픈 소스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IT산업에서 나타나는 제작비용 절감 현상 가운데 기존 산업과 같은 맥락에 놓인 사례(제작비용의 외부화)를 생각해 보려고 한 것인데, 문외한이다보니 한계가 있네요. 따로 공부를 더 할 기회를 갖기 전까지는 말을 아껴야겠습니다.
오픈소스, 혹은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경우 특정 업체가 소스코드를 독점함으로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소비자가 뭔가를 한다고 보기는 좀 힘들 듯합니다. 오픈소스로 운영되는 기업들의 경우,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사용하길 원하는 기업들을 위해 컨설팅이나 튜닝 작업을 제공합니다. 역시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별 상관 없는 일이겠죠.
이전에 말씀드렸듯, 롱테일에 대해서는 연말이 되기 전에 한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문제는 미국식 무력 사용의 한계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2차세계대전 이후 최신예 장비와 압도적 화력, 정예병력으로 무장한 미군이 고작 몇 십년전에 디자인된 구닥다리 수제 Ak-47로 무장하고 정규 군사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테러리스트나 민병대에게 쩔쩔 매는가는 무력이나 화력의 문제가 아닌, 문화나 종교, 이데올로기 혹은 사회 구조 자체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할 수있겠네요(예나 지금이나 문화의 힘은 총칼보다 더 무섭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기존의 영토 점령 및 군사적 우세만으로 ‘상황 종료’를 외치는 모습은 참…시대에 덜떨어진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와서 병력을 빼고 GG치고 나갈 수도 없고, 계륵도 이런 계륵이 없더군요; 그나저나 베트남 전 때도 그렇게 당하고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똑같은 우를 범하다니, 미국도 한물 가긴 갔습니다;
그렇죠. 베트남 전쟁 때에서 하나도 배운 게 없는 듯한 인상입니다.
덕분에 흥미로운 현상을 알았습니다.
‘오픈소스화’된 저렴한 무기란게 존재할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되면 포스트 내용처럼 롱테일 폭력시스템이 가능하게 되겠지요. 기존의 무기시장 시스템에서 cut-off 당할 부분이 경제적 타당성을 지니니까요..
예,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이런 무기는 굉장히 비쌌기 때문에, 폭력 도구를 보유한 조직은 국가 정도로 제한되고 군벌 따위는 cut-off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옛 일인 듯 합니다.
총이나 로켓포도 이미 오픈 소스화되어 있습니다만 가장 무서운 것은 폭탄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장품 등에서 아세톤 등의 재료를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잘만 쓰면 복잡한 경제 시스템까지 혼란에 빠뜨릴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알카에다는 사제폭탄을 만드는 방법을 교육하는 전자잡지까지 발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이야말로 “긴밀히 연결된 평평한 세계” 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