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뚝싹뚝 민주주의 – 진중권 교수 강연 #4
-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민주 세력은 왜 패배했는가
그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저런 퇴행적인 것들이 권력을 잡아버렸나? 여기에 대해서는 국민 개새끼론, 소위 국개론이라는 답안이 있는데, 우스갯소리로 할 수 있는 소리는 되도 진지한 해답은 못 되요.
지난 10년간 민주 세력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시대정신으로 해서 집권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충족된 욕망에는 더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아요. 여러분 밥 먹고 또 먹는 분은 없으시잖아요. 마찬가지에요.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욕구가 대략 채워지자,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요. 사실 IMF 이후 우리나라는 고용 보장이 없어지면서 삶의 안정성이 추락했거든요. 사람들이 권위주의 정권에 불만이 많았음에도 비교적 곱게 넘어갔던 것은, 고용 보장이 암묵적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더이상 그렇지 않죠? 비정규직, 계약직 천지고.
국민들은 믿어서 찍기도 하지만 믿고 싶어서 찍기도 하는 존재에요. 앞으로 던지든(Projection) 뒤로 던지든(Retrojection), 지난 대선에서 뭔가를 제시하고 던진 사람은 이명박이 유일했어요. 박정희든 전두환이든, 지금까지의 대통령들은 모두 뭔가 시대정신을 제시하고 실현도 시킨 사람들입니다. 김영삼만 해도 그래요. 우리가 YS 맨날 욕하지만, 평가할 만한 게 있어요. 금융실명제 보세요. 이거 없었으면 우리나라 부패도는 상상초월일 겁니다. 그리고 하나회 해체. 군사독재를 완전히 옛날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지요. 이 양반이 푼수여서 그렇지, 푼수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도 엄연히 있었던 겁니다.(좌중 자지러진다.)
하지만 지난 대선 생각해 보세요. 정동영이 한 말 중에 기억나는 거 하나라도 있으신가요? 없어요! 민주당은 시대정신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어요. 언젠가 민주당 의원 하나가 "선거에서 지고 나면 왜 졌는지 깨닫는 게 있는 법인데, 이번 대선에는 도저히 모르겠다." 고 하는 걸 들었어요. 이건 진짜 답이 없는 겁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할께요. 보통 이런 얘기를 하다 보면 정권 잡고 안잡고 이야기로 가게 되요. 하지만 이건 문제가 안되요. 지금 문제는 대안 세력이 없다는 거에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국민들에게 삶의 안정성을 찾아줄 수 있는지, 선진국으로의 질적 향상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 화두(시대정신)를 던져야 해요. 미래를 향해 방향을 던지고, 또 비전을 보여 줘야 해요. 사람들에게 뭔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해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민주화 세력은 국정 운영 경험이 있어요. 그것도 10년 동안이나요. 그리고 보수 우익 저 친구들이 그렇게 강력한 것도 아니에요. 1년 반 동안 하는 거 좀 보세요. 인수 위 단계에서부터 '어륀지' 운운하며 삽질하죠? 인사 어때요? 인재 풀이 넓은 만큼 나름 합리적인 사람도 많이 쓸 줄 알았는데1 그것도 아니에요. 이한구 씨 정도만 되도 이해를 하겠는데, 이 사람 4대강 사업 반대한다고 입각이 안 되요. 그래 놓고 사람 쓰는 걸 보면 무슨 줄줄이 목사님들이야. 이게 무슨 라스푸틴입니까?(좌중 대폭소) 이게 이 사람들의 수준이고, 컨텐츠인 거에요. 빈 깡통인 거죠.
민주화 세력은 국정 운영 경험이 전무하던 시절에도 정권 교체 이뤄냈고, IMF 극복했어요. 그 때에 비하면 사정은 훨씬 좋아요.
변화를 위한 발전의 틀
제가 제안하는 것은 민주화 세력을 위한 ThinkTank의 가동이에요. 바락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든 브루킹스 연구소 같은 거 말이죠. 우리도 이것이 필요해요.
솔직히 지금도 정당별로 정책 연구소가 있고, 쥐꼬리만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나름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구멍가게 수준이에요. 이걸 활성화시켜야 해요. 정부의 보고서가 제대로 나오고 있는가? 사회 복지 정책을 위한 재정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정을 투여할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해 전문적인 연구 용역이 필요해요. 일종의 정책 도매상 역할을 하는 거죠. 민주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함께 국민들에게 Agenda를 던지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야 해요. 거기서 각자가 만들어낸 구체적인 정책 사항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요. 그러면 세세한 것 가지고 싸울 필요가 없이 어느 정도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돈? 들죠. 하지만 컨텐츠를 기반으로 해서 어느 정도의 수익 모델은 만들 수 있다고 봐요. 관심 있는 사람들이 유료로 보고서를 받아보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던지.
백날 욕한다고 문제가 고쳐지지는 않아요.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변화를 위한 발전의 틀이에요. 새로운 한국 사회의 청사진 말이에요. 시민들은 이미 새로운 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강연 후기
인기 저자인 만큼 강연이 끝난 뒤 책에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고어핀드 역시 최근 구입한 책 두 권 - , - 을 가지고 나가서 사인을 받았다.
참석자들이 뒤풀이로 가볍게 맥주 한 잔을 제안했으나, 진 교수는 내일 아침 9시에 수원에서 강의가 있어서 아쉽지만 이만 집에 가야 한다고 일어섰다. 집이 김포라서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매는 가방을 살짝 엿보니, 책이 가득했다.
진 교수는 그렇게 참석자들에게 미안해하며 총총이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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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하자면 2009년 10월 현재, 이명박 정권에는 이공계 출신 장관이 단 한사람도 없다. ↩
그나저나, 요즘은 다음에서 이런 글을 일부러(!) 걸러내고 있으니…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참~
이런 걸 어떻게든 타파해 나가야 할 방도를 찾아야 할텐데 말이죠…
왠지는 모르겠는데, Daum View에서도 안 보이는 걸 보니 뭔가 좀 이상하기는 하더군요. 다른 분들 말씀처럼 그쪽도 검열 같은 걸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daum view에서 정치글(정확하게는 정부비판글인가…)을 의도적으로 걸러낸다고요?
아니 아고라로 그렇게 뜨거워진 다음이 스스로 검열을 한단 말인가…
ㅊㅅㅈ팀이 ㄴㅇㅂ에 이어 다음도 정ㅋ벅ㅋ 한 건가요?
글쎄요, 어쨌거나 그런 소문이 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강연 다녀온 것보다 나은걸요~
(요약본만 보니 ㅎㅎ)
앗,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_^;
좋은 강연 다녀오셨군요.
옮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강연의 홍수 시대에서 이런 좋은 강연한다는 정보 알기가 쉽지 않네요.
좋은 강연자들 강연 일정이라도 웹으로 연동해놔야 할까요? ㅋㅋ
암튼 고생하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힘들여 정리한 보람이 있네요 ^_^
강연후기 잘 읽었습니다. 진 교수의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듯 합니다. 저는 그 분의 미학 오딧세이를 읽었었는데, 다른 책도 같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미학 오딧세이부터 진중권 교수의 글을 읽었습니다만, 언제 봐도 철학자다운 깊은 사고가 부럽더군요. 최근에는 <폭력과 상스러움>을 다시 읽었습니다 – 사인 받아 온 그 책이에요. 그 외에 아직 안 읽은 몇 권도 따로 주문해서 읽어 볼 생각입니다.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