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기요마사의 투구

* 이 글은 시리즈의 토막글입니다.

2010년 8월 18일
일본 규슈(九州) – 구마모토 시

지난 포스트에 올린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투구(=가부토)가 상당히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고깔 모양으로, 굉장히 높지요. 아마 이걸 보시고 “이게 대체 뭐지” 하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가토 기요마사 동상. 구마모토 성 앞.

이 투구는 하리카게 가부토(張懸兜, 장현형 투구)라 불리는 것입니다. 가토 기요마사의 트레이드 마크로 통하기 때문에 사극 같은 데도 자주 등장하는 편이죠. 아마 게임 캐릭터를 묘사한 피규어에서 보신 분들도 몇 분 계실 겁니다.

등장 – 전국 시대 후기

투구와 갑옷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함께 착용을 하기 때문에, 한 쪽이 변하면 다른 쪽도 거기에 맞춰야 하거든요. 그리고 이 투구는 그러한 경향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투구가 등장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갑옷의 발전에 있기 때문입니다.

전국시대 중기에 이르기까지 일본 갑옷은 굉장히 화려1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본적으로 이 갑옷들은 철판을 끈로 이어서 만들기 때문에 끈의 색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색상을 낼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전국 시대 후기에 이르면 갑옷의 색상이 급속히 검은 색으로 수렴하는 경향2을 보이게 됩니다. 철포(조총)가 전장에서 더 많이 사용되면서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갑옷을 만들어야 했는데, 이런 갑옷들은 구조가 이전 갑옷들과는 달라서 다양한 색을 내기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소속 부대별로 갑옷 색깔을 통일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너도나도 비슷한 색깔의 갑옷을 입게 된 거죠.

이렇게 되자, 고위 지휘관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낼 만한 다른 것을 찾아야 했습니다. 무지렁뱅이 신병이라도 장군님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요. 그 결과로 전국 시대 말기 –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에 이르면, 지휘관들의 투구는 급속도로 개성이 만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등장한 장식 투구들을 하리카게 가부토라고 부릅니다.

구조와 사용

임진왜란에서의 가토 기요마사. 하리카게 가부토를 쓰고 전투를 지휘하고 있다. 은색 투구 양편에는 빨간 히노마루가 그려져 있다.

부르기야 하리카게 가부토라고 부릅니다만, 이 종류의 투구들은 별 공통점이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일반적인 투구 위에 철이나 가죽 등으로 만든 장식물을 올려서 만든다는 것 정도죠. 가토 기요마사의 투구는 현재 도쿠가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고깔 부분은 대부분이 종이로 만들어져 있고 속은 비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깔 부분은 장식에 불과합니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모르죠.

공격성을 강조해야 하는 무구의 특성상 가장 인기 있었던 소재는 역시 뿔이었는데, 주로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다케다 신겐의 군사(軍師)였던 야마모토 간스케(山本勘助)의 투구나 도쿠가와 사천왕의 한 명이었던 혼다 타다카츠(本多忠勝)의 투구가 이런 스타일입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애용한 투구의 경우 나가에보시(長烏帽子)형 투구라고도 불리는데, 헤이안 시대 이후 쓰이던 “에보시” 라는 모자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이런 스타일을 어지간히 좋아했는지, 두 개를 마련해서 번갈아 쓰고 다녔다고 하네요.

어쨋거나 이렇게 만들어진 투구는 아주 눈에 확 띄었기 때문에, 창대 끝에 장착해서 군기 대용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적군 또한 이 투구를 보고 아군 지휘관이 어디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걸 역이용해서 적군을 낚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무장일수록 사용했다고 알려진 투구가 몇 개씩 되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덕분에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도 전리품으로 투구를 많이 챙길 수 있었는데, 이순신 제독이 조정에 보고한 장계에서도 한더미의 커다란 투구들을 얻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다른 스타일: 가토 기요마사는 두 개의 투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위 일러스트()는 동상에 묘사되지 않은 투구를 묘사하고 있다. 역시 하리카게 가부토(=나가에보시형)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이 투구의 전면에는 가토 기요마사의 문장 모양으로 조각된 마에다테가 장착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동상에 묘사되어 있는 투구는 기본적 방어구로서의 기능 외에도 계급장으로서의 기능, 군기(軍旗)로서의 기능을 다 가지고 있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별이 두 개 박힌 사단장 철모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이 투구를 씀으로써 돋보이는 정도는 아직 80%밖에 되지 않지요. 하지만 당신이라면 100%의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1. 그 뒤에 나온 것들도 우리네 눈에는 다 화려해 보입니다만. 

  2. 일례로,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창안한 산사이(三斎)류 갑옷의 경우 투구부터 갑옷까지 거의 몽땅 검은색이다. 

10 thoughts on “가토 기요마사의 투구

  1. 오오, 속을 비워서 중공장갑의 효과를 보려고 했던 시도로군요! 역시 일본의 하이테크 기술이란.

  2. 오 그런 뜻으로 저런 고깔을 착용한거라니… 잠시나마 벌서기 위해서 고깔을 착용했다고 생각했던 제가 부끄러워 지는군요.

  3. 이 투구의 사용에서 재밌는 점이 있긴 한데 비밀로 하기로 한지라 낄낄낄.

  4. 고깔모자의 어릿광대가…아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한….ㅎㅎㅎ

    • 어릿광대는커녕, 저거 보고 웃는 졸병은 당장 목이 날아가지 않았겠습니까. (웃음)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