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크기

이천년 전 건달들의 성공기를 보면서

오늘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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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楚漢志). 한왕 유계1와 초패왕 항우의 전쟁을 다룬 역사 소설이다. 최초로 중원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가 무너지자, 중국 대륙은 수많은 군웅들이 아귀다툼을 하는 난세로 접어든다. 그들 중 두각을 나타낸 것이 유계의 한나라와 항우의 초나라다. 치열한 다툼 끝에 유계는 항우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다. 초한지는 이 둘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소설이다.

두 개의 캐릭터

초한지의 판본은 여럿이 있지만, 대개 인물에 대한 묘사는 비슷하다. 덕 많고 인자한 유계와 포악하고 단순무식한 항우. 우리가 흔히 가진 인상과 동일하다. 역사 기록을 뒤져 보면, 실제로도 두 인물은 매우 대비되는 캐릭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흔히 가진 인상과 정반대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한고조 유계(유방).

역사적 인물로서의 유계는 어땠을까? 이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다. “밑바닥 건달 출신 무례한 욕쟁이” 지나쳐 보인다고? 하지만 사실이다. 애당초 그의 이름은 “막둥이” 라는 뜻으로, 제대로 된 이름이 아니다. 게다가 사기(史記)를 살펴보면, 그에 대해서 좋은 평을 찾기가 힘들다. “제대로 된 일은 하지도 않으며, 술이나 퍼먹던 한량” “욕심쟁이에 계집질로 소일하던 형편없는 위인” “예의가 없어 대장군을 임명하는 일도 어린애 병정놀이 하듯 해치우는 인간2” … 그 부하들도 대장에 못지 않다. 시골 공무원(소하), 개백정(번쾌), 지명수배자(장량), 겁쟁이(한신), 막장인생(진평) …

너저분함의 끝을 잡는 유계에 반해, 라이벌 항우는 흠잡을 데가 없는 인물이다. 부하들에게는 언제나 자상하고 매력이 넘치는 멋쟁이. 전쟁터에서는 두려움을 모르는 용맹무쌍한 맹장. 나이 서른도 안 되어 대륙 최강자의 자리에 선 비범한 군사 지휘관 … 여기에 이름난 명문 귀족 집안의 후예이기까지 하다. 덕분에 그를 섬기려는 능력자들이 줄을 선다. 여러 모로 유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능력자, 항우의 모습이다.

하지만 항우의 세력은 오래가지 않았고, 건달들이 건국한 한나라는 그 후 400년을 간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었을까.

전국 시대식 인물형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항우는 세련되고 예의 바른, 교육 잘 받은 귀족 청년이다. 좋은 표현 같지만, 잘 뜯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이 친구의 행동은 딱 그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킬 때 일이다. 그는 지나는 곳마다 모두 죽이고 때려부순다. 심지어 반란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진나라에서 항복한 병사 20만을 생매장하기도 한다. 진나라를 멸망시켰을 때도 전후 처리는 얌전하지가 못했다. 항복한 진나라 왕을 죽이고 궁궐을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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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가 이런 식이다. 그가 가진 생각의 크기는, 전국 시대 귀족의 범주를 못 벗어나고 있다. 전국 시대였다면 적국을 초토화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통일 제국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시대, 이런 행동은 적만 잔뜩 늘릴 뿐이다. 진나라를 멸망시킨 뒤에도 그랬다. 항우는 진나라의 발전된 행정 시스템을 활용할 생각은 안 하고, 그저 옛날 귀족들이 하는 대로 본거지로 돌아가 버린다. (그리고 논공행상을 찌질하게 하여 반란의 구실을 만든다.)

사실 이 점에서는 진시황도 마찬가지다. 천하를 통일하자, 그는 진나라의 강력한 법을 전국에 걸쳐 실시한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한 걸까? 진나라의 엄격한 법은 전쟁이 계속되는 시대에 “군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랜 전쟁이 끝나고, 새로 진나라에 편입된 나라 백성들에게는 알맞지 않다. 그들은 진나라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고, 개중에는 진나라에 원한을 가진 자들도 많다. 게다가 진나라의 법은 워낙에 엄격해서, 진나라 백성들도 처음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런 법을 강요하고도 반란이 안 터질 수 있을까? 진시황은 최초로 황제가 되었지만, 그가 가진 생각의 크기는 전국 시대 일국의 왕, 딱 그 수준이다.

한나라와 건달들

사기(史記)는 유계가 진나라의 수도에 처음 입성했을 때를 이렇게 기록한다: “금은보화와 절세 미녀들에 눈이 돌아간 유계가 궁전에 있고 싶다고 했으나 … 번쾌와 장량이 뜯어말리자 마음을 고쳐먹고 진영으로 돌아왔다.”

회음후 한신. 대륙을 평정한 한나라의 명장이다. “토사구팽” 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앞서 말했듯이, 유계는 시골 건달이었다. 그리고 그의 부하들은 잘해봐야 시골의 토착 군사 집단에 불과했다. 진나라가 멸망한 뒤 그들을 두려워한 항우에 의해 촉(蜀) 지역으로 쫓겨나지만, 오히려 여기 남아 있던 진나라의 행정 시스템을 접수하면서3 천하 통일로 가는 길을 연다.

그럼 한나라의 천하 통일은 운이 좋아서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전부터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의 크기는, 항우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그럼 위에서 이야기한 일화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금은보화의 유혹을 뿌리치는 유계의 자제력, 필부가 가진 생각의 크기로 이것이 가능할까?

부하들도 대장에 못지 않다. 진나라가 멸망하고 모두들 약탈에 정신이 팔려 있었을 때, 소하는 문서고에 들어가서 진나라의 중요한 문서들을 손에 넣는다. 이 문서들이 훗날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시골 공무원의 작은 생각으로 이것이 가능했을까? 대륙을 평정한 한나라의 명장 한신. 그의 시작은 “젊었을 때 불량배의 다리 사이를 기어갈 정도의 겁쟁이” 였다. 하지만 그가 언제고 시골 겁쟁이의 수준에서만 생각했더라면, 훗날 하후영을 비롯한 윗사람들을 깜짝 놀래킬 만한 시야를 갖추기는 어려웠을 게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법

청동제 극戟. 중국 전국 시대.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터에서도 이런 무기가 사용되었을 것이다.

흔히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런 태도에도 위험성은 있다. 일상에 젖어 생각의 크기가 손바닥만하게 쪼그라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한 해가 다 지나갔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곳곳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아쉬움보다 더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두려움이다: 일상 하루하루에 침전해서 미래에 대한 고민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이천년 전 건달들의 성공기를 읽으면서, 나는 오늘의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나는, 진정으로 “살고” 있는 것인가.


  1. 흔히 한고조 유방(漢高祖劉邦)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이름은 황제가 된 뒤 지은 이름이고, 그 전의 이름은 유계(劉季)였다. 

  2. 회음후전의 기록. 사기열전의 다른 책에도 비슷한 기록들이 전한다. 경포열전과 위표팽월열전에 의하면 유계가 얼마나 예의가 없었던지, 망명객이 자살을 하려 하거나 반란의 구실이 된 적도 있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좀 무섭다. 

  3. 촉 지역은 이름난 곡창 지역으로, 진나라의 천하 통일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병참 기지 역할을 했다. 게다가 진나라의 오랜 영토였기 때문에, 특유의 발달된 행정 시스템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는 항우를 비롯한 다른 경쟁 세력들이 기대하기 힘든 이점이었다. 

4 thoughts on “생각의 크기

  1. 하루도 충실히 못 살고 생각도 항상 눈 앞에 이익만 보는
    제 자신을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금 연평도 사격훈련을 시작 했다는군요.
    예전에 저 같은면 입이 가볍게 나불대며 떠들었지만…

    왠지 나이가 들면서 제 지식의 초라함과 경솔함에
    제 자신이 부끄러워 집니다.

    만약 크게,넓게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도 인생의 전략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솔직히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것도 힘들어요 ㅜㅜ)

  2. 유계(劉季)였다면 막둥이였는진 몰라도 ‘셋째’였겠군요. 伯仲季叔 순이지 않던가요?

    • 글쎄요, 계라는 글자를 그런 식으로 쓸 수도 있지만, 이것은 약간 다른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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